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단편선 『동백꽃』
문학과지성사 2009
맑은 시내에 붉은 잎을 담그며 일쩌운1 바람이 오르내리는 늦은 가을이다. 시든 언덕 위를 복만이는 묵묵히 걸었고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뒤를 따랐다. 이때 적으나마 내가 제 친구니까 되든 안 되든 한번 말려보고도 싶었다. 다른 짓은 다 할지라도 영득이(다섯 살 된 아들이다)를 생각하여 아내만은 팔지 말라고 사실 말려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저를 먹여주지 못하는 이상 남의 일이라고 말하기 좋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도 어려운 일이다. 맞붙잡고 굶느니 아내는 다른 데 가서 잘 먹고 또 남편은 남편대로 그 돈으로 잘 먹고 이렇게 일이 필 수도 있지 않느냐. 복만이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도리어 나의 걱정이 더 큰 것을 알았다. 기껏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 털어서 쪼개고 보니까 나의 몫으로 겨우 벼 두 말 가웃이 남았다. 물론 털어서 빚도 다 못 가린 복만이에게 대면 좀 날는지 모르지만 이걸로 우리 식구가 한겨울을 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고대로 캄캄하다. 나두 올 겨울에는 금점이나 해볼까. 그렇지 않으면 투전을 좀 배워서 노름판으로 쫓아다닐까. 그런데도 밑천이 들 터인데 돈은 없고 복만이같이 내다팔 아내도 없다. 우리 집에는 여편네라곤 병든 어머니밖에 없으나 나이도 늙었지만(좀 부끄럽다) 우리 아버지가 있으니까 내 맘대로 못하고─
이런 생각에 잠겨 짜증2 나는 복만이더러 네 아내를 팔지 마라 어째라 할 여지가 없었다. 나도 일찍이 장가나 들어두었으면 이런 때 팔아먹을걸 하고 부질없는 후회뿐으로.3
재봉이가 황거풍이라는 작자에게 아내를 팔아먹게 된 친구 복만이를 위해 매매 계약서를 써주러 가는 길입니다. 그 계약서는 이렇게 쓰게 됩니다.
“매매 계약서 / 일금 오십 원야라. / 위 금은 내 아내의 대금으로써 정히 영수합니다. / 갑술년 시월 이십일 / 조복만 / 황거풍 전” 그러나 황거풍이 이의를 제기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 아내는 물러달라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어떻습니까. ‘에이, 세상에 그런 일이…….’ 싶겠지만 단편「가을」을 읽어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편선『동백꽃』은 한때 김유정이 살았던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관’에서 구입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어느 토요일, 초등학교 동기생의 혼사가 있어 춘천을 갔는데 마침 한 시간 정도 일러 ‘어떻게 하나?’ 하다가 김유정역 가까이 ‘김유정문학관’(www.kimyoujeong.org)이 있다는 팻말을 보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한적했고, 젊은 여 선생을 따라 ‘문학기행’을 온 고등학생 몇몇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런 단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4 감명은커녕 ‘왜 이런 작품을 이리 자세히 읽어야 하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그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증5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안죽6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볼 수 없이 고만 벙벙하고7 만다.
이래서 나는 애초에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가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8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9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단편선 『동백꽃』에는 이런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김유정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좀 수다스럽기는 하지만 한 편도 빼놓을 수가 없으므로 이 단편선에 실려 있는 소설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심청」「산골 나그네」「총각과 맹꽁이」「소낙비」「솥」「만무방」「노다지」「금」「금 따는 콩밭」「떡」「산골」「봄․봄」「안해」「봄과 따라지」「따라지」「가을」「두꺼비」「동백꽃」「야앵夜櫻」「옥토끼」「정조貞操」「땡볕」「형」.
이 이야기들이 모두 이렇습니다. 병든 남편의 겨울옷을 마련하기 위해 사기결혼을 하거나, 남편의 노름빚을 얻기 위해 몸을 맡기거나, 뭇 남자들에게서 생활용품과 생활비를 거두어 남편과 떠나거나, 아이를 살리기 위해 후살이를 작정하거나, 금을 캔다고 멀쩡한 콩밭을 파들어 가거나, 아내의 몸으로 이밥을 먹기 위해 들병이10로 나가거나, 남편의 빚을 가리기 위해 소장수에게 팔려갔다가 남편과 함께 줄행랑을 치거나, 행랑어멈이 서방님을 유혹해 고뿌술집을 차릴 밑천을 얻어 나가거나, 동발이 무너지면서 형우제공(兄友弟恭)을 기약한 사이의 의형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조하는 대신 금쪽을 들고 탈출하거나, 연모하는 남자를 두고도 남자 손님을 거리낌 없이 셋방으로 불러들여 몸을 상품화하거나, 제 논의 벼를 제가 훔쳐 먹지 않으면 안 되거나, 살기 위해 제 다리를 제가 자해하거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연상의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거나, 지참금 때문에 남의 씨를 임신한 처녀에게 장가를 가야 하거나…….11
김유정 문학의 특징은 이 책의 작품해설이 상세히 하고 있으므로 그걸 요약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고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곳곳이 절묘한 시골풍경입니다. 딱 한군데만 보면, ‘산골에,’ 하고 쉼표를 붙이고 시작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일 것입니다.12
산골에, 가을은 무르익었다.
아람드리13 노송은 삑삑이 늘어박혔다. 무거운 송낙14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15, 돌배, 갈잎들은 울긋불긋.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 놈은 한가로이 마주 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고.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흙내와 함께 향긋한 땅김이 코를 찌른다. 요놈은 싸리버섯, 요놈은 입 썩은 내 또 요놈은 송이─아니, 아니 가시넝쿨 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군.
