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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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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Ⅲ B.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김재경 옮김, 혜원출판사, 2007 2010. 1. 12.
고영민 「앵 두」 앵 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깨끗한 솜씨와 감각이다. 시 쓰기 시험이 있다면 모범답안 가운데서 빠질 리 없을 것이다. “둥글고 빨간 화이바”의 그녀 얘기가 ‘앵두’란 두 음절의 제목에 받쳐져 산뜻한 균형과 더불어 아연 생기롭다. ‘앵두’ 쪽에서도 마찬가지. “빨간 화이바”의 그녀와 나란히 놓임으로써 예기치.. 2010. 1. 11.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Ⅱ B.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김재경 옮김, 혜원출판사 2007 혹한과 폭설이 이어지다가 모처럼 포근한 토요일 낮입니다. 오후에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 선생님 한 분의 결혼식 주례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또 눈이 옵니다. 지난 3일 일요일 밤에는 눈이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눈은 월요일에도 그칠 줄 모르고 내려 그날 출근을 하려던 우리 학교 교직원들 중에는 한 곳에 서 있는 버스 안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기간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기상 관측사상 제일 많이 내렸기 때문에 칠십 몇 년 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하더니 이어서 백 몇 년 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뉴스에서는 8일에도 아직 전철이 미어터질 지경이어서 .. 2010. 1. 9.
응급실 일기-2009.12.21-12.26.남양주○○병원- 응급실 일기 -2009.12.21~12.26.남양주○○병원- 지난해 12월 21일(월) 밤, 난생 처음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그 이튿날은 방학하는 날, 아이들에게 헤어지는 인사하고, 교직원들에게 점심 한 그릇 사주면서 방학 잘 보내라고 하고 나면 좀 여유로워지는데, 그걸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오.. 2010. 1. 8.
아이들을 아름답게 보기·선생님들을 아름답게 보기 이 블로그 독자 중에는 내가 우리 학교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걸 해석하는 관점 때문에 그 아이들이 정말로 아름답게 보이더라는 분이 있습니다. 고마운 평가입니다. 나는 요즘 강의를 할 때 아래 사진을 PPT 자료의 표지 그림으로 하고, 그 위에 강의 제목(가령, '학교교육과정 자율화의 관점')을 붙입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이 사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줍니다. "여러분, 이 화면의 일곱 명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을 것 같은 아이를 한 명만 골라보십시오. …… 있습니까? 자, 어느 아이입니까?" 그러면 교장, 교감은 물론 교사들도 미소를 지으며 흥미를 가지고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럴 때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2008학년도 우리 학교 2학년 아이들이 아프리카문화원에 체험학습을 갔을.. 2010. 1. 7.
김유정 『동백꽃』 김유정 단편선 『동백꽃』 문학과지성사 2009 맑은 시내에 붉은 잎을 담그며 일쩌운1 바람이 오르내리는 늦은 가을이다. 시든 언덕 위를 복만이는 묵묵히 걸었고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뒤를 따랐다. 이때 적으나마 내가 제 친구니까 되든 안 되든 한번 말려보고도 싶었다. 다른 짓은 다 할지라도 영득이(다섯 살 된 아들이다)를 생각하여 아내만은 팔지 말라고 사실 말려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저를 먹여주지 못하는 이상 남의 일이라고 말하기 좋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도 어려운 일이다. 맞붙잡고 굶느니 아내는 다른 데 가서 잘 먹고 또 남편은 남편대로 그 돈으로 잘 먹고 이렇게 일이 필 수도 있지 않느냐. 복만이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도리어 나의 걱정이 더 큰 것을 알았다. 기껏 한 해 동안 농사를.. 2010. 1. 6.
박남원 「그렇다고 굳이」 그렇다고 굳이 박남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욕정에 이끌려 하룻밤을 잤다.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도 무언가 진지함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해서 땀 흘리는 정사가 막 끝났을 때, 우리는 인간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가끔 내 스스로에게 돌아오기는 했다. 가끔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돌아오려고 노력하긴 했다. 그때마다 흔들리며 바람이 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울지는 않았다. "인간의 꿈과 희망"을 기억하는 70년대적 영혼이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이 창궐한 욕망과 욕정의 시간에, 촌스럽게도? 읽기에 따라 시 속의 "하룻밤"은 모든 타락한 세속적 삶의 은유로도 읽힌다. 희망과 .. 2010. 1. 5.
