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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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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네 2023. 12. 1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발췌)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3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와 우리 자신의 제도 속에는 외적인 권위와 규율, 획일성,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의존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준 조건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따라서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죤 듀이)(21)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서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화산 꼭대기로 데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25)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 2023. 12. 1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 2023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自由의 쟁취),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그 자유의 享有)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자유로부터의 逃避)는 것이다(39). 이 책의 주제이다(괄호 안은 답설재가 붙인 설명임). 인간 생활의 예로부터의 변화 과정은 이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적·사회적으로도 그렇다. 현재의 상황도 그렇다. 개인적인 현재의 사정도 그렇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도 있고, 웬만.. 2023. 12. 16.
영화 사부: 영춘권 마스터 영춘권의 마지막 사부가 각 문파를 차례대로 격파하고 훌훌히 떠난다. 온갖 생각이 오고가도 쳐다보고 있으면 되는 영화가 좋을 때는, 쳐다보고 있으면 되니까 좋다. 스틸 컷을 몇 장 복사해 보았다. 김 교수가 영화 "오펜하이머" 봤냐고, 거기 자신의 친구들이 여럿 나온다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는데...(2023.12.6. 수) 2023. 12. 15.
"야, 이놈들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달픈 삶이랄까, 그 이전이 보잘것없는 세월이었다면 이후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들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세월에 끌려다녔다. 그럭저럭 책은 좀 읽었다. 그건 국어를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굽이굽이에서 그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담임도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온갖 창피를 다 주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느니 이제 온 국민이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도 독서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느니...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에 힘쓰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마치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내 잘못인양 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놓은 채 그렇게 지껄여대는 바.. 2023. 12. 13.
지식의 쓰레기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된다. 가령 인터넷에서 보는 '지식'에서 그 쓰레기를 구분하지 못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그 새 지식이 나온 부분의 묵은 지식은 당연히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에게 전해줄 마땅한 지식을 선정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새로운 지식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말아야 할 쓰레기 같은 지식은 어떤 것인지, 잘 구분해서 선정하려고 한다. 그걸 정해놓은 것이 '교육과정'이고, 그 지식을 실제적으로 담아놓은 것이 '교과서'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사당동 전셋집 2층에서 혼자 살 때, 초등학교 사회과에서 가르쳐야 할 지식을 선정하는 일을 잘해보려고 벽.. 2023. 12. 13.
세이쇼나곤(淸少納言) 「승려가 되는 길」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를 승려로 보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승려는 마치 나뭇조각인 양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뿐더러, 공양 음식같이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고, 앉아서 조는 것도 비난을 받는다. 젊을 때는 이런저런 호기심도 있을 텐데 마치 여자라면 진저리라도 난다는 듯이 잠시도 곁눈질해서는 안 된다. 잠깐 보고 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도 없을 텐데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수도승한테는 더욱 심하게 군다. 계속된 수행에 잠시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독경은 안 하고 졸기만 해"라며 금방 투덜거린다. 승려가 된 사람은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이 지은.. 2023. 12. 12.
류병숙(동시) 「사는 게 신나서」 사는 게 신나서 류 병 숙 아저씨네 벌통의 벌들이 〈꽃가루 뭉치자, 꽃가루 뭉치자〉 이런 표어 내걸자 거미가 소문 듣고 그물코 그물코마다 〈헛발 디뎌라, 헛발 디뎌라〉 그걸 본 노린재도 아무도 못 들어오게 〈노린내 풍기자, 노린내 풍기자〉 이런 표어 내걸었대 사는 게 신나서. 《아동문학평론》2023년 가을호에 실린 이 동시를 나는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2023.9.22)에서 봤다. 어떤 동시 전문가가 제목과 내용이 무슨 모스 부호처럼 동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나는 사는 게 신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생각하면서 내 나름의 댓글을 달았었다. 아~ 류병숙 시인 최고!!! 이런 시를 다 보여주다니요! 아~ 이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북한 같은 나라들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 .. 2023. 12. 10.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두 번째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두 번째 THE ILLUSTRATED BOOK OF SAYINGS: Curious Expressions from Around the World 세상에서 하나뿐인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들 루시드폴 옮김, 시공사 2017 우리 속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까마귀가 날아가느라 배가 떨어진 걸까요? 배가 떨어지는 통에 까마귀가 날아가버린 걸까요? 이건 얼핏 동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일지라도 애써 관련지으려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까마귀가 날아간 일과 배가 떨어진 일이 늘 연관되어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아무 상관없이, 그저 별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도 모르는걸요. 물론 그렇다고 우리의 상상이 쉽게 멈출 리는 없겠죠. .. 2023. 12. 10.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An Illustrated Compendium of Untranslatable Words from Around The World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루시드폴 옮김, 시공사 2016 몽가타(MÅNGATA)는 물결 위로 길처럼 뜬 달빛이라는 뜻의 스웨덴어 명사란다(이 단어를 보면서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우리말 '윤슬'이 생각났다). 사마르(SAMAR)는 아랍어 명사로 해가 진 뒤, 잠도 잊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히라에스(HIRAETH)는 웨일스어 명사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과거 속으로 사라진 곳에 대한 향수, 혹은 가 보지 못한 곳에 대.. 2023. 12. 9.
"사람들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요." "무슨! 사람들이 왜 얘기를 안 해?"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밖엔 안 해요. 그런 것들이 뭐는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 하고 또 해요. 음악회라고 가 보면 현란한 조명들이 온 사방을 어지럽게 누비더군요. 보기엔 멋있고 즐겁지만 그것뿐이죠. 공허하고 추상적일 뿐. 박물관은 또, 가 본 적이 있으세요? 거기도 전부 다 추상적인 물건들뿐이에요. 지금 있는 것들은 다 그래요. (......)" 소설 《화씨 451》(레이 브래드버리)에서 소녀 클라리세 매클린이 방화수 .. 2023. 12. 8.
발광 어떤 종류의 빛이 어딘가에서 생성되는 것은 어떤 들뜬excited 원자의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떨어지거나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이동할 때다. 이렇게 움직일 때 에너지는 얻거나 잃는데, 이 에너지는 광자의 형태로 방출된다. 이처럼 원자를 '들뜨게'exciting 함으로써 빛을 내는 것을 일반적으로 '발광'luminoscence이라는 아주 멋진 단어로 표현한다. '발광'을 설명한 글이다(엘라 프랜시스 샌더스『우아한 우주』25). 그러니까 이건 '發光'으로 사전에도 '빛을 냄', '원자 속의 전자가,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에너지가 낮은 상태로 옮겨갈 때 두 상태의 에너지의 차를 빛으로 내보내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의 글에서는 "아주 멋진 단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발광'.. 2023.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