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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을39

가을구름 나를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나날들이 나를 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버리네. 2016. 9. 24.
2016 가을엽서 하늘이 높습니다. 연일 가을구름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밤은 더 깊습니다. 책을 들면 1분에 한두 번씩 눈이 감기는 것만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까무룩' 내처 가버려도 그만일 길을 매번 되돌아오긴 합니다. 이런 지 꽤 됐고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몸은 한가롭고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두렵진 않은데 초조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2016. 9. 15.
물리학자의 立秋 Ⅰ 저 신록의 계절, 저때만 해도 괜찮았다. 괜찮았다기보다는 의욕에 차 있었다. 올해도 손자손녀를 보러 열 몇 시간 걸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각오가 무색하게 여름이 오자마자 미국행을 포기해서 손자손녀 일행이 다녀가게 하더니, 수소폭탄 원리를 연구해서 생활 에너지로 쓰게 되면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고 이상기후 같은 것도 해결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리 수월하지 않은 연구라는 둥 어떻다는 둥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까지 했다. Ⅱ 마침내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고 열대야가 계속되던 지난 주말에는 이런 여름이라면 지쳐서 견디기가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은 마지막에 이르면 모르핀이나 놓아달라고 하지 결코 다른 치료는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 2016. 8. 10.
2015 가을엽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가을강변이 향수를 불러옵니다. '강변'은 끝없는 노스탤지어로 남을 것입니다. 원두막에서 가을바람을 맞고 있는 옥수수는 올해도 영글어서 어김없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여름하늘은 저렇지 않았습니다. 구름은 우리의 복잡한 사정도 다 살펴가며 흘러가다가 갑자기 바람이 스산해지고 순식간에 2016년이 올 것입니다. 기한을 정해 놓은 것처럼 초조해집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서장의 책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2015. 9. 13.
가을이 온 날 사진 제목은 '올가을을 처음 만난 아침'입니다. '노루'님의 블로그《삶의 재미》(2014.9.24)에 실렸습니다. 이런 설명이 붙었습니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가면서 만나는 동네 큰길 건너편의 물푸레나무. 저 나무가 단풍 든 걸 처음 보는 게 그 해 가을을 처음 대면하는 걸로,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엔, 가을이 벌써 근처에 와 있는 걸 느끼고는 있었다. 어쨌거나, 작년 사진을 보니, 가을을 작년보다 열흘쯤 이르게 보는 거다. ♬ 가을은, 지역별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면서, 그러니까 어느 특정 지역이라면 '일시에' 이 세상에 오는 것인데 그 가을이 오는 걸 "저 나무가 단풍 든 걸 처음 보는 게 그 해 가을을 처음 대면하는 걸로,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 2014. 10. 1.
2013년 秋夕 2013년 秋夕 ♬ 아내는 열흘쯤 전부터 제사, 차례 준비를 합니다. 가령 약주, 건어물, 식용유, 햅쌀, 한과 같은 건 미리 한가한 마음으로 사두어야 서두르지 않게 되고, 제값을 주고 살 수 있고, 양도 속지 않고, 무엇보다 정성들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세 군데의 시장을 둘.. 2013. 9. 18.
가을엽서 Ⅸ - 가는 길 저 쪽 창문으로 은행나무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깜짝 놀라 바라보았더니 그 노란빛이 초조합니다. 올해의 첫눈이 온다고, 벌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고, 마음보다는 이른 소식들이 들려와서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다른 출구가 없다는 것이 더 쓸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정말 이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보면 화려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정말이지 그걸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멍청하게 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못마땅할 것입니다. 다른 출구가 없다는 것이 마음 편하기도 합니다. 순순히 내려가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마음만이라도 따뜻하게 가지고 있겠습니다. 딴 마음이 들면 얼른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럼. 2012. 11. 16.
인연-영혼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올 가을, 끊임없이 반복될 가을입니다. 2012년 가을, 혹은 마지막 가을일 수도 있습니다. 나로 말하면 그 어떤 가을도 다 괜찮고 고맙고 좋은 가을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가을도, 바람에 휩쓸려가는 낙엽 소리가 들리면 쓸쓸해지고, 골목길 조용한 곳에 모여 있는 낙엽을 보면 더 쓸쓸해집니다. 이듬해 가을이 올 때까지는 설명이 필요없게 됩니다. 이 가을에 37년 전 어느 교실에서, 내가 그 학교를 예상보다 일찍 떠나는 섭섭한 일로 겨우 5, 6개월? 날마다 나를 바라보던 한 여학생, 그 여학생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는 순간에 할 인사를 애써서 연습했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랬는지, 인사는 나누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습.. 2012. 11. 10.
오며가며 Ⅱ 2012.10.23. Ⅰ 우연히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전차·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네 시간, 식사·전차·네 시간의 일·식사·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똑같은 리듬에 따라, 이 길을 거의 내내 무심코 따라간다. 그러나 어느 날 라는 의문이 솟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당혹감 서린 지겨움 속에서 시작된다.(알베르 까뮈, 민희식 옮김,『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7).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 맞아! 삶은 지겨움의 연속이야' 하고 생각한 것은, 1990년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책은, 참 어쭙잖아서 공개하기조차 곤란한 어떤 이유로 그럭저럭 대여섯 번은 읽었는데, 그렇게 감탄한 그 몇 년 후 어느날에는 '뭐가 그리 지겨워.. 2012. 10. 30.
가을엽서 Ⅻ 오늘 아침, 경춘선 철로변 푸나무들은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것 같아서 쓸쓸했습니다. 맹위를 떨치던 것들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푸나무들 위로, 연일 숨막힐 것 같았던 햇볕도 덩달아 자신이 무슨 종일 설사하여 생기 잃은 소녀나 되는 양 아련해 보였습니다. 가볍게 하늘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2012년 여름. 가진 것 다하여 정열적으로 바쳤거나 미워하고 소홀히하고 냉대했거나 더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 돌아섰거나 2012. 8. 2.
「노을에게」 노을에게 허윤정 바람은 꽃도 피워 주며 사랑의 애무도 아낌없이 하였다 잠시잠깐 떨어져 있어도 살 수 없다던 너 작은 일에도 토라져 버린다 이렇게 해지는 오후면 노을은 후회처럼 번지고 새들은 슬픈 노래로 자기 짝을 찾는다 이대로 영원일 수 없다면 우리 어떻게 이별할 수 있을까 사랑아 우리 기꺼이 이별 연습을 하자 나 또한 지워져 버릴 너의 연가 앞에서 저 물든 노을은 분홍 물감을 흩뿌리듯 강 건너 먼 대숲 산모롱이 누가 손을 흔든다 "잠시잠깐 떨어져 있어도 살 수 없다던 너/작은 일에도 토라져 버린다" 그러니까 -걸핏하면 토라져 버리니까- 모두들 그 사랑에 관하여 토로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그 덧없음이란……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 저 깊은 곳까지 울려오는 것이겠지요. .. 2011. 10. 31.
가을엽서 11 강원도 어느 곳에 얼음이 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가을'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는 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잠시라도 떠나는 시간에는 떠나는 그 곳을 눈여겨 봅니다. '꼭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젊은날에는, 아니 연전(年前)에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고 싶겠습니까. 2011.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