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744 안동립(사진) 《독도 KOREA》 안동립(사진) 《독도 KOREA》 천연색 240쪽 35,000원 동아지도 2023 내 친구 안동립이 또 일을 냈다. 독도 사진 찍은 것으로 책을 냈다. 요즘 그 친구가 운영하는 "동아지도"는 출판사 명목만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안동립의 책 내는 일이나 출판사 운영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 요즘 누가 지도나 지도책을 사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게 지도인데? 직원이래야 본인 빼면 두 명이겠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러다가 18년간 독도를 드나들며 찍은 사진을 모아 책을 낸 것이다. 독도는 왜 그렇게 드나들었을까? 또 가고 또 가서 살펴보고, 새벽엔 어떤지 보고 밤중에는 어떤지 보고, 동물식물 광물 다 살펴보고, 이름 없는 돌섬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 사람들로부.. 2023. 6. 29. 나이듦 : 알고자 하던 지성, 행하려던 의지가 부질없어 보인다 사부님이 두 팔을 벌렸다. 우베르티노는 사부님은 껴안으며 떨리는 소리로 울먹였다. 「잘 있게, 윌리엄. 그대는 광기의 용광로를 고아 먹은 듯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영국인이었네만, 마음은 늘 바로 쓸 줄 아는 참 좋은 사람이었네. 다시 만나게 되기는 될까?」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하느님도 그걸 바라실 테고요.」 사부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걸 바라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에서도 썼다시피 우베르티노는 그로부터 2년 뒤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성미가 불칼 같고 젊은이 뺨치게 혈기방장한 이 노인의 인생은 이렇듯이 험한 모험의 가시밭길이었다. 어쩌면 우베르티노는 성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굳센 믿음의 값을 한 자리 성위(聖位)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23. 6. 27. 서책은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고대의 전도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일각수의 참모습을 계시받았던 것입니까?」 「계시라는 말보다는 경험이라는 말이 좋겠다. 설마 그러기야 했겠느냐? 어쩌다 보니 일각수가 사는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일각수가 그때에 맞추어 우리 땅에 살거나 했을 테지.」 「그럼 우리가 어떻게 고대의 지혜를 믿을 수 있습니까? 멋대로 해석된 엉터리 서책을 통해 전수되어 왔을 법한 것을 어떻게 지혜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삼는 것이 옳다. 서책을 대할 때는 서책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성서의 주석서 저자들이 늘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서책의 뜻은 우리에게, 일각수는 도덕적 진실, 비유.. 2023. 6. 25. 서책끼리 주고 받는 대화 「(……)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서책을 읽든지 하면서…….」 「다른 서책을 읽으시다니요? 다른 서책이 사부님께 도움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그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서책이라는 것은 긴 줄에 꿰어 있는 것 같은 물건이거든. 종종 이 서책의 이야기와 저 서책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는 수도 있다. 무해한 서책은 씨앗과 같아서 불온한 서책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불연(不然)이면 무해한 서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 독초 대궁이에 단 열매가 열리는 격이라고 할까.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을 읽어도 토마스 아퀴나스가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으면 아베로에스가 뭐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고…….」 「과연 그러하겠.. 2023. 6. 21. 집도 잊고 가는 길도 잃어버린 상중(湘中) 《열선전(列仙傳)》에 나오는 노인 상중(湘中)은 상수(湘水)가 넘쳐서 군산(君山)이 물에 잠긴 것도 몰랐고, 황로(黃老 : 노자를 시조로 하는 학문)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가 집으로 가는 파릉(巴陵) 길마저 잃어버렸다고 한다. 일본인들을 책을 많이들 읽는데 우리는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책 읽는 걸 싫어하고 아예 책 읽는 사람마저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지만, 어쩔 수 없지만 책 읽는 사람을 미워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이 없으면 나는 오래전에 미쳤을 것 같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특별하지는 않다. 어려운 것만 싫어한다.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도통한 사람처럼 가르치려 든 책도 혐오한다. 가령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특별한 경험도.. 2023. 6. 18. 페터 회 장편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장편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2005 이누이트 족 소년 이사야가 눈 내린 지붕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웃의 서른일곱 살 처녀 스밀라 야스페르센이 이 소년이 위협을 받아서 실족한 것으로 확신하고 범인을 찾아 응징하는 추리소설이다. 부유한 덴마크인과 이누이트 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 야스페르센은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지적 여성이다. 아름답기까지 한 야스페르센이 범인을 따라 덴마크에서 그린란드의 빙하 위에 서게 된다. "왜 그 아이가 쫓기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 애가 떨어진 지붕 위에 있던 눈 때문이에요. 난 그 애의 발자국을 봤어요. 난 눈에 대한 감각이 있어요." 뤼빙은 피로한 듯 앞으로 똑.. 2023. 6. 12. 강화길 「풀업」 강화길(단편소설) 「풀업」 《현대문학》 2022년 11월호 굳이 세월이라 할 것도 없이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실감합니다. 