그러나 오늘 우리가 20세기 초반을 잠깐 살다간 김유정의 작품집을 채 만 원도 되지 않는 값으로, 그것도 그 책을 구입하는 것을 조금은 잘난 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김유정문학관’에서 나누어주는 안내장의 다음과 같은 연보를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30년대 한국소설의 축복
金裕貞
1908.1.11~1937.3.29
1908년 1월 11일(음), 아버지 청풍 김씨 김춘식, 어머니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던 1914년 가족이 모두 서울 종로구 운니동(진골)으로 이사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보에 검정으로 입학, 안회남과 같은 반이 돼 친하게 지냈다. 1929년 휘문고보를 졸업, 길거리에서 만난 박록주(1905~1979)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편지를 보냈지만 외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16 193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출석일수가 적어 제적되자 실레마을로 내려와 조명희, 조카 김영수와 함께 야학을 하고, 농우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1933년 상경하여 안회남의 주선으로17『제1선』에「산골 나그네」를 발표,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소낙비」당선, 조선중앙일보에「노다지」가 가작 입선되어18 정식으로 등단한 이후 폐결핵, 치질과 싸우면서「금 따는 콩밭」「봄․봄」「안해」등을 발표했다.19 1936년엔 박용철의 누이동생 박봉자를 짝사랑하여 31통의 혈서를 썼지만 회신은 받지 못했다. 사랑의 좌절, 극심한 병마 속에서도「동백꽃」「가을」「정조」등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1937년 3월 29일, 안회남 앞으로 보낸 편지「필승 前」(3.18)20을 끝으로 악화된 폐결핵, 치질을 고치지 못한 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누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1938년 단편집『동백꽃』이 삼문사에서 발간되었다.
‘오늘 우리가 1930년대를 잠깐 살다간 김유정의 작품집을 채 만 원도 되지 않는 값으로, 그것도 저의 경우 그 책을 구입하는 것을 조금은 잘난 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김유정이나 톨스토이나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면 다 고등학교 때나 읽을 만한 책들이 분명한데, 그래야 제대로 된 사람일 것 같은데, 저는 이제 낼모레가 정년인 이 나이에 이 소설들을 새삼스레 정성들여 읽고 있으니 장차 무얼 하자는 건지, 제가 자신을 생각해도 참 한심하긴 합니다.
김유정문학관, 주차장에서 본 금병산과 실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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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쩝다 귀찮거나 불편하다. 여기서는 바람이 스산함을 의미(김유정 단편선 편집자 주).
2. 짜증 짜정. 사실. 정말이라는 뜻(위와 같음).
3. 김유정 단편선『동백꽃』(문학과지성사, 2009),「가을」에서(270~271쪽)
4. 「봄․봄」중에서(198~199쪽)
5. 짜증 짜장. 정말로(김유정 단편선 편집자 주).
6. 안죽 아직(위와 같음).
7. 벙벙하다 어리둥절하다(위와 같음).
8. 붙백이 ‘붙박이’의 사투리. 어느 한 자리에 정한 대로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위와 같음).
9. 숙맥 어리석고 못난 사람(위와 같음).
10. 들병이 병술을 받아서 파는 떠돌이 술장수 계집(위와 같음). 1.일쩝다 귀찮거나 불편하다. 여기서는 바람이 스산함을 의미(김유정 단편선 편집자 주).
11. 유인순의 작품해설,「행복과 등진 열정─김유정의 생애와 문학」(김유정 단편선 동백꽃』 421~453쪽)에서 발췌. “김유정 작품의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등장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와 역동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짝짓기를 통한 종족의 보존과 생존 본능 앞에 솔직하고 용감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충만한 생명감을 느끼게 된다(『동백꽃』421쪽, 유인순, 작품해설「행복과 등진 열정─김유정의 생애와 문학」에서). ”김유정 문학 속의 해학은 빅극이 될 소재를 희극으로 연출한 서글픈 해학이다. …(중략)… 표면적으로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눈물겨운 웃음으로, 곧 전통적인 해학과는 거리가 있는 김유정투의 해학으로 생산된 것이다.“(위 작품해설, 442~444쪽).
12. 「만무방」의 첫머리(85쪽)에서. ‘만무방’이란 예의나 염치없는 잡놈의 무리. 제멋대로 되어먹은 사람(김유정 단편선 편집자 주).
13. 아람드리 아름드리.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것을 지칭(위와 같음).
14. 송낙 여기서는 소나무 겨우살이를 의미(위와 같음).
15. 벚 벚나무(위와 같음).
16. 말더듬은 김유정으로 하여금 염인증에 빠지게 했다. 여기에 조실부모와 방탕한 형님과 가문의 몰락은 김유정을 자폐 상태로 몰고 간다. …(중략)… 그는 사랑을 원했다. 그때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이 명창 박녹주였다. 박녹주와의 소통을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이 문자 언어였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박녹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동백꽃』427쪽, 유인순, 작품해설「행복과 등진 열정─김유정의 생애와 문학」에서). 김유정은 처음 박녹주를 만났을 때, 그녀가 동편제의 명창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여자를 따라갔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밤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매일 한 장씩 보내었다(위의 작품해설, 433쪽).
17. 안회남은 자신의 아버지(안국선)가 많은 저서를 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동물회의록(動物會議錄)』(사실은『금수회의록』)이 발행 당시에 4만부를 돌파한 조선 출판계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것에 감격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기억을 갖고 있는 안회남,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김유정, 얼마나 부러웠을 것인가((위 작품해설 430쪽).
18. 김유정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문학 창작에 매달렸다(위 작품해설 429쪽),
19. 농후한 개성과 전통미가 홍수를 이루고 있을뿐더러 일종 수줍은 고전미를 갖고 있는 작품의 작가였다(위 작품해설, 436쪽).
20.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위 작품해설 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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