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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티크 라히미 『인내의 돌』Ⅰ

by 답설재 2009. 12. 18.

아티크 라히미Atiq Rahimi․ 『인내의 돌Syngue Sabour: Pierre de Patience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2009.

 

 

 

 

 

이런 헌사가 적혀 있습니다.

"남편의 손에 야만적으로 살해된 아프가니스탄 시인 N.A.를 추모하면서 쓴 이 이야기를 M.D.에게 바친다."

 

『현대문학』2009년 10월호에는 이 모티브를 포함하여 자세한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1

 

나는 이 구석에 갇혀 있다.

우울하고 슬픔으로 가득하여

나는 날개가 접혀 날 수도 없다.

나는 아프칸 여자다, 목 놓아 울어야 하는.

 

위의 시는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Nadia Anjouman의 가잘(서정시)인데, 여기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한다. 이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비유다. 수많은 시인들이,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해왔다. 아니, 굳이 시인일 것까지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도 압박과 구속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안주만의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것이 시인 자신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수없는 세월을 살아온 아프간 여성들, 날개를 접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잘렸다고 해야 더 적절할 듯싶은 아프간 여성들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것이 꽃다운 이십 대 여자 시인의 손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시인이 2005년 11월 4일, 그러니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을 때, 남편한테 맞아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덧붙여지면,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니라 애도哀悼의 의미까지 더해져 "목 놓아 울어야 하는" 애절한 비유가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헤리트대학에 다니던 안주만은 살해될 당시, 첫시집『검은 꽃Gule Dudi』(2005)을 막 발표하고 두 번째 시집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의 가족(남편과 시어머니)은 "여자가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시집을 출간해 가족을 치욕스럽게 했다며 노발대발했다." 결국 그녀는 "시 때문에 살해당한" 셈이었다(『선데이타임스The Sunday Times』(2005년 11월 13일). 유엔도 성명을 내어 그녀의 죽음이 "비극적 손실"이라며 그 사건을 두고 "아프가니스탄의 가정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했을 만큼,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시를 썼다고 찬사를 받지는 못할망정 "시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것이 지금 세상에 무슨 가당찮은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지식과 교육, 정치와 경제 등 사회의 모든 것들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 시인이 시를, 그것도 사랑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아프간 여성의 암울한 실존적 삶을 소재로 한 시를 썼다는 것은 적어도 일부 남성들에게는 지배이데올로기와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여성의 삶이 제아무리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 해도,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어가 아버지로 대변되는 남성의 것으로 인식된 탓이었을 것이다.

…(후략)…

 

평론가 왕은철(전북대 영문과 교수)은 이 글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습니다.2 "『인내의 돌』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날개가 접혀 새장에 갇힌 것을 서글퍼하는 안주만과 전혀 다른 성격의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분노와 애도의 작업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안주만이어서는 안 되었다. 남성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여성이어서는 안 되었다."

 

다음은 이 소설의 줄거리와 특징에 관한 부분입니다.3

 

플롯이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방에서 전개된다. 익명의 여성이 움직임도 없고 말도 없이 방에 무력하게 누워 있는, 심하게 다친 남편을 간호한다. 전쟁 중인 군벌들이 도시를 약탈할 때, 여자는 튜브로 남편에게 음식을 먹인다. 그녀는 그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그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에게 얘기를 한다.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댐이 차츰 무너지면서 놀라운 고백의 홍수가 밀려온다. 여자는 점점 더 대담하게,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실망감, 자신이 악착같이 지키던 비밀들, 자신의 욕망과 희망들, 그의 손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남편은 그녀의 앞에 돌처럼, 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빨아들인다는 전설 속의 돌처럼 누워 있다. 그러면서 여자는 자신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려나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독백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녀가 토해내는 것은 용감하고 충격적인 고백일 뿐만 아니라 전쟁, 남자들의 잔인함,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끝없이 괴롭혀 인내의 돌처럼 군소리 없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게 만드는 종교, 결혼, 문화의 규범에 대한 매서운 고발이다.

…(중략)…

또한 모든 이야기가 방 안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전개되지만, 거리에서 진행되는 전쟁이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된 것은 리히미의 문학적인 역량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익명의 파벌들 간에 벌어지는 전쟁의 망령이 제3의 인물로 방 안에 들어와 있다. 라히미는 우리를 거리로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대부분의 무력한 시민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전쟁을 경험하게 만든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총성과 비명 소리를 듣고 간담이 서늘한 침묵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는 방이 흔들리고 회반죽 가루가 쏟아져내릴 때, 박격포의 위력을 느낀다. 우리를 거리로 데려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라히미는 혼란과 무질서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행해지는 의미 없는 야만적 행위, 사람들의 목숨을 느닷없이 앗아 가는 무작위적이고 갑작스러운 폭력을 성공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파벌 간의 싸움은 지난 삼십 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역사 중 가장 어두운 부분이었다. 라히미의 절제된 산문이 그 시대를 아주 훌륭하게 되살려내고 있다.프랑스의 저명한 <콩쿠르상>을 수상한『인내의 돌』은 절제되고 시적인 스타일로 쓰여진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풍요로운 독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는 알레고리이며, 부분적으로는 보복의 이야기이며, 부분적으로는 명예와 사랑과 섹스와 결혼과 전쟁에 대한 탐구이다. 이 소설이 중요하고 용기 있는 책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독자로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 소설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데 있다. 고통을 가장 많이 당하면서도 소리는 가장 적게 내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익명의 주인공은 자신과 같은 수백만 여성들의 불만을 위한 힘찬 도관導管의 기능을 하고 있다. 물건 취급을 당하고, 소외와 멸시를 당하고, 불에 지져지고 매로 맞고, 조롱당하고 억눌려온 여성들을 위한 도관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인내의 돌』에서 그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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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은철,「인내의 돌을 필요로 하는 제3세계 여성들과 시적인 복수」(『현대문학』2009년 10월호, 178~179쪽.

2. 위의 글, 180쪽.

3. 할레드 호세이니·왕은철 옮김,「약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아티크 라히미」(『현대문학』2009년 10월호, 200~203쪽).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는 1965년 아프가니스탄 카블 출생으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캘리포니아주립대 의대를 졸업하였고 장편소설『연를 쫓는 아이』『천 개의 태양』을 썼다. 현재 난민들을 돕기 위한 NGo에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