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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을45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죠? 어느 계절이 좋은지 묻는 사람이 있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거나 내게 호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대답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니까─지금 그걸 묻는 사람이 내가 전에 대답해 준 다른 사람에게 그때도 그렇게 답했는지 확인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내가 지금까지 어느 계절이 좋다고 대답해 왔지? 잠시 생각한다("답설재는 어째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까? 전에 B에게는 가을이 좋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면 내 꼴이 뭐가 되겠나). 나는 겨울이 좋다. 한가해서 좋다. 들어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좋다. 자고 나면 또 그런 날이어서 그런 시간이 길게 이어져서 좋다. 학교 다니던 아이들도 제각기 들어앉아서 어떤 핑계를 대면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할 것 같아서 생각.. 2023. 12. 3.
홍시 단감은 네 언니, 홍시는 내 차지다. 어제 수영 가며 홍시 먹어보라고 해서 하나 먹어봤더니 어릴 때 내가 나무에서 따먹은 그 홍시구나 싶더라. 남은 건 좀 오래 구경하다가 먹으려고 한다. 이 홍시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권 서방 맘이 참 곱고 좋다. (10.30) 사랑하는 큰오빠.. 밤 늦은 시간에 문자 드려요. 편안히 주무세요. 어제 내려온 후 두 분께 미련이 남아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주저앉히기 위해 친구 밭에 가서 종일 엎드려 일하고 놀다 늦게 와서 언니가 싸준 달걀 고구마를 만지작거리다 먹으며 또 그리워하다 폰을 뒤늦게 열었어요....♡ 큰오빠, 언니 부디 마음 평온하시게 건강만 잘 지키셔서 오래오래 제게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의 큰오빠 집이 너무 아름답고... 오빠 손길이 눈에 선하네요. 주.. 2023. 11. 15.
박남원 「가을 항구에서」 가을 항구에서 돌아오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들아. 어쩌면 지금쯤 바람이 된 자들아. 흰 구름이 된 자들아. 언젠가 노을이 되어 떠나간 자들아. 아니, 아니 저 수심 깊은 곳에서 끝내 아직도 살아 울고 있는 자들아. 온 세상 붉은 단풍을 몰고 온 가을 한 계절이 여기까지 찾아와 기어이 너희들 안부를 묻고 있질 않느냐. 박남원 시집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어느 날》(b, 2021) 77. 시인은 이 시를 가을 내내 걸어두고 있었습니다. 나는 간절해졌습니다. 내 가을은, 시인의 블로그에서 이 시가 그대로 걸려 있는 걸 확인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을이 갔으므로 나는 시인이 지난가을을 잘 보냈기를, 올겨울에도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곳에서 늘 그렇게 지냈으므로 오래 머물기보다 서둘러 나의 .. 2023. 11. 10.
잊힐 리 없을 것 같은 이 가을 이 가을은 특별한 것 같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나고 나면 그만이겠지. 가을만으로 아픈 적은 한 번도 없었지. 2023. 11. 4.
가을 표정 최선을 다했는데 뭘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2023. 10. 24.
이 세상의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덥긴 하지만 처서가 지난 주말이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왔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2004년 9월, 십몇 년 간 세상에서 제일 번화한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내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을 때 그 9월은 가을이었다. 가을다웠다. 나뭇잎들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곳 가을은 조용하고 쓸쓸했다. 귀양이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니까 귀뚜라미가 울었다. 내가 멀리서 통근한다는 걸 엿들은 그 귀뚜라미가 설마 정시에 출근하겠나 싶었던지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귀뚜라미가 우네요?" 광화문 교육부 사무실에서 전쟁하듯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눈에 띄는 아무에게나 알려주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기사가 들어오더니.. 2023. 9. 17.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게 되었다. 2022. 11. 16.
왜 나는 자꾸 시시하고 한심해지는 걸까? 내 눈길은 왜 자꾸 시시한 것들에게 머물게 될까? 왜 나는 이렇게 한심해지는 걸까? 2022. 10. 27.
가을에 돌아왔네 나는 돌아왔다. 내가 꾸민 나 말고 남이 꾸며준 나 말고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 아닌가. 다시 꾸밀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다시 꾸며줄 이도 없는, 마침내 여기 서성이고 있는 나 말고는 다른 내가 없다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2022. 10. 23.
이거 내가 가져도 돼? 괜찮아? 2022. 9. 19.
잘도 오는 가을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제때 오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다. 기온이 아직은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물들여버렸다. 결국 올해도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따르기가 싫다. 2022. 9. 18.
정해진 칸에 예쁘게 색칠하기 예전엔 이런 학습지가 없었습니다. 등사기가 있긴 했지만 그건 거의 시험지 인쇄 전용이었고 '학습지'라는 게 나타난 건 복사기가 보급된 이후입니다. 그래서 그 예전에는 색칠하기, 숫자를 차례로 이어서 모양 찾기 같은 과제는 여름 겨울 방학책에나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걸 단시간에 해치우고는 "아니, 오늘 공부는 벌써 끝장이 났잖아!" 하고 호기롭게 일어서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이런 공부가 즐거운 건 이미 윤곽이 그려져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색을 선택해도 좋은 자유를 누리며, 거의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하니까 '누워서 떡먹기' 같은 이런 것도 참 좋은 공부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얼마나 삭막합니까? 마스크를 쓴 채 하루 일과를 치러야 한다는 건 얼마나 가혹한 일이겠습니.. 2021.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