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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지옥 예습

by 답설재 2022. 12. 9.

 

 

 

"너 그러다 지옥 간다" '나는 아무래도 지옥이나 가겠지?' 할 때의 지옥은 어떤 곳인지 어디에 공식적·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밝혀놓은 곳은 없다.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살아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악한 귀신이 되어 끔찍하고 잔혹한 형벌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고통이 정말 막심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뿐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상)에서 지옥을 다음과 같이 그려놓았다. 딴에는 사람들이 치를 떨도록 하려고 온갖 짐승들의 모습을 총동원해서 지옥에 간 인간을 괴롭히는 장면을 설정했는데 나는 이 장면을 다 읽고 나서도 '아! 이건 정말 무서운데?' 하고 치를 떨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누가 진짜 극도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지옥을 그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본 것은, 발가벗기운 음녀(淫女)였다. 살점 하나 없는 이 음녀는 두꺼비에게 빨리고 뱀에게 물리고 있는가 하면 빳빳한 털로 뒤덮인 장구배 사튀로스*와 뒤엉켜 있었다. 사튀로스는 음녀와 뒤엉켜 있으면서도 추악한 목소리로 음녀를 저주하고 있었다. 네 기둥을 호화롭게 꾸민 침대 위에 뻣뻣하게 죽어 있는 구두쇠도 보였다. 이 구두쇠는 악마 군단의 공격 앞에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중의 악마 하나는 사자(死者)의 입에서 아이 모양의 영혼을 찢어 내고 있었다(아, 따라서 이 구두쇠는 다시 아이로 환생할 수 없었다). 나는 악마의 공격을 맡고 있는 자만심이 강한 사내도 보았다. 악마는 그의 어깨에 매달려 손톱으로 사내의 눈을 후벼 눈알을 파내고 있었다. 두 아귀가 일대 일로 드잡이하면서 서로를 찢어먹는 광경, 화염 지옥에 빠진, 염소 머리에 사자 털, 표범 턱을 한 짐승 무리도 보았다. 이 짐승 무리의 턱 끝에 닿는 소리는 내 귀에도 들릴 듯했다. 그들 주위, 머리 위, 발치 아래엔 수많은 얼굴과 사지가 보였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있는 남녀, 희생자의 눈알을 뽑아 먹고 있는 두 마리의 이집트 코브라, 손가락을 갈퀴처럼 만들어 휘드라*의 강장(腔腸)을 가르며 웃고 있는 사내, 한 자리에 모여 왕관을 지키다 이윽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악마, 우화집에 나오는 갖가지 동물들도 보였다. 파운* 무리, 양성 동물(兩性動物)들, 손가락이 여섯인 축생(畜生)들, 세이레네스* 무리, 켄타우로스* 무리, 고르곤 세 자매*, 하르퓌아이*, 인쿠부스*, 용어(龍魚) 무리, 미노타우로스, 시라소니, 표범, 키마이라*, 콧구멍으로 불을 뿜는 카이노팔레스*, 악어, 꼬리가 여럿이고 몸에 털이 난 도마뱀 무리, 도롱뇽, 뿔 달린 살모사, 거북이, 구렁이, 등에 이빨이 나 있는 양두수(兩頭獸), 하이에나, 수달, 까마귀, 톱니 뿔이 달린 물 파리, 개구리, 그뤼핀, 원숭이, 루크로타*, 만티코라, 독수리, 파란드로스*, 족제비, 용, 후투티, 올빼미, 바실리스크, 최면충(催眠蟲), 긴귀곰, 지네, 전갈, 도마뱀,  고래, 두더지, 올빼미도마뱀, 쌍동(雙) 오징어, 디프사스*, 녹색 도마뱀, 방어, 문어, 곰치, 바다거북. 이 모든 동물의 무리가 한 동아리가 되어 득실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시어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실 때를 기다리며 박공의 삼각면에 앉으신 이 앞에서 우글거리는 이 지옥의 동물들, 하르마게돈*의 패배자들은 모두가 절망의 황무지에 떨어질 영혼을 처단하기 위해 그렇게 우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친숙하게 버릇 들여진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최후의 심판이 벌어질 저 무서운 계곡에 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광경에 정신을 거의 잃은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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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튀로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수인(人). 음란하기로 유명하다.

휘드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구두사(蛇)

파운 : 사튀로스와 같거나 비슷한 목양신

세이레네스 : 노래로 뱃사람을 꾀어 죽이는 그리스 신화의 요녀. 영어 이름은 사이렌.

켄타우로스 : 반마인(半馬人)

고르곤 세 자매 : 머리카락 올이 뱀으로 되어 있는 괴녀 세 자매.

하르퓌아이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얼굴과 몸은 여자, 날개와 발톱은 새인 욕심꾸러기 동물.

인쿠부스 : 잠자는 여성의 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음란한 악마.

키마이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 머리, 염소의 몸, 용 꼬리를 가진 괴물.

카이노팔레스 : 콧구멍으로 불을 뿜는다는 괴물.

루크로타 : 박쥐 원숭이.

파란드로스 : 머리가 돈 양성수(兩性獸)

바실리스크 : 숨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파충류 괴물.

디프사스 : 공격당한 동물에게 갈증을 유발시키는 뱀.

하르마게돈 : 혹은 '아마겟돈'. 세계의 종말 때 선악이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