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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세련에게 :《황금 똥을 누는 고래》를 읽고

by 답설재 2022. 12. 10.

 

 

 

네 스무 번째 책 《내가 왜요?》가 교보문고 '이달의 책'에 선정된 건 놀랍고도 당연한 일이야.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관 같은 걸 신선하게 곱게 전해주는 넌, 네 가슴속에 뭘 가지고 있을까?

열아홉 번째 동화집 《황금 똥을 누는 고래》를 읽으며 그 생각을 했어.

 

"외로움이 너를 지켜 줄 거다. 어울리고 싶다고 함부로 나다니지 마라."

 

아빠 엄마 고래를 잃고 혼자 놀며 풀이 죽은 아기 향유고래가, 모진 작살을 맞고 끌려가면서 당부하던 아빠의 말을 기억해내는 걸 보며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다른 이야기도 아이들이 가슴 깊이 받아들였으면 싶은 건 마찬가지였어.

어른들은 흔히 그렇게 말하잖아? "요즘 애들은 어려움을 몰라. 저렇게 커서 장차 어떻게 할까?"

 

"빨리 굵은 가시를 만들어야지."

바람이 속삭임으로 용기를 주었어.

"그렇게 아프면서 자라는 거란다. 세상에 상처 없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

엄마가 말했어. 나는 싫었어. 아프면서 자라다니 말이야. 정말이지 아프지 않고 자라고 싶었거든.

"상처는 옹이가 되기도 하고, 가시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단다. 오로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가시를 만들어야 해. 그렇게만 해도 우리는 주인들에게 사랑받는 울타리나무가 되니까."

 

'샛노란 탱자' 이야기를 읽으며 또 생각했지. '이건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는걸.'

그렇겠지?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아픔과 상처 없이 성장할 수는 없겠지.

 

문득 이런 생각도 했어. 내가 교육부에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전체를 심사하고 제작하고 보급하던 일을 맡았던 시절, 초등학교 교과서 "생활의 길잡이"는 고등학교로 말하면 철학 교과서였는데 할 수만 있었다면 이런 동화(유년소설)들을 읽혔어도 좋았겠다고. 적어도 권장도서가 되어도 좋았겠는데...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시끄럽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워요."

 

이렇게 시작되는, 아름다운 머리말이 네 눈이고 가슴이겠지?

 

"글을 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해요."

 

손자 은우, 은한이와 말과 맘이 통하는 할머니이기를 바라며 동화를 쓴다는 저 오십여 년 전의 예쁜 소녀 세련이. 그 은우, 은한이는 그 옛날 그 소녀를 닮았겠지? 그 은우, 은한이도 은우, 은한이의 할머니도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