세계화시대의 한국어 신문을 보면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하라는 요청이 강한 것으로 들립니다. 국제화시대여서 그 요청이 그럴듯하지만, 가령 국문학과 같으면 난처할 것입니다. 대학과는 별 관계가 없어서 깊이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난해의『현대문학』에는「세계화시대의 한국어와 한국문학」이란 주제로 연간 여러 가지 글이 연재되었고, 12월호에는「언어,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의지」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웬만한 책은 보관하지 않기로 했고, 그 글을 다 옮길 수도 없으므로 언제 봐도 그 글의 내용을 기억할 만큼, 충분히 옮겨두기로 했습니다. 언어,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의지1 실질가치 제로를 지향해야 할 교환도구는 반전의 마술을 연출한다. 일단 화폐가 그러하다. 잘 알려져 있듯 오래전에는 쌀, 소금, 옷감 등 사용가치를 지닌 것.. 2010. 1. 4.
박지영(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신춘문예작품으로 뽑힌 시(詩) 중에는 잘난 체하는 경우가 보였다. 도대체 어떤 감동을 주려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단편소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딱 한 편으로 자신의 재주를 보여야 하니까 그렇게 잘난 체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작품 중에서 박지영의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은 참 재미있었다. 우선 잘난 체하지 않아서 읽기가 편했다. 청소기 A/S 기사 얘기였다. A/S를 해주러 돌아다니며 인간들의 불합리한 짓거리들을 보고 '이 지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단정하여 타락한 이 지구를 -청소기로 먼지를 다 빨아들이듯- 싹 쓸어버리고 싶어하던 남자가 따뜻한 시선을 가지기까지의 이야기라고 간추릴 수 있겠다. 굳이 주제를 보여주는 장면을 찾으라면 다.. 2010. 1. 3.
2010년 새해 인사 샴발라의 가르침에 의하면, 통찰력은 호랑이의 성품과 연결된다. 호랑이는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절대로 방심하지 않는다. 호랑이는 주변 환경을 존중한다. 성급하게 굴지도 않는다. 언제 사냥을 해야 하는지, 언제 시원한 곳으로 가서 쉬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호랑이는 아무렇게나 배회하다가 달려들어 무엇을 먹을까 살피지 않는다. 먼저 조용히 앉아서 풍경을 관찰하며,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살핀다. 그러고 난 다음 최선을 다해 사냥감을 덮친다. 호랑이의 마음은 소탈하며 전혀 거만하지 않다. 그리고 도약하기 전에는 온 마음을 다해 신중하게 검토한다. 무엇을 하든지 완전히 몰입한다. 호랑이의 이런 참을성 있는 품성은 드넓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서구에서는 참을성과 온순함을 나약함으로 연결 짓는다. (그러나) 티베트 .. 2010. 1. 2.
2010년 교장으로 살아가기 (2010년 1월 1일) 옛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각 교육청으로 넘기겠다고 했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오히려 초․중등교육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과학기술부 새해 6대 주요업무 내용을 보면, 첫 번째가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전면적용이고, 대학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창의적이고 인성을 갖춘 인재개발이 두 번째다. 구체적으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당장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핵심적인 과제가 국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및 관련 정보 공개다. 지난해에는 지역별로 공개한 성적을 올해는 학교별로 공개할 예정으로, 오랫동안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것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삼스러워졌고, 이 공개에서 떳떳하지 못한 학교는 다른 어떤 것도 내세우지 못할 .. 2010. 1. 1.
우리 학교 합창단 우리 학교 합창단 지난 12월 19일 오후, 의정부 신흥대학 벧엘관에서 '2009 행복 어울림 다문화 축제'가 열렸습니다. 경기도교육청(제2청) 주최, 구리남양주교육청 주관으로 이웃 교육청들이 협력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초등학교에서 마술, 가야금 연주, 동화구연, 창작무용, 전통혼례극, 중국어 연극.. 2009.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