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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서책끼리 주고 받는 대화

by 답설재 2023. 6. 21.

 

 

 

「(……)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서책을 읽든지 하면서…….」

「다른 서책을 읽으시다니요? 다른 서책이 사부님께 도움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그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서책이라는 것은 긴 줄에 꿰어 있는 것 같은 물건이거든. 종종 이 서책의 이야기와 저 서책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는 수도 있다. 무해한 서책은 씨앗과 같아서 불온한 서책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불연(不然)이면 무해한 서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 독초 대궁이에 단 열매가 열리는 격이라고 할까.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을 읽어도 토마스 아퀴나스가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으면 아베로에스가 뭐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고…….

「과연 그러하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때까지 내가 안 바로, 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든 하느님이든, 서책의 외적인 것만 다루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부님 말씀에 따르면, 서책이라는 것은 서책 자체의 내용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 받는다는 것을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문득 장서관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 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 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을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사부님, 드러나 있는 서책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서책에 이를 수 있을 바에, 어째서 굳이 그 드러나지 않은 서책을 찾으려 하시는지요?

「몇 세기가 지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게 서책이다. 어느 해, 어느 날에 있어야 요긴하게 쓰인다는 게야. 그래,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장서관이라고 하는 게, 진실을 교란시키지 못하도록, 다른 진실을 가두어 놓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밖에는 할 수 없구나…….

사부님은 이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무시었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하)》(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