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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사랑 그 열정의 덧없음 : 피츠제럴드 「현명한 선택」

by 답설재 2022. 12. 16.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현명한 선택」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The Sensible Thing"

허창수 옮김, 《현대문학》 2022년 12월호

 

 

 

 

 

 

조지는 잔퀼이 보고 싶어서 보험회사에서 해고당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잔퀼에게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상황은 언제나 마음 같진 않다.

다른 사내들이 케리를 집적거리는 걸 보게 되고 날씨조차 덥다.

 

"많이 덥네요. 선풍기 좀 틀어야겠어요."

선풍기를 조절해놓고 난 뒤 그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는 예민해진 분위기를 피하지 못한 채 숨기려 했던 구체적인 얘기를 불쑥 꺼내고 말았다.

"언제쯤 저와 결혼할 생각입니까?"

"저랑 결혼할 준비는 다 되셨나요"

갑자기 그는 화가 치밀어 올라 퉁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빌어먹을 선풍기 좀 꺼요." 하고 그가 소리를 질렀다. "돌아버리겠네, 정말. 시계처럼 째깍거리는 저 소리에 당신이랑 있는 시간이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요. 내가 여기 온 건 행복하려고, 뉴욕의 시간들을 몽땅 잊어버리려고……"

일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갑자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잔퀼은 선풍기를 끄고는 자신의 무릎에 그의 머리를 뉘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126)

 

다음 날 더위가 한창인 시각, 한계가 찾아왔다. 둘 모두 서로의 진심이 어떤지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둘 가운데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더 잘되어 있는 것은 그녀였다.

"계속해봐야 소용없어요." 하고 그녀가 비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보험 일을 싫어하는 건 당신이 알아요. 그러니 그 일로 성공을 거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죠."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요." 그는 완강하게 반박했다. "내가 싫어하는 건 혼자라는 겁니다. 당신이 나랑 결혼을 하고 함께 가서 함께 기회를 만들어간다면, 난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을 여기 남겨 둔 채로 걱정만 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녀는 오랫동안 입을 다문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 그저 끝내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127)

 

조지는 혼자 떠났고 1년 후에 멋지게 돌아왔다. 쿠스코에서 좋은 직장을 구한 다음이었다.

 

그는 갑자기 얼굴을 앞으로 숙였다. 동시에 그녀가 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입술이 꽃잎처럼 반쯤 벌어졌다.

"있죠." 하고 그가 그녀의 입술에다 대고 속삭였다. "세상에 널려 있는 게 시간인데요, 뭘……"

시간은 세상 어디에나, 그의 삶과 그녀의 삶,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순간, 그는 알았다. 시간이 다하도록 찾는다 해도 지나간 4월의 시간들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두 팔이 쥐가 날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가 갖고 싶었던, 싸워서 쟁취하고팠던,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무엇이었다. 하지만 서편으로 지던, 석양으로 밀려 들어가던, 혹은 밤의 미풍 속으로 흘러들던, 그 만져볼 수 없는 속삭임은……

그래, 가거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4월은 끝났다. 4월은 흘러갔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139 끝)

 

 

1925년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여 '문학적 천재'로 칭송받으며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함께 일약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피처제럴드의 단편소설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순간 피어올랐다가 시들고 마는 꽃잎처럼.

 

그런데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