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어린이 2022
여기 얘기 하나 짤막하게 전하겠습니다. 애들 얘기 속 어른 얘기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예후에게 방송실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 내가 왜요?"
문구점 담에 오줌 눈 일이 떠오릅니다. 'CCTV에 찍혀서 방송으로 공개 망신을 주려나?'
선생님이 좀 짜증을 냅니다.
"또 '내가 왜요?'니? 그 말버릇 고치랬지?"
"그, 그래도...... 무슨 일인데요?"
"가 보면 알아!"
예후는 상장을 받았습니다. 새마을협의회장의 '모범 어린이상'이었습니다.
위 어린이는 평소 환경지킴이로서 남모르는 선행을 하여 많은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장과 상품을 주어 칭찬합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상장과 함께 문화상품권 다섯 장, 구청 소식지도 받았습니다. 그 소식지에는 예후가 문구사 옆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있는 사진과 함께 남모르게 하는 선행 어쩌고, 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정말 재수 없는 날,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무심코 그 껍질을 버렸는데 문구사 아주머니에게 들켜서 쓰레기를 다 치우게 되었고, 아주머니는 헤실헤실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로 그날 딱 한 번이었는데 막무가내였습니다. "들키면 다 첨이라고 그런다."
"으아악! 개재수네."
아주머니가 미워서 밤에 학원에서 돌아올 때 문구사 벽에다 오줌을 갈겼는데 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일이었습니다.
2
나는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마침내 세상이 극도로 삭막해져서 더러운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나는 막돼먹은 동네가 되어버렸다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이번에 모처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 '아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저 문구사 아주머니 같은 사람이 더러 남아 있어서 아직은 괜찮은 편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쳐야 하겠지요?
뭘?
비뚤어진 내 관점이죠.
예후 같은 아이가 한둘이겠습니까? 얼마든지 멋지게 살아갈 아이들을 괜히 못살게 닦달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3
이 책에는 이런 얘기 일곱 편이 실려 있는데 아이들이 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읽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다들 이미 문구사 아주머니 수준이라면 나 같은 인간만 읽으면 되겠지요. 그런가요?
나는 이제 머리가 다 허옇게 되어서 이 작품을 쓴 '장세련' 작가에게서 세상을 새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련이'는 책에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셨던 어린날의 기억으로 썼어요"라는 헌사를 써주었지만 오십여 년 전 그 허름한 교실에서 내가 그를 가르친 게 있긴 하다면 아무리 부풀려봐도 호리(혹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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