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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Ⅰ

by 답설재 2009. 12. 10.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김종철·김태언 역, 녹색평론사, 1996

 

 

 

 

 

 

지난 11월, 베이징에 갔을 때 우리를 안내한 인민교육출판사 직원은, 중국의 여러 관광지 이야기를 하면서 열차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득『닥터 지바고』가 생각났습니다. 몇 날 며칠이고 끝없이 달린다는 러시아의 그 대륙 간 횡단열차…….

베이징에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는 중국의 그 칭짱열차에 대한 책도 나왔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글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시작됩니다.*

 

‘길이 열린다면, 정말 친한 벗 혹은 최악의 적들이 우리의 방문자가 되리라.’(티베트 격언)

 

2006년 7월 1일, 티베트 고원 지대에 칭짱(靑藏) 철도가 개통됐다.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木)에서 티베트 자치구 수도 라싸까지 1142㎞ 구간에 철도가 놓이면서 ‘금단의 땅’이라 불리던 이곳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행지로 바뀐 것이다. 칭짱철도는 철도로는 세계 최고지점인 5072m의 탕구라(唐古拉)산을 통과하고, 평균 해발고도가 4500m에 달해 실현 불가능한 건설 프로젝트로 여겨졌다. 중국은 그러나 단 5년 만에 10만 명을 동원하고 42억 달러를 들여 이 난(難)공사를 가뿐히 해치웠다. 이제 베이징에서 4064㎞, 48시간을 달리면 라싸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읽어본 바로는, 건강한 사람도 도착하자마자 어지러워서 며칠간 자리에 눕게 된다는 그곳에 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물론 도착하자마자 당연한 듯 자리에 눕겠지만, 제 혈압은 그 길로 영영 멈추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 기사는, 라싸에는 쇼핑몰․호텔․식당과 벤츠․BMW가 급격히 늘어났고, 2002년에서 2007년까지 티베트 경제 규모는 두 배로 증가했으며, 밀려드는 중국인들을 위해 마을과 거리 이름이 중국어로 바뀌었고, 티베트어는 발음을 표시하기 위해 조그맣게 적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수천 명의 어린 소녀들이 매춘에 나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는 철도 자체가 티베트에 경제적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칭짱철도는 문화적 학살 수단이라고 비난했답니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지《인민일보》는 “반대자들은 티베트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표본으로 남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째서 티베트는 세계의 다른 지역처럼 발전해서는 안 되는가?”라고 반박한답니다.

 

이 책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도 달라이 라마와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가 쓴 책입니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가 서문을 썼습니다(1991). 서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오랫동안 라다크와 그곳 사람들의 벗으로 살아왔다. 이 책에서 그녀는 라다크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깊이 찬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다크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티베트와 그 밖의 히말라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라다크는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방해받지 않고 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해왔다. 엄혹한 기후와 거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살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자립에서 오는 검소한 생활에 기인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불교적인 문화에 기인하는 것이 틀림없다. 저자는 정당하게도 라다크 사회의 인간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고, 라다크 사람 각자가 서로서로의 근원적인 인간욕구에 대하여 보내는 뿌리 깊은 존경심, 그리고 자연적 환경의 제약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임 있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찬양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사회발전의 새로운 대안으로 ‘반개발(count-development)’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이 라마 자신은 ‘개발’과 그 ‘혜택’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칭짱열차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전통사회의 ‘내면적 발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도 동의할 것이 분명합니다.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근대적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듯이, 개발과 배움이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일어나서는 안 된다. 라다크와 같은 전통사회의 사람들 속에는, 흔히 내면적 발전, 즉 따뜻한 마음씨와 만족감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1996년 가을에 영남대학교 영문과 김종철 교수가 격월간 『녹색평론』을 구독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보내준 책입니다. 당시 『녹색평론』구독자는 400여 명이라고 했는데, 지금 저는 그 책의 발간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정한 독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생지에 인쇄된 이 책은 너무나 가벼워 몇 권을 합해야 보통 책 한 권 무게가 될 것 같은 책입니다. 그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 책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가 쓴 Ancient Futures : Learning from Ladakh (Rider,1992)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의 16년에 걸친 현지체험에 기초를 둔 이 책은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잡은 한 유서 깊은 공동체에 대한 생생한 현장보고와 그 ‘근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하여 오늘날 인류사회 전체가 직면한 사회적․생태적 위기의 본질을 명료하게 묘사함으로서 이미 이 분야의 고전적인 필독서로 통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원래 자신의 고국 스웨덴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거나 연구생활을 했고, 여섯 개 외국어에 익숙한 언어학자였다. 그가 1975년에 라다크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자신이 속해 있던 런던대학교 동양언어학과의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비록 인도 영토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지만, 천년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티베트 불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가고 있던 공동체였다. 1975년은 이러한 라다크가 인도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라 외국 관광객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해였고,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해에 그 지역을 찾아간 소수의 서구인 중 한 사람이었다.

