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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박지영(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by 답설재 2010. 1. 3.

 

 

 

 

신춘문예작품으로 뽑힌 시(詩) 중에는 잘난 체하는 경우가 보였다. 도대체 어떤 감동을 주려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단편소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딱 한 편으로 자신의 재주를 보여야 하니까 그렇게 잘난 체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작품 중에서 박지영의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은 참 재미있었다. 우선 잘난 체하지 않아서 읽기가 편했다. 청소기 A/S 기사 얘기였다. A/S를 해주러 돌아다니며 인간들의 불합리한 짓거리들을 보고 '이 지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단정하여 타락한 이 지구를 -청소기로 먼지를 다 빨아들이듯- 싹 쓸어버리고 싶어하던 남자가 따뜻한 시선을 가지기까지의 이야기라고 간추릴 수 있겠다.

 

굳이 주제를 보여주는 장면을 찾으라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가 바로 청소기 A/S 기사다.

 

Q> 먼지가 안 생기게 할 수는 없나요?

남자는 여전히 궁극의 질문을 찾는다. 남자는 답변을 입력했다.

A> 물론 먼지가 없으면 세상은 좀 더 살기 편안해지겠죠. 매일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와이셔츠를 빨지 않아도 깨끗할 테니까요. 하지만 먼지들은 세상을 한층 아름답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늘의 노을은 대기층을 덮은 먼지 입자 덕분에 생깁니다. 또한 구름이나 안개를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먼지가 없다면 눈이나 비가 내리는 확률이 훨씬 줄어들어 날씨와 기후가 크게 변할 것입니다.

지구가 따뜻한 먼지로 이루어진 행성이라는 걸 아시나요? 어쩌면, 먼지가 다 사라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별, 지구도 사라지게 될지 모릅니다.

 

소설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 단편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교육자라면 저절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더럽다니까! 여자가 청소기를 잡고 장난치는 아이를 보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달려왔다. 너는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러니. 더럽게. 여자가 아이를 끌고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겼다. 싹싹 씻어 싹싹. 학습지도 하다 말고! 너도 나중에 아저씨처럼 될래? 남자는 자신이 여자의 집을 더럽히는 거대한 먼지 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남자는 성실한 아이였다. 숙제를 잊은 적도 없었고, 보충수업을 빼먹은 일도 없었고, 공부도, 했다. 잘, 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란 걸 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햄스터를 죽여 볼까, 재미삼아, 란 생각 따위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누가 더 착한 어린이인가 줄을 세우면 어린 시절의 남자가 저 아이보다 훨씬 앞에 설 것 같았다.

 

'공부'란 그런 걸까? 꼬박꼬박 시키는 대로 해봐도, 그리하여 성적이 좋아서 앞줄에 서 봐도 별 수 없는……. 결국은 청소기 A/S 기사나 되는……. 그럼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아니, 공부는 청소기 A/S 기사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오늘날 '엄마'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아줌마'가 얼마나 있을까? "너도 나중에 아저씨처럼 될래?"

 

매일 퇴근 후 남자는 지식인에 접속해서 희귀한 나비나 곤충을 채집하듯 질문들을 채집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세상에는 질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청소기도,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질문만 했다면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답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지식인에는 정말 많은 지식인들이 살고 있었다. 문제는 질문이었다.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를 아는 게 중요했다. 남자는 언젠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궁극의 질문을 찾고 있었다. 언젠가 이 생이 남자에게 원하는 답이 무언지, 궁극의 질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실 남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궁극의 변명을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남자는 다만, 그것이 무어건 찾아야 했을 뿐이다. 무언가를 찾느라 열심히 자신의 생을 낭비해야 했다.

 

"세상에는 질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답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세상에는 질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누가 그런 사람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았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내가 답을 다 가르쳐줄 테니까 들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해라, 그게 전부 아닐까? 그렇게 하면서 질문하는 아이를 사실은 귀찮은 아이로 취급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의 그 수업안이라는 문서에는 '일사천리' 우리가 설명하고 싶은 것만 나열되고 질문하는 아이를 위한 배려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느 아이가 질문을 하게 되면 우리의 그 '일사천리'에는 당연히 차질이 생기게 된다. 아, 정말로 한심한 '듣는 교실' '대답하는 교실'…….

'답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 그런 세상(답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은 우리 교육자들이 만들어 놓았나? 그거라도 우리 교육이 만들어 놓았나?

 

이 악당! 죽어라!

붉은 가면을 쓴 사내아이가 칼을 휘두르며 식당을 휘저었다. 아이의 부모는 고기를 구우며 테이블 사이를 날뛰는 무법자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남자가 먼저 왔지만 남자가 주문한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남자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이 악당! 난 정의의 용사 레스큐 맨이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까. 아이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넌 정의의 용사가 아니란다. 너 같은 아이가 바로 물리쳐야 할 악당이야. 버릇없는 너와 무책임한 너의 부모 같은 인간들.

악당은 바로 너란다.

남자는 아이의 칼을 뺏어 찌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장난인 줄 아는지 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거짓말! 너의 정체를 밝혀라. 소리치는 아이에게 남자는 속삭였다. 아저씨는 사실, 지구를 구하러 온 클린맨이란다. 정의의 칼을 받아라.

 

"넌 정의의 용사가 아니란다. 너 같은 아이가 바로 물리쳐야 할 악당이야. ……. 악당은 바로 너란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는 걸, 우리는 '가정교육'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런 교육은 조부모가 담당하면 더 좋아서 집안이나 동네의 늙은이가 어른대접을 받고 살았다. 오늘날에는 거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가정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그러므로 조부모의 할일도 없어졌다. 그냥, 나중에는 진짜 흉기가 될 가짜 칼을 가진 그 '악당'을 귀여워하면 그만이다. 언론이나 책들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귀여워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지금까지 직장에서 '죽어라' 일만 하던 남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된다고 다그친다.

 

더구나 누가 만약 식당 같은 곳에서 그렇게 무법자가 되어 날뛰는 아이의 부모를 보고 "댁에서는 '가정교육'을 시키지 않습니까!" 해보라. 그 '악당'의 부모로부터 온갖 봉변을 당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심한 욕설을 들어도 말려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라도 그걸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진도(進度)'를 나가는 데 분주해서 그 따위는 가르칠 시간이 전혀 없다.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걸 가르쳐서 칭찬받을 일도 없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그걸 철저히 가르친단다. "넌 정의의 용사가 아니란다. 너 같은 아이가 바로 물리쳐야 할 악당이야. ……. 악당은 바로 너란다."

 

2010년 1월 1일에 소설가가 된 박지영 씨에겐 미안하게 되었다. 공연한 소설을 읽고 엉뚱한 이야기나 늘어놓았다. 대신 어디서 '박지영'이란 이름을 보면 좋은 단편소설로 등단했다는 걸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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