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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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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발췌)

by 답설재 2023. 12. 1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3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와 우리 자신의 제도 속에는 외적인 권위와 규율, 획일성,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의존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준 조건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따라서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죤 듀이)(21)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서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화산 꼭대기로 데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25)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39)

 

개인은 무가치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할 수 없고 외적인 힘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는 이 생각은 히틀러 이데올로기의 주제이기도 하다.(56)

 

인생의 의미가 의심스러워지고, 타인이나 자신과의 관계가 안전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명성이 의심을 침묵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명성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영생에 대한 기독교 신앙과 비교할 만한 기능을 갖고 있다.(64)

 

성 안토니오가 말했듯이, 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이상적인 것은─인간의 본성이 거기까지 높아질 수만 있다면─공산주의다.(69)

 

돈은 인간을 평등하게 해주는 중요한 평형 장치가 되었고, 혈통이나 계급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76)

 

인간은 더 독립적, 자립적, 비판적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고립되고 고독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다.(118)

 

이기주의의 신조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빌리자면 (...)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을 보는 것보다 재산을 잃는 것을 더 견디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타심을 강조하는 것은 근본적인 이기주의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가정으로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을까?(128)

 

근대인은 자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신이 생활을 바친다는 모순에 우리는 직면하게 되었다.(131)

 

근대인의 고독감과 무력감은 그의 모든 인간관계가 지니고 있는 특징 때문에 더욱 강해진다. 개인과 개인의 구체적인 관계는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성격을 잃고, 속임수와 수단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133)

 

사람은 상품을 팔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팔고, 자신이 상품이라고 느낀다. (...) 남들이 그를 원하면 그는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다.(134)

 

개인은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고, 자기 외부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조종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135)

 

도시의 거대함, 산처럼 높이 솟은 빌딩들, 끊임없이 청각적 포격을 퍼붓는 라디오,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바뀌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신문의 헤드라인, 백 명이나 되는 소녀가 개성을 버리고 시계처럼 정확함을 과시하면서 강력하지만 원활한 기계처럼 연기하는 쇼, 고동치는 재즈의 리듬... (...) 거기에 비하면 개인은 아주 작은 알갱이에 불과하다.(146)

 

피학적 충동과 가학적 충동은 둘 다 개인이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167)

 

힘없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는 상대를 공격하고 지배하고 모욕하고 싶어진다. (...)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상대가 무력해질수록 한층 더 증오하고 분노한다.(184)

 

(도피의 메커니즘) 문화적 유형이 그에게 제시한 성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타인과 똑같아지고, 타인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똑같아진다. '나'와 외부 세계의 차이는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외로움과 무력함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진다. (...)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202)

 

자아를 상실하거나 가짜 자아로 바뀌는 일은 개인을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뜨린다. 그는 회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본질적으로는 타인의 기대를 반영하는 존재로서,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223)

 

(나치즘) "대중이 원하는 것은 더 강한 자가 승리하고 더 약한 자는 전멸하거나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다." "약한 남자를 지배하기보다 강한 남자에게 복종하기를 바라는 여자처럼 대중은 탄원자보다 지배자를 사랑하고, 속으로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는 것보다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는 신념에 훨씬 만족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할 때가 많고, 걸핏하면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기까지 한다. 대중은 이 신념이 망상이라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정신적으로 위협하는 무례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인간적 자유가 터무니없이 축소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나의 투쟁》)(240~241)

 

감각과 감정에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왜곡이 독창적인 '생각'에도 일어난다. 교육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독창적인 생각은 억압되고,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 같은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에 주입된다.(266)

 

개인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의 인격을 최대한 완성시키는 데 바탕을 둔다. 그것은 자신에게 최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겨냥한 근본적인 명령의 하나다.(269)

 

보통 어른들에게 남아 있는 독창적인 사고능력마저 적극적으로 혼란에 빠뜨리는 또 다른 요인들이 있다. (...) 쟁점을 모호하게 흐리는 기능이다. 이런 연막전술 가운데 하나는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 간단한 문제를 오직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고, 게다가 그 전문가조차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한정된 것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해 보이게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의 사고능력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실제로 ─대개는 의도적으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269)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은 세계를 구조화한 그림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다. (...) 라이오와 영화와 신문은 이 점에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도시가 폭격을 받아 수백 명이 죽었다는 뉴스 보도가 끝나자마자, 또는 뉴스를 보도하는 도중에 비누나 포도주 광고가 뻔뻔스럽게 끼어든다.(270)

 

정체성의 상실은 순응을 훨씬 더 긴요한 과제로 만든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에 따라서 살아야만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274)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한 것은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심리적인 자동인형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죽은 존재다.(275)

 

그는 자동인형이라서 자발적 활동이라는 의미에서는 삶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흥분과 전율─술과 스포츠, 영화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의 흥분을 대리 경험하는 전율 ─도 대용품으로 받아들인다.(275)

 

자발적인 활동이 어째서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가? (...) 자발적인 활동은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자아를 자발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다시 세계와 ─인간과 자연 및 자신과─통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자발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 사랑은 분리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나 완전한 일체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일은 자발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구성요소다. 이 일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박적 활동으로서의 일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자연을 지배하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생산품을 숭배하고 그 생산품으로 자연을 노예화하는 관계로서의 일도 아니고, 인간이 창조 행위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창조로서의 일이다. (...) 자유에 내재하는 기본적인 양분성, 즉 개성의 탄생과 고독의 고통은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다.(281~282)

 

민주주의는 인간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하나의 신념, 생명과 진리에 대한 신념, 그리고 개체적 자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만 허무주의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