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745 우르스 비트머(소설) 《어머니의 연인》 우르스 비트머 《어머니의 연인》 이노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9 오늘 내 어머니의 연인이 죽었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아주 건강했다. 그는 입식 보면대 위로 몸을 굽히면서 「모차르트 교향곡 G단조」의 악보를 넘기다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손에는 찢긴 악보 조각이 들려 있었다. 느린 악장이 시작되는 부분의 호른 연주부였다. 언젠가 그는 내 어머니에게 이 「교향곡 G단조」가 이제까지 작곡된 음악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말했었다.─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듯이 느는 언제나 악보를 읽곤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정열에 관한, 고집스러운 정열에 관한 이야기. 그 앞에 바치는 레퀴엠. 힘겹게 살아갔던 어느 인생 앞에 바치는 절'(157)이다. 어떤 여인이.. 2023. 3. 10.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 마명보살 《불소행찬》 馬鳴菩薩造 北涼天竺三藏曇無讖 역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佛所行讚》 정왜 우리말 역, 도서출판 도반 19 - 13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업의 원인과 결과는 부지런히 되풀이하여 세상의 업을 짓나니 이 세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오직 업만이 착한 벗이 됩니다. 여러 친척들이나 또 더불이 그 몸을 깊이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해도 목숨을 마치고 정신이 홀로 갈 적에는 오직 업만이 착실한 벗이 되어 따릅니다. 22 - 10 부처님께서는 업의 과보를 잘 아시어 물음을 따라서 모두 말씀하여 주시고 앞서서 바이살리로 가시어 암마라 숲속에 머무셨다. 저 암마라라는 여인은 부처님께서 그 동산에 이르시자 받들기 위하여 시녀 무리들을 거느리고 조용히 나와 받들어 맞이하였다. 22 - 11 모든 깊은 애정의 근원을 거두어 잡고.. 2023. 3. 7.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 Pornografia》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 Pornografia》 임미경 옮김, 민음사 2010 나치 지배하의 폴란드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포르노 범죄 이야기다. 지식인 비톨드가 그리 친밀하지는 않은 지인 프레데릭을 데리고 시골 마을 친구 히폴리트를 찾아간다. 비톨드와 프레데릭은 히폴리트의 아름다운 딸 헤니아(16세)가 변호사 알베르트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히폴리트의 마름의 아들 카롤(16세)과 엮이기를 갈망한다. 어린 그들이 아름답게 뒤엉키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연극을 꾸미기도 한다.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으로 설정되는 상상은 비톨드와 프레드릭의 음흉한 상상력(색정적 성격, 그 관능, 육욕의 열기...)을 자극하고 고조시켜 나간다. 헤니아와 카롤의 비밀스러운 에.. 2023. 3. 5. 안규철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안규철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현대문학 2013 연필, 먹, 펜 그림과 에세이 50여 편을 엮은 책이다. 그림 에세이집? 무심코 보는 사물로써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쉰 가지 다른 세상을 보았다. 그렇다고 이제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세상을 엿보는 것이 좋았다. 월간《현대문학》에 연재된 작품들이다. 이미 본봤는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읽었다. 그러니까 다음에 보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겠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책' 코너에 놓아둘 것이다. 어린 시절 창가에서 나는 또래들보다 한 해 먼저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느라로 부모님은 호적을 고쳐 내 생일을 일곱 달이나 앞당겼다. 늦게 본 자식을 빨리 키워야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 덕에 나는 나보다 .. 2023. 3. 1. 아리랑 전문가 : 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범우사 1996 김병하 씨는 내리 30여 곡을 불렀는데, 산속에 묻혀 사는 설움, 세상을 등진 한, 정선 고을의 아름다움, 어린 남편에 대한 불만, 산골로 시집보낸 부모와 중신애비에 대한 원망, 사는 일의 덧없음, 남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 부정하고도 은밀한 사랑 등 노래의 내용은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207) 그는 시계수리 기술과 치과 기술도 가지고 있어서 한때 성남·춘천 등지에서 월급 생활도 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그의 몸에 붙어 다니던 정선 아라리는 그를 편안한 월급 생활 속에 놓아두지 않았다. 정선 아리리를 마음껏 부르지 못하는 삶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209) 세상은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라리'의 전문가.. 2023. 2. 26.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 1999 진단陳摶(872~989)은 중국 당나라 말에 태어나서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중원 국가들은 대개 십여 년을 주기로 몰락을 거듭하여 사회 혼란과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단은 이 난세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신선술을 연마하여 신비로운 경지에 이르렀는데 118세까지 사는 동안 여러 왕조에서 서로 벼슬을 주려 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후주後周의 세종이 불러 신선술을 묻자 그는 "폐하는 만백성의 주인이니 정치에만 전념하시고 금단술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했고, 송나라 태종 때 재상이 은밀하게 묻자 자신은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답하면서 "가령 제가 대낮에 하늘을 오르는 재주가.. 2022. 