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의 시
이장욱
당신이 혼자 동물원을 거니는 오후라고 하자.
내가 원숭이였다고 하자.
나는 꽥꽥거리며 먹이를 요구했다.
길고 털이 많은 팔을 철창 밖으로 내밀었다.
원숭이의 팔이란 그런 것
철창 안과 철창 밖을 구분하는 것
한쪽에 속해 있다가
저 바깥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것
당신이 나의 하루를 관람했다고 하자.
당신이 내 텅 빈 영혼을 다녀갔다고 하자.
내가 당신의 등을 더 격렬하게 바라보았다고 하자.
관람 시간이 끝난 뒤에 드디어
삶이 시작된다는 것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동물원의 자정이 온다는 것
당신이 나를 지나치는 일은
바로 그런 것
나는 거대한 원숭이가 되어갔다.
무한한 어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꽥꽥거리며
외로운 허공을 날아다녔다.
이것은 사랑이 아닌 것
그것보다 격렬한 것
당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넘어서는 것
여기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있다는 것
원숭이의 시에 당신이 등장한다고 하자.
내가 그 시를 썼다고 하자.
내가 동물원의 철창 밖을
밤의 저편을
당신을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다고 하자.
――――――――――――――――――――――――――――――
이장욱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대산문학상〉 수상.
『現代文學』 2017. 8. 100~101.
원숭이를 보았다는 이야기
그 원숭이도 하루를 보낸다는 이야기
그래서 여기 한 마리 원숭이가 또 있다는 이야기
그런 나를 누군가 관람하고 있다고 하자는 이야기
원숭이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
이게 바로 슬픔인지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상미 「작은 배」 (0) | 2017.10.28 |
---|---|
「잿빛」 (0) | 2017.10.16 |
고영민 「돼지고기일 뿐이다」 (0) | 2017.08.17 |
정양 「달밤」 (0) | 2017.08.06 |
유진목 「여주」 (0) | 201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