 

옮긴이는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서 보장된다고 한다면, GNP와 같은 단순한 수량적 척도로써 사회발전을 가늠하는 현대문화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경멸당할 뿐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업문화는 일찍이 간디가 갈파했듯이 오늘날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저주이며 질곡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 유토피아적인 꿈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실 속에서 - 있음을 태양에너지 등을 이용한 라다크에서의 ‘적정기술’의 여러 성공적 실험을 통하여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적정기술’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아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의 진정한 원천은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이제 『오래된 미래』에서 잊지 않고 싶은 부분을 보겠습니다. 먼저, 도구와 시간, 기술, 교통·통신, 복지, 옛 문화 등 현대문명 혹은 서구문화에 대한 관점입니다.

 

모든 사회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채색된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서구문화의 유별난 점은 그것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너무나 강력해졌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교해볼 ‘타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거나 우리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여기는 것이다.(8)

 

이제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서로를 위하거나 자신들을 위한 시간이 적어졌다. 그 결과 그들은 주변 세계의 미묘한 변화에 대한, 한때는 예민했던 감각, 예컨대 날씨의 작은 변화나 별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려 가고 있다. 마르카 계곡에서 온 한 친구가 한 말이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수도에서 살고 있는 나의 언니는 일을 더 빨리 해주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어요. 옷은 상점에서 사기만 하면 되고, 지프차, 전화, 가스쿠커를 가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그토록 시간을 절약해주는데도 언니를 만나러 가면 나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대요.”

변하고 있는 라다크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충격적인 교훈의 하나는 현대세계의 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개발의 결과로 현대화된 부문의 라다크 사람들은 기술의 속도로 경쟁해야 하는 경제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은 내 생각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당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일단 전화가 들어와 있으면 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 크게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전할 말을 사람에게 직접 전하는 것은 실제로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단 자동차와 버스들이 있으면 걷거나 짐승을 타고 가는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 오늘은 일터에 차를 몰고 갈까, 걸어갈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삶의 속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113~114)

 

교통․통신의 제약이라는 문제도 나에게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내가 그곳 마을들에서 경험한 믿기 어려운 활기와 기쁨은 삶의 즐거움이 여기 이곳에 당신과 함께, 당신 ‘속’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변에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 곳이 곧 중심이었다. 거실의 TV를 통해서 세계의 다른 부분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우리를 그다지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이 아니다. 실제로는 바로 그 반대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상화된 대중매체의 스타들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를 열등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느낀다. 그리고 ‘여기 이곳’은 먼 곳의 화려함에 대조되어 빛을 잃는다.(140)

 

옛 문화는 자연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자연을 위해서도 인간을 위해서도 성공적이었다. 전통적인 체계 안에서 다양한 상호관계는 서로를 강화하고 조화와 안정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난 16년간 나의 친구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전통사회에서의 유대관계와 책임이 부담이기는커녕 내면의 평화와 만족감을 위한 전제조건인 깊은 안정감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는다. 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개발이 있기 이전에 훨씬 더 행복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한 사회를 판단하는 데 무엇이 더 중요한 기준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기준은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민중의 복지이며, 환경적인 면에서는 지속가능성이다.(142~143)

 

라다크의 상황과 인접한 히말라야의 부탄왕국의 상황은 인간의 복지를 돈의 관점에서만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생생하게 예시한다. 두 경우 모두 생활수준은 대부분의 제3세계에 비해서 실제로 매우 높다. 사람들은 자기네의 기본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키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미술과 음악을 즐기며, 가족, 친구, 여가활동을 위한 시간을 실제로 서구인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은행은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묘사하고 있다. 국민총생산이 사실상 제로인 탓에 그 나라는 국제적인 경제서열에서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뉴욕 거리의 집 없는 사람들과 부탄이나 라다크의 농부 사이에 아무런 구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두 경우에 모두 소득은 없을지 모르지만, 통계자료 뒤에 있는 현실은 밤과 낮처럼 다르다.(14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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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09. 10. 10, A20면, 김기철(기자)「中華야망 싣고 달리는 열차, 티베트를 위협하다」: 아브라함 루스트가르덴 지음/한정은 옮김,『중국의 거대한 기차China's Great Train』(에버리치홀딩스, 2009)를 소개한 글.

**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고구려, 발해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바꾸고 평양 이북의 땅은 옛 중국 영토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동북공정」프로젝트를 잊지 않으셨겠지요. 제가 난생 처음으로 이번에 중국 베이징에 갔을 때 그 일정 내내 우리를 실어 나른 벤츠의 기사는, 첫날 저녁 호텔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담배 한 대를 피려는 저에게 붉은색 ‘長白山’을 피워보기를 권했습니다. 저는 당장 필담(筆談)으로 그 산은 사실은 ‘백두산(白頭山)’이라고 가르쳐주고 그걸 잊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동북공정」만 있는 게 아닙니다. 티베트 등지에 대한 중국의 영토와 역사 연구 프로젝트를「서북공정」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