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를 승려로 보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승려는 마치 나뭇조각인 양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뿐더러, 공양 음식같이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고, 앉아서 조는 것도 비난을 받는다. 젊을 때는 이런저런 호기심도 있을 텐데 마치 여자라면 진저리라도 난다는 듯이 잠시도 곁눈질해서는 안 된다. 잠깐 보고 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도 없을 텐데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수도승한테는 더욱 심하게 군다. 계속된 수행에 잠시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독경은 안 하고 졸기만 해"라며 금방 투덜거린다. 승려가 된 사람은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이 지은 《베갯머리 서책(枕草子)》에서 옮겨 썼다.
나는 한때(한창 바쁘게 살 때) 잠시 틈이 나면 어느 절에든 들어가서 그게 잘하는 일인 줄 알고 돈 몇 푼 내고 절을 했다.
그러다가 '이건 미친 짓 아닌가! 내가 무슨 까닭으로, 뭘 잘했다고 복을 바라나?' 싶어서 아예 그만두었다. 때마침 방송에 나온 중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스님'이라고 하는 걸 보고 치를 떨었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나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했지 '교장 선생님'이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즈음 속세에서 온갖 고초를 겪던 내 친구가 그만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중 이름을 받자마자 잠깐 하산했다며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어이, 답설재! 나 스님 됐어! 법명은 ○○스님이야!" 해서 나도 다짜고짜 "야, 인마! 스님은 무슨 스님! 스님이 저를 가리켜 스님이라 하라고 가르치더냐?" 해버렸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는 금방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길에서 얼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두고두고 가슴이 아팠다. 나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 줄걸 하고 그것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렇게 죽을 줄이야...
어떤 중들은 고기를 잘도 먹던데 고기라도 좀 사주었더라면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을 것이다.
세이쇼나곤의 글을 읽으며 그를 떠올린 것이지만, 특히 마지막 문장은 참 새삼스럽다. "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
세상을 중들 보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그 어디서든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존경하면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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