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학교는 정말 없어지는가?

by 답설재 2010. 3. 22.

 

 

 

'학교는 정말 없어지는가?'

이 문제에 집중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앞으로 50년 The Next 50 Years』이라는 책을 읽은 후에 골똘해졌습니다. 존 브록만이라는 학자가, '세계 최고 과학자들이 던지는 과학과 인간의 미래에 관한 25가지 질문들'에 대한 글을 모은 책입니다. 이 블로그(「책보기」)에서 지난해 11월 29일, 12월 1일 두 차례로 나누어 소개한 책입니다.

 

25가지 글 중에서도 특히「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로저 샨크)와「빛살 속으로」(데이비드 갤런터)의 글이 눈길을 끌었고 내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로저 샨크의 글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책보기」에 이미 옮겨놓은 부분들을 다시 옮깁니다. 이번에는 '학교는 정말 없어지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세기와 그 이전의 수많은 세기 동안, 교육을 받는다는 것, 따라서 지성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의 축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용하는 능력, 어떤 관념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교육은 정보의 축적을 의미했고, 대중이 생각하는 지성이란 자신이 축적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들이 벽에 씌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 50년 뒤에 지식은 그저 알고 싶은 것을 큰 소리로 말하면 즉시 벽에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295~296)

 

대답이 평가 절하될수록, 질문은 더 가치를 갖게 된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대답 기반의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런 표지들은 어디에나 있다. / <제퍼디>나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나?> 같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트리비얼 퍼슈트Trivial Pursuit> 같은 게임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대답은 왕이다. 우리 학교들은 점점 더 시험 위주로 향해 가고 있다. 학교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대답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되어왔다.(296~297)

 

우리가 아직 교사와 교실과 교과서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50년 뒤에는 거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가 교육 개념을 바꾸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왜 수능 성적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왜 답을 암기하는 것이 지능의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물을 것이다.(301)

 

데이비드 갤런터는 어떤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조금만 옮겨보겠습니다.

 

대학은 무형의 것을 파는 사업이다. 대학은 교수와 더 중요하게는 동료 학생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게 해주고 교정 자체를 제공함으로써, 무형의 교정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세계 대학의 95퍼센트는 50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최고의 학교들은 명목을 유지할 것이다. 그들은 직장과 돈으로 해석될 명성, 즉 유형의 것을 팔기 때문이다. / 하지만 물론 그들도 변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영문학과는 원래 학생들에게 명작을 가르치기 위해 설치된 사치스러운 상품이다. 오늘날 수많은 영문학과들은 명작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회가 오랫동안 '그래? 그러면 낡은 쓰레기라도 가르치는 게 낫겠군' 하고 반응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회는 '그래? 그러면 더 이상 영문학과는 필요없겠군'이라고 반응할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도 사라질 것이다.(331)

 

학교는 동네 아이들이 아무나 모인 곳이 될 곳이다. 각 아이는 각각 별개의 빛살을 건드릴 것이다. '동네 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는 20명의 아이들은 사실상 20개 학교에 있는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은 함께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놀 수 있다. 교육 대학 학위가 있든 없든 간에 어떤 책임을 맡은 어른이 그들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339)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홈스쿨링이 그 징후일 뿐입니까?

이러한 경향에 대한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구분하고, 그 이름으로, 학교와 학원 중에서 왜 학교의 편을 들고 있습니까?

어느 날,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서 "더 이상 학교를 옹호하지 말라!" 혹은 "편들지 말라!"고 외치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범죄 행위입니까? 범죄 행위라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면, 지금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는 더러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교교육의 힘이 이렇게도 나약한 것이라면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정말로 우습게 취급한다면- 장차 누가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학교가 이토록 교육에 자신이 없다면, 그러면 학생들은 학원에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학교와 학원 중에서 한가지씩 고르라고 하면……."

물론 공상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언제까지 공교육의 손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제 공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정말 없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것입니다.

읽으면 이 문제가 떠오를 만한 자료를 모아보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해보려는 것입니다.

 

석간 문화일보를 보고 덧붙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기사가 보입니다(문화일보, 2010. 3. 22, 21면,「죽어버린 학교의 살아있는 아우성 -2008 칸 황금종려상 '클래스' 내달 개봉-」).

 

"한국의 중년들이 배우자, 친구와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자녀 교육 문제가 압도적일 것이다. 사교육의 기승을 잡지 못하는 교육 당국을 비판하는 것에서부터 내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까지 이야기의 주제가 무궁무진하다. 이런 설왕설래는 '학교는 죽었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