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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티크 라히미 『인내의 돌』Ⅱ

by 답설재 2009. 12. 19.

 

아티크 라히미Atiq Rahimi․ 『인내의 돌Syngue Sabour: Pierre de Patience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2009.

 

 

 

 

 

                                                       

♧ 처음 한 부분

 

이 사진 맞은편, 벽 아래쪽에 같은 남자가, 사진보다 나이 든 모습으로 바닥에 놓인 메트리스 위에 길게 누워 있다. 턱수염을 길렀다. 수염이 희끗희끗하다. 사진보다 말랐다. 너무 말랐다. 가죽밖에 안 남았다. 창백하다. 주름투성이다. 코는 사진보다 더 독수리 부리를 닮았다. 여전히 웃지 않는다. 계속 비웃는 듯 야릇한 표정이다. 입은 조금 벌어져 있다. 사진보다 한층 더 작아진 두 눈은 눈구멍 속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 시선은 한사코 천장에만, 뚜렷하게 드러난 꺼멓게 변하고 썩어가는 대들보 사이에만 고정되어 있다.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힘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다. 투명한 피부 밑으로 보이는 핏줄들이 벌레처럼, 몸 전체에 뼈대에서 불쑥 튀어나온 뼈와 얽히어 있다. 왼쪽 손목에는 기계식 시계를 찼고 약지에는 금으로 된 결혼 반지를 끼고 있다. 오른팔 팔꿈치 안쪽 움푹 들어간 곳에는 소식자消息子(관 모양의 의료기구)가 부착되어, 벽에 매달린 비닐 주머니에서 나오는 무색의 액체를 계속 몸에 주입한다. 몸의 나머지 부분은 청색의 긴 셔츠로 덥혀 있다. 깃 부분과 양쪽 소매에 수를 놓은 셔츠다. 말뚝처럼 딱딱하게 굳은 두 다리는 지저분한 흰 시트 속으로 들어가 있다.(12~13)

 

♤ 그리고 몇몇 부분

 

파리 한 마리가 소리 없는 방 분위기에 끼어든다. 파리는 남자의 이마에 앉는다. 머뭇머뭇. 불확실하게. 파리는 남자의 주름살 위를 돌아다니며 아무 맛도 없는 그의 피부를 핥는다. 아마 아무 맛도 없을 것이다.파리는 남자의 눈가로 내려온다. 여전히 머뭇머뭇. 여전히 불확실하게. 파리는 눈의 흰자를 맛보고, 물러선다. 파리를 쫓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파리는 계속 나아가, 남자의 수염 속에서 헤매다가 코로 기어 올라간다. 날아오른다. 몸을 탐색한다. 돌아온다. 다시 남자의 얼굴에 앉는다. 헤벌어진 입 속에 끼워진 관管에 달라붙는다. 파리는 그 관을 핥고 관을 죽 따라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만나는 곳까지 간다. 침은 없다. 맛도 없다. 파리는 더 나아가 남자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입 속 깊이 들어간다.(43~44) 잠깐씩, 미미한 바람이 일어 커튼이 살포시 부푼다. 바람은 여기저기 구멍 난 커튼의 노랗고 파란 하늘 배경에 붙박이로 그려진 철새들과 함께 논다.(81) "당신 형제들, 그들은 항상 나랑 자고 싶어 했어! 그들은…." 남자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간다. "그들은 나를 엿보았어……. 항상, 당신이 곁에 없던 삼 년 동안…… 그들은 내가 목욕을 하는 동안 욕실의 작은 창문으로 날 엿보았어. 그러면서…… 수음을 했어. 그들은 밤이면 당신과 나를 엿보기도 했어……."(87~88)

 

♣ 마지막 한 부분

 

소리죽인 웃음이 그녀의 가슴에서 새어 나온다. "오, 나의 생게 사부르. 여자로 산다는 게 힘들면, 남자로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들어지는 거야!" 긴 한숨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온다. 그녀는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두 눈이, 어둡게, 뒤집힌다. 점점 더 핏기가 빠져나가는 입술을 움직여 기도 같은 무슨 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이하게도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만약 모든 종교가 계시 즉 진실의 계시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그렇다면, 나의 생게 사부르, 우리의 이야기 역시 하나의 종교야. 우리만의 종교!" 그녀는 걷는다. "그래, 몸은 우리의 계시야!" 걷다가 멈춘다. "우리의 몸, 그 몸의 비밀, 상처, 고통, 쾌락……." 그녀는 마치 진리를 양손에 쥐고 그걸 남자에게 주려는 듯 얼굴이 환해져서 남자에게 와락 달려든다. "그럼, 그럼, 나의 생게 사부르…… 신을 일컫는 아흔아홉 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이름이 뭔지 당신 알아? 그건 '알-사부르', 인내하는 자라는 뜻이지! 당신을 봐, 당신은 신이야. 당신은 존재하면서, 움직이지 않잖아. 당신은 들으면서, 말하지 않잖아. 당신은 보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잖아! 신처럼, 당신은 인내하고, 마비되어 있어. 그리고 난, 난 당신의 메신저야! 당신의 예언자! 난 당신의 목소리야! 당신의 시선이고! 난 당신의 손이야! 난 당신에게 계시를 해주지! 알-사부르!" 그녀는 초록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리고 한달음에, 돌아서서 마치 대중 연설을 하듯이 양팔을 벌리며 큰소리로 외친다. "바로 이것이 신의 계시입니다. 알-사부르!" 그녀의 한 손이 남자를 가리킨다. 멍한 시선으로, 부재하는 창조를 마주 보는 남자.그녀는 이 계시에 이끌려간다. 이성을 잃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하던 연설을 마저 하려고 하지만, 그녀 뒤에서 한 손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다. 그녀는 뒤돌아본다. 그녀를 잡은 것은 남자, 그녀 남편이다. 그녀는 움직이지 못한다. 청천벽력을 맞은 듯, 딱 벌린 입. 말을 잃었다.뻣뻣하고 메마른 바위를 누가 단번에 들어 올리듯이 그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난다."이건…… 이건 기적이야! 부활이야!" 그녀가 공포에 질려 목 졸린 듯한 소리로 말한다. "내 비밀이 당신을 살려서 내게 돌려줄 줄 알았어. 알고 있었다니까……." 남자는 그녀를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겨, 머리채를 쥐고 그녀의 머리를 벽에 갖다 쾅 박는다. 그녀는 쓰러진다. 비명도 못 지르고 울지도 못한다. "됐어…… 당신 폭발하네!" 환각에 빠진 듯한 그의 시선이 산발한 그녀의 머리채를 관통한다. 그녀의 음성이 빈정대듯이 이런 말을 한다. "내 인내의 돌이 폭발하네!" 그러더니 외친다. "알-사부르!" 그리고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알-사부르! 난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됐어." 그리고 남자의 두 발을 그러잡는다.남자는, 혈색 없고 핼쑥한 얼굴로, 다시금 여자를 낚아채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려 단검과 사진이 걸려 있는 벽에대 패대기친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다시 그녀 몸을 붙잡고 들어 올려 벽에 부딪친다. 여자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머리가 벽의 단검에 닿는다. 그녀의 한 손이 그 단검을 잡는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그 단검으로 남자의 가슴을 찌른다. 피 한 방울도 솟아나지 않는다.그는 여전히 뻣뻣하고 냉정하게 여자의 머리채를 그러쥐고 땅바닥에 누운 그녀를 질질 끌고 방 한복판까지 간다. 다시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대고 쾅쾅 치더니, 메마른 동작으로 목을 비튼다.(211~215)…(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