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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내 안에 머물던 새」

by 답설재 2017. 7. 8.

  내 안에 머물던 새

 

 

박 남 원

 

 

내 안에 한동안 머물던 새는

반은 떠나고 반이 남았다.

그래서 다 떠나버린 것도,

다 남아 있지도 않은 네가 나를 아프게 한다.

 

꼭 반은 떠나고 반은 남았으므로

나는 온전히 너를 떠나보낸 것도

내 안에 온전히 잡아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다 날아가라고, 다 날아가버리라고

대문을 열어두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으나

그러면 다 떠나버릴 줄 알았던 너는 이번에도 단지 반만 떠나고

여전히 반은 계속 남아 있다.

 

다 떠나버리거나 내 안에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너는

하루 종일 바람 부는 바다 기슭 같은 데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해가 저물면 기어이 내 가슴의 문을 열고 날아 들어와

내 심장의 벽에 모이를 쪼며 밤새 쿡쿡쿡 바늘을 찔러댄다.

 

한번 와서는 어디로 가지도 않고

밤이 다 가도록 모이를 쪼며 너는 내게 바늘을 찔러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신음 소리를 내며

울음을 참듯 너를 눌러 참으며 밤새 앓는다.

 

 

 

――――――――――――――――――――――――――――――

박남원 1960년 전북 남원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 등단. 시집 『막차를 기다리며』 『그래도 못다한 내 사랑의 말은』 『캄캄한 지상』.

 

 

 

『현대문학』 2017년 6월호, 148~149.

 

 

 

"해가 저물면 기어이 내 가슴의 문을 열고 날아 들어와"

"밤이 다 가도록 모이를 쪼며 너는 내게 바늘을 찔러대고,"

 

이래저래 조급해졌지만 나의 새도 아직 다 날아가지 않았다. "반"은 남았다.

고마운 시인.

그걸 인정해준 시인.

 

상 받은 것도 없다는 시인, 『막차를 기다리며』 『그래도 못다한 내 사랑의 말은』 『캄캄한 지상』에 굳이 "등(等)" 자도 붙이지 않은 시인…………

 

 

 

20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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