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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교장의 눈, 교장의 가슴

by 답설재 2010. 3. 9.

어느 신문의 칼럼입니다.1

 

 

*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매일 아침 전교생이 15분 동안 합창했다. 노래부르기를 싫어한 잭 런던은 한번도 입을 벙긋하지 않았다. 화가 난 교사가 고집불통인 그를 교장에게 데리고 갔다. 아이의 특성을 알아본 교장은 야단을 치는 대신 숙제를 내줬다. 매일 아침 15분 동안 글짓기를 한 편씩 해서 제출하라는 거였다. 그는 교실에서 자연스레 글쓰는 습관을 키웠다. 획일적 교육이 아니라 학생의 다양성을 중시한 교장 덕분에 훗날 작가가 됐다.

 

* 교장은 배의 선장과 같다. 어떤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배우느냐에 따라 인생항로가 달라진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딴 모태범 이상화 선수는 빙상 명문으로 꼽히는 서울 은석초등학교 동창이다. 이 학교 빙상부는 1960년대 중반 스케이팅을 전교생 필수과목으로 정한 당시 교장(한인현) 작품이다. 동시 '섬집 아기'를 쓴 시인이었던 한 교장은 예체능교육을 중시했다. 모태범과 이상화는 '시인 교장'이 시를 뿌린 빙상 교육의 텃밭에서 30여 년 만에 금메달을 줄줄이 캤다.

 

*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최우수 학교로 뽑은 부산 남고는 몇년 전만 해도 전교 1등도 서울 지역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학교였다. 배정을 피해 이사를 간 주민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 공모제를 통해 박경옥 교장이 부임한 뒤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교사 공모제, 맞춤식 학생 관리, 교과별 학습동아리 운영으로 학교를 확 바꿨다. 주 1회 교사와 학생이 함께 등교하면서 대화하는 '스마일 데이' 교육이 남다른 비법이다.

 

*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주목한 학교들은 한결같이 교장의 개성있는 교육철학을 실천한다. 충남 공주 한일고(교장 김종모)는 태권도와 역사탐방의 문무(文武) 겸비 교육이다. 울산 현대 청운고(교장 지천희)는 예체능 실기교육 교실에 3명의 교사가 한꺼번에 들어와 1인1기 교육을 실천한다.

 

* 지난달 교장공모제를 실시한 서울 지역 18개 학교 중 15곳이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을 교장으로 뽑아 교장공모제가 변질됐다는 비판이 많다. 교장공모제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공교육 현장에 투입하려는 것이다. 참시하고 창의성 있는 교육이 요구되는 열린 사회에선 학교도 열려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존경하고 싶은 교장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hhpark@chosun.com

                                                                                                          

 

박경옥 교장은 부산교육청에서 교육과정 업무만 8년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분이 자신은 그 업무가 좋고 오랫동안 맡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자 교육감도 공감하고 얼마든지 그렇게 하고 어려운 일을 잘 해내면 나중에 책임지고 보상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모 교장으로 갔다니 "그게 보상을 받은 거고 보상을 한 결과냐?"고 묻는다면 답변하기 난처합니다. 무엇보다 교육감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제가 교육부에서 교육과정 정책을 맡고 있을 때 그분은 부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분은 아직 제 눈에 띨 만큼은 아니었고, 나중에 열심히 하는 전문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육과정 업무는 할 만한 일이고 어럽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는 그 생각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나가 있을 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만난 그분은, 교육과정에 대한 관점이 아주 정확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초가을 어느 날에는 그분이 고등학교 교장으로 나간 지 꽤 됐다는 애기를 듣고 전화를 했습니다.

'박경옥은 이렇구나!'

그게 그날 전화를 하고난 다음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분은, 한때는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정책을 담당했었지만 이제는 저 멀리 떨어진 시골의 한 초등학교 교장에게, 마치 어느 일간지 기자를 상대로 특집기사를 위한 대담이나 하는 양 30분 이상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설명 끝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두고 보세요. 내년쯤엔 틀림없이 빛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 2월, 어느 모임에서 공모 교장제 얘기를 했더니 어느 교장이 그랬습니다.

"똑똑한 교사들 다 모아가고, 예산이나 뭐나 특혜를 주면 못할 놈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은 평생 그런 소리나 하며 삽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장은, 자신 말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눈에는 신문에 나는 교장들도 다 엉터리일 뿐입니다.

똑똑한 교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눈에는 교사들이 엉터리로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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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0. 3. 6. A26, 만물상, 박해현 논설위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