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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 슈프랑거 『천부적인 교사』

by 답설재 2009. 12. 14.

『천부적인 교사』

E. 슈프랑거·金在萬 譯, 『천부적인 교사』(배영사, 1983 重版)

 

 

 

 

 

 

 

E. 슈프랑거는1 "천부적인 장군과 마찬가지로 천부적인 교사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미 서론에서 충분히 설명됩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14)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 치고 정열 없이 성취된 것은 없다」고 한 헤겔의 말 가운데서 정열이란, 말하자면 전체적인 정신활동으로부터 개인에게 분여(分與)된 정신의 부분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하찮은 개인의 생활이 세계정신의 큰 업무에 참가할 때는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자기의 행복에의 추구가 어느 정도까지 달성된다. 이것이 곧 「이성이란 이름의 술책(狡智, 策略)」인 것이다. 이 술책이 정열을 움직여서 그의 세계정신의 업무 수행에 연결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목적들이 위대한 역사세계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올해 6명이 참여한 수업연구발표대회 결과 1등급 3명, 2등급 3명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2등급 3명 중에는 제가 보기에 1등급을 받을 만한 수업을 한 분이 두 명이 더 있으므로 이 성적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1등급 25%, 2등급 25%, 3등급 50%가 심사의 강제적인 배분이라면서 이만하면 썩 좋은 결과라고 하니 할 말은 없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학교에는 이런 실력을 가진 선생님이 약 2/3는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1/9만 참여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건 '대충 하는 소리'가 아니고 약 2년간 서너 차례 둘러본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교육청에서 심사위원을 뽑아 '수업 보고서'라는 걸 심사하고 현장 실사를 하는 방법이 엉터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만큼 심사방법을 정교화해서 객관적인 점수와 등위를 부여하므로 어느 정도는 믿을 만하다는 뜻이고, 요즘 수업 현장을 보면 순 장사꾼 같은, 혹은 학원강사 같은 쇼맨십2을 보여주는 현상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게 통하지 않고 아이들의 사고 활동 중심의 수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이분들의 수업안을 중심 내용으로 한, 『수업 탐구의 과정』이라는 제목의 공저(共著)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이 구상되었습니다.

 

 

                <**수업 탐구의 과정>**

 

◈ 수업탐구의 즐거움(교장 김○○)

◈ 일반적인 수업모형(교장 김○○)

 

◈ 몇 가지 사례

 * '생각키우기'의 생활화를 통한 슬기로운생활과 탐구능력 신장(한○○)

* 구성주의적 탐구학습을 통한 과학적 문제해결력 신장(신○○)
* 의사소통 중심의 소집단 협동학습을 통한 문제해결력 신장 : 수학과(권○○)
* 찾아가는 재미, 알아내는 재미, 숨겨진 보물찾기 : 사회과(나○○)
* 상황 맥락 이해를 통한 문학 감상능력 신장(이○○)
* 체계적인 조형요소와 조형원리 지도로 창의적 표현에대한 심미적 안목 기르기(노○○)
- 각 사례는 주안점, 보고서와 지도안, 특징적인 노력, 발전적 과제의 순으로 작성

 

◈ 수업탐구의 실제적 관점(교감 이○○)

◈ 결론(교장 김○○)

 

 

그러나 다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중순, 중국으로 출장을 갈 때 그 지도안들을 가지고 가 검토해 오려고 생각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챙겨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사정? 선생님들이 자신의 원고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공개하기가 싫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싸갖고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며 써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책을 만들고 싶어한 것은... 엉뚱한 구상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월이 "당신은 이제 곧 교장이 아니므로 그만두라"고 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곧 교장이 아니므로 그만두라"? 수업사례를 갖고 있는 저 선생님들이 그 수업안을 책을 내어 공개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지식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개발한 것이니까 두고두고 내가 써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하는 것은,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아야 내 재산으로 인정받는 데 더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언젠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사례집이 이미 20세기에도 수없이 많이 나와서 그들의 교육수준을 높여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각 교과 교육학에서 사례 중심 지도법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므로, 앞으로는 교수들뿐만 아니라 현장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일을 시도하면, 그냥 혼자서 그 수업안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한층 발전적인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은 뻔한 일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는 이 수업밖에 없다는 양 평생을 그 파일만 들고 다니는 '거지꼴'로 끝난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의 '천부적인 교사'가 되어갈 것입니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 끝난 일이니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 슈프랑거의 결론에서 맨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많은 체험과 환멸에 의해서 그의 힘은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그의 개성을 일관해서 따라오는 정신의 정열을 그는 훗날에 가서 비로소 알게 된다. 교육애를 그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훨씬 뒷날에 가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천부적인 교사라 부르는 것은, 그가 이리하여 자기에게 알맞는 사명을 발견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순히 자연적인 것을 서서히 흡수하고, 그것을 자기의 보다 고차적 의미로서 충만시키고, 교육자에게 과해진 의무를 곤란한 때에도 역시 수행해 내도록 힘을 주는 것이 이 정신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보다 높은 자아를 해방하는 정신인 것이다.(162)

 

'천부적인 교사'는 '천부적으로' 이미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 체험과 환멸과, 그리고 그가 가진 정열에 의해서 드디어 '천부적인 교사'로 만들어져 간다는 뜻인 듯합니다.

슈프랑거가 서론에서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 치고 정열 없이 성취된 것은 없다」는 헤겔의 말을 인용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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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두아르트 슈프랑거(1882-1963) 독일의 교육학자, 베를린대학 초대 총장 역임. 슈프랑거에 의하면, 교육은 문화전달의 과정에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갖고 있지만, 문화의 전달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은 아니다. 문화의 과정이 교육적 과정이 됨으로써 개인의 성장이 촉진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문화의 전달을 매개로 하는 발달의 원조인 것이다. 그는, 교육은 혼의 깊이에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한편 '혼의 가장 깊은 내면에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할 만한 신비스러운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방법론이 바로 천부적인 교사요, 천부적인 교사는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란 논리가 성립된다.(역자 후기에서)


2. 쇼맨십[showmanship][명사] 1 특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기질이나 재능.2 얄팍하게 남을 현혹하여 그때그때의 효과만을 노리는 수완(DAUM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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