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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B.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Ⅰ

by 답설재 2009. 12. 29.

B.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

김재경 옮김, 혜원출판사, 2007

 


 

 

 

 

 

 

 

 

 

 

지난여름 참 좋은 어느 선생님이 이미 절판이 되었다는『닥터 지바고』 음반을 구해주었습니다. 그걸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걸 들으면 음반을 구해준 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만큼은 아니라 해도 짧은 시간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기에는 좋을 음반입니다.

 

지난 11월 11일에 베이징에 갔었는데, 마침 폭설이 내리는 걸 보며 그 소설과 영화가 떠올랐고, 13일 오후에는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인민교육출판사 직원이 티벳까지 간다는 칭짱열차 이야기를 해서 또 그 소설과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영화는 세 번을 봤습니다. 감동적이어서 세 번씩이나 봤다기보다는 "감동적!"이라고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1968년엔가 처음 봤는데, 지금은 그냥 그립기만 한 어느 친구가 “봤더라도 또 봐도 된다”고 해서 함께 봤고, 몇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남산의 어느 극장도 그렇게 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멋진 사람인데도 어쭙잖은 나는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그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는 펼쳐지는 장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강하게 다가오도록 제작된 것이 영화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령 처음의 장례식 장면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우선 소년이 바라보는 나뭇가지, 그 위를 불어가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음악이 그렇습니다.

 

『닥터 지바고』는 소설과 영화와 그 배경음악이 각각 하나의 작품으로서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소설과 영화에서 같은 장면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차이가 있고 그려지는 이미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이야 나 혼자 들으며 내 생각을 하게 되므로 어차피 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위에서 이야기한 장례식 장면을 옮겨봤습니다.

 

 

  <편히 잠드소서>를 노래 부르며 장례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행렬이 멈추고 노래가 멎을 때마다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바람 부는 소리가 끊어진 노랫가락을 이어받는 것 같았다.  길 가던 행인들은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며, 화환의 수를 세어보거나 성호를 긋기도 했다. 호기심에 못 이겨 행렬에 끼어들어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댁 장례인가요?”─“지바고 댁이오.” 누군가가 대답했다. “어쩐지! 그래서 다르군요.”─“주인 양반이 아니고 부인이랍니다.”─“그거야 마찬가지가 아니오. 명복을 빌겠습니다. 아주 성대한 장례식입니다.”

  마지막 가는 순간의 하나하나가 되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온 누리가 주님의 것이니, 거기서 삶을 누리는 모든 것 또한 주님의 것이니라.” 신부는 기도가 끝나자 성호를 긋고 나서 마리아 니콜라예브나의 시신 위에 엄숙히 한 줌의 흙을 뿌렸다. 그러나 모두들 하관할 때 부르는 <참된 영혼>이라는 찬송을 불렀다. 이윽고 부산해지기 시작하며, 관이 닫히고, 못이 박히고, 관이 구덩이에 내려 놓였다. 네 사람의 삽질에 의해 관 위로 비 오듯이 흙이 떨어져 내리며 구덩이가 메어져 갔다. 잠시 후 작은 무덤이 만들어졌다. 열 살가량의 사내아이가 그 무덤 위로 올라갔다. 성대한 장례식 후에 으레 있는 허전하고 무감각한 상태는 그 소년이 어머니 무덤 위에서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했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황량한 가을 풍경과 수도원의 둥근 지붕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들창코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소년은 목을 길게 뽑았다. 그것은 마치 이리새끼가 금세 짖기라도 하려는 모습 같았다. 소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줄기를 머금은 바람이 그의 손과 얼굴을 때렸다. 그때 소매가 꼭 끼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덤의 소년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죽은 부인의 동생이자, 울고 있는 소년의 외삼촌으로 한때는 성직자였으나 스스로 성직(聖職)을 물러난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베데냐핀이었다.

  그는 소년을 묘지에서 데리고 나왔다.(7~8)

                                                                                                           - 제1장 ‘다섯 시 급행열차’ 중 제1절 전문(全文)- 

 

 

  소설이 영화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은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지만 그 분위기를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단 번역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특히 눈보라와 소년을 눈여겨보면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니콜라이 아저씨의 안면으로 수도원의 방 하나를 빌려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은 성모제(聖母祭) 전날 밤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니콜라이 아저씨가 근무하는 진보적인 지방 신문을 발행하는 출판사가 있는 볼가강 유역의 지방 도시로 가기 위해 멀리 남쪽으로 여행할 예정이었다. 기차표는 미리 사두었고, 짐도 꾸려서 방에 이미 가져다 두었다. 기차역이 가까이 있어서, 선로를 바꾸는 기관차의 쓸쓸한 기적소리가 멀리 바람결에 들려왔다.

  저녁녘에는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다. 방에는 밖의 지면과 같은 높이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들을 통해 돌보지 않는 채소밭 한 귀퉁이와 얼어붙은 웅덩이를 드러낸 채 멀리 뻗어 있는 큰길이 보였으며, 낮에 마리아 니콜라예브나를 매장한 바로 그 묘지의 일부도 바라보였다. 누런 아카시아 숲으로 울타리 쳐진 채소밭에는 추위에 파랗게 쪼그라든 양배추 몇 이랑이 남아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벌거숭이가 된 아카시아 숲이 춤을 추며 길가를 뒤덮곤 하였다.

  한밤중에 소년 유라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잠이 깼다. 캄캄한 방안에 뭔가 희끗희끗 신비한 빛이 어른대고 있었다. 유라는 속옷 바람으로 창가로 달려가서 차가운 유리창에 바싹 얼굴을 들이댔다.

  밖에는 길도, 묘지도, 채소밭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뿌연 눈보라만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폭풍은 유라를 보자 자기의 힘을 뽐내며 소년에게 무서운 인상을 주려는 듯이,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하얀 휘장이 연거푸 공중에서 뒤집히듯 내려와 퍼지면서 대지를 겹겹이 뒤덮고 감싸고 있었다. 눈보라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였으며, 거기에 대항할 아무도 없었다.

  창문가에서 물러난 유라는 얼른 옷을 입고 바깥으로 달려나가서 무언가 빨리 손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수도원의 양배추가 눈에 묻혀 뽑아낼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그리고 들판에 묻힌 어머니가 꼼짝 못하고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할 땅속 깊이 더 멀리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나 아닐까 두려웠던 것이다.

  다시금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아저씨가 잠에서 깨어나 예수님의 이야기로 그를 위로하려 했으나, 이내 하품을 하고는 무슨 생각에 잠기며 창가로 가버렸다. 날이 밝자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들은 옷을 입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제1장 ‘다섯시 급행열차’ 중 제2절 전문(全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