사랑과 연대로만 이야기해야 옳던 가족 이데올로기조차 해체되고 엷어지고 있는 걸 모른 채(인정하기 싫은 채, 인정할 수가 없는 채) 살았습니다. 「풀업」이란 소설에서 두 군데를 옮겨 썼습니다. "미수야." 그간 지수는 이렇게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미수 역시 조금 당황한 듯했다.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계속 엄마 집에 얹혀살았으면 좋겠니? 아니면 독립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니?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왜 그래?" "있잖아 미수야." 아주 오랫.. 2023. 5. 24. 이주혜(단편소설) 〈이소 중입니다〉 이주혜(단편소설) 〈이소 중입니다〉 《현대문학》 2023년 5월호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다. 그 여름 그들은 육지 끝에 당도해 한낮에 배추씨를 심고 밤이 내리면 해변에 나가 큰 소리로 시집을 읽을 것이다. 그들이 고른 시집은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이나 김영미의 『맑고 높은 나의 이마』일 것이다. 앤 섹스턴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은 고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시인들의 시부터 읽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미즈노 루리코와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집을 육지 끝까지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 여성 시인들의 시를 몹시 사랑하고, 특히 한 시인의 시집 제목은 무려 '끝의 시'이며 또 다른 시인의 시집에는 "그렇게 짧은 여름의 끝에 그이는 죽었다"*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 실려 있는데도.. 2023. 5. 19. 난감했던 낭독회(「엉망진창 학예회」) 지난해 가을, 세 명의 작가가 이 동네 앞 카페로 찾아왔다. 인사만 나누고 아직 차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중 선임인 작가가 가방에서 설설 내 책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을 꺼내더니 다짜고짜 맨 처음의 글 「엉망진창 학예회」를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걸 어떻게 하지?' "아, 시방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쑥스러워요!" 그런다고 그러냐면서(쑥스럽냐면서) 몰랐다면서 미안하다면서 그만둘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읽다가 중단하고 좋은 책을 냈다면서 뭐라고 한 마디 덕담을 하겠지, 가볍게 생각하자 싶었다. 좌우간 그 순간이, 그 난처한 시간이 얼른 그리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난처한 경우가 있나 싶어도 참으며 생각했다. '잠시만 중단해 달라고 해서 이러지 말고 차나 시키자고.. 2023. 5. 15.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하)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이레간의 이야기 중 제4일부터 제7일까지의 이야기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어난 살인사건은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과정이었고 40년간 그 수도원을 지배해 온 늙은 장님 수도사 호르헤가 세상에 유일본으로 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에 맹독(猛毒)을 묻혀 놓은 결과였다. 윌리엄 수도사가 흉계를 밝히게 되자 호르헤는 그 책을 불태워버리려고 했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장서관이 불타게 되고 그 화재가 번져 수도원이 전소되고 만다. 윌리엄 수도사와 수련사 아드소 간의 대화.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서관이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가짜 그리스도 올 날이 임박했다. 이제는 학문이 가짜 그리스도를 .. 2023. 5. 13.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상)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이 소설을 읽으며 움베르토 에코에게는 박학다식이란 말이 무색하다는 걸 실감했다. 수련사 아드소가 사부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 '그 수도원'에 도착한 이래 이레간 벌어진 일 중 사흘간 벌어진 일을 적은 것이 이 책 상권이다. 수도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살인 사건의 전말을 수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장서관 출입만은 통제하는데, 살인 사건은 연이어 두 차례나 더 일어난다. 추리소설이니까 (하)권을 읽어야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건 독자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사실은 움베르토 에코가 중세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갈등과 역사를 소재로 종횡무진 자신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 2023. 5. 1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남수인 옮김, 세계사 1995 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표지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장편소설'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서도 이내 그걸 잊고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이 회상록을 썼다는 착각 속에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하드리아누스(76~138, 재위 117~138)는 뛰어난 정치가이면서 전술에 능한 장군이었고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을 연구한 학자였다. 로마제국의 오현재(五賢帝) 중 세 번째로, 트라야누스의 정복 정책에 종지부를 찍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이 소설은 '방황하는 어린 영혼' '변화 변모 변신' '평정된 세상' '황금시대' '위대한 기강' '인내'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2023. 5. 4.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