12. 22. L. 프랭크 바움 《산타클로스 이야기 The Life and Adventures of Santa Claus》 L. 프랭크 바움 지음·찰스 산토레 그림 《산타클로스 이야기 The Life and Adventures of Santa Claus》 작가정신 2021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 ○○예요.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무전기 2개 갖고 싶어요. 누나 꺼랑 제 꺼요.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은 몇 개만 할게요. 산타 할아버지 사진, 주실 수 있나요? 진짜로 루돌프도 있고 날 수 있나요? 어떻게 모든 걸 아나요? 사진 찍어서 주시면 감사합니다.(루돌프, 썰매) 편지도 보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 올림 11월 14일 월요일, 이 편지가 거실 창문에 붙어 있는 걸 봤는데 이런... 지난 14일 수요일, 그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사진, 주실 수 있나요? 진짜로 루돌프도 있.. 2022. 12. 20. 사랑 그 열정의 덧없음 : 피츠제럴드 「현명한 선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현명한 선택」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The Sensible Thing" 허창수 옮김, 《현대문학》 2022년 12월호 조지는 잔퀼이 보고 싶어서 보험회사에서 해고당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잔퀼에게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상황은 언제나 마음 같진 않다. 다른 사내들이 케리를 집적거리는 걸 보게 되고 날씨조차 덥다. "많이 덥네요. 선풍기 좀 틀어야겠어요." 선풍기를 조절해놓고 난 뒤 그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는 예민해진 분위기를 피하지 못한 채 숨기려 했던 구체적인 얘기를 불쑥 꺼내고 말았다. "언제쯤 저와 결혼할 생각입니까?" "저랑 결혼할 준비는 다 되셨나요" 갑자기 그는 화가 치밀어 올라 퉁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빌어먹을 .. 2022. 12. 16. 쉽고 재미있고 놀라운 강연록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솔 2010 "예술품이란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서 보는 것이고 또 내 맘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이 있으면 그것 하나 잘 감상한 것으로 충분히 보람이 있습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그렇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몇 점을 골라서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도자기 같은 것들은 엄청나게 많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공부 많이 하신 큰선비들의 글씨라든가 점잖은 그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국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내용이 자주 나와서 사뭇 재미있게 읽었다. 십여 년 전에 사놓고 데면데면 바라보기만 했다. 읽었으니 .. 2022. 12. 12. 세련에게 :《황금 똥을 누는 고래》를 읽고 네 스무 번째 책 《내가 왜요?》가 교보문고 '이달의 책'에 선정된 건 놀랍고도 당연한 일이야.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관 같은 걸 신선하게 곱게 전해주는 넌, 네 가슴속에 뭘 가지고 있을까? 열아홉 번째 동화집 《황금 똥을 누는 고래》를 읽으며 그 생각을 했어. "외로움이 너를 지켜 줄 거다. 어울리고 싶다고 함부로 나다니지 마라." 아빠 엄마 고래를 잃고 혼자 놀며 풀이 죽은 아기 향유고래가, 모진 작살을 맞고 끌려가면서 당부하던 아빠의 말을 기억해내는 걸 보며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다른 이야기도 아이들이 가슴 깊이 받아들였으면 싶은 건 마찬가지였어. 어른들은 흔히 그렇게 말하잖아? "요즘 애들은 어려움을 몰라. 저렇게 커.. 2022. 12. 10. 지옥 예습 "너 그러다 지옥 간다" '나는 아무래도 지옥이나 가겠지?' 할 때의 지옥은 어떤 곳인지 어디에 공식적·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밝혀놓은 곳은 없다.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살아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악한 귀신이 되어 끔찍하고 잔혹한 형벌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고통이 정말 막심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뿐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상)에서 지옥을 다음과 같이 그려놓았다. 딴에는 사람들이 치를 떨도록 하려고 온갖 짐승들의 모습을 총동원해서 지옥에 간 인간을 괴롭히는 장면을 설정했는데 나는 이 장면을 다 읽고 나서도 '아! 이건 정말 무서운데?' 하고 치를 떨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누가 진짜 극도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지옥을 그.. 2022. 12. 9. 잊히지 않을 이야기: 장세련 《내가 왜요?》 장세련 글 | 유재엽 그림 《내가 왜요?》 단비어린이 2022 여기 얘기 하나 짤막하게 전하겠습니다. 애들 얘기 속 어른 얘기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예후에게 방송실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 내가 왜요?" 문구점 담에 오줌 눈 일이 떠오릅니다. 'CCTV에 찍혀서 방송으로 공개 망신을 주려나?' 선생님이 좀 짜증을 냅니다. "또 '내가 왜요?'니? 그 말버릇 고치랬지?" "그, 그래도...... 무슨 일인데요?" "가 보면 알아!" 예후는 상장을 받았습니다. 새마을협의회장의 '모범 어린이상'이었습니다. 위 어린이는 평소 환경지킴이로서 남모르는 선행을 하여 많은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장과 상품을 주어 칭찬합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상장과 함께 문화상품권 다섯 장, 구청 소식지도 받았습니.. 2022. 12. 4.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