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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by 답설재 2022. 12. 22.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 1999

 

 

 

진단陳(872~989)은 중국 당나라 말에 태어나서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중원 국가들은 대개 십여 년을 주기로 몰락을 거듭하여 사회 혼란과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단은 이 난세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신선술을 연마하여 신비로운 경지에 이르렀는데 118세까지 사는 동안 여러 왕조에서 서로 벼슬을 주려 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후주後周의 세종이 불러 신선술을 묻자 그는 "폐하는 만백성의 주인이니 정치에만 전념하시고 금단술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했고, 송나라 태종 때 재상이 은밀하게 묻자 자신은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답하면서 "가령 제가 대낮에 하늘을 오르는 재주가 있다 한들, 그것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하였다. '희이선생希夷先生'은 바로 그 재상이 주청하여 태종이 내린 호이다.

 

그는 새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얼굴을 찌푸렸는데 어느 날 흰 나귀를 타고 길을 가던 중에 행인으로부터 조광윤趙匡胤(宋 太祖)이 새 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좋아하다가 그만 안장에서 미끄러졌는데 그 와중에도 "이제 천하는 안정되리라!" 하고 외쳤다.

과연 태조는 중국의 명군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서 발췌한 것이다(아래 설명도 마찬가지).

 

 

 

 

 

이 그림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가 그렸다.

조선의 윤두서는 왜 중국의 고사를 그렸을까? 우리에게도 그런 왕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재위 41년째였던 숙종은 그 해 가을, 이 그림 위에 저렇게 반듯하고 단아한 글씨로 시를 써주었다. 윤두서는 바로 그 해 11월 26일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夾馬營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오주석은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진정한 군주를 만난 기쁨

 

물 뿌리고 비질한 마당처럼 그지없이 깨끗한 길, 맑고 투명한 대기 속에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까지 정갈해 보이는 아침, 뒤편 숲에는 상서로운 안개마저 서려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건을 쓴 점잖은 선비가 갑자기 나귀 위에서 미끄러져 그만 고꾸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옆에서 따르던 동자 아이가 기겁을 하여 책봇짐을 내던진 채 주인을 붙들려고 내닫고, 반대편 길을 향해 가던 젊은 나그네는 뭄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동자만 혼자 허겁지겁할 뿐 정작 낙상落傷을 코앞에 둔 당사자 얼굴에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함박웃음이 만발해 있고, 또 이네들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표정에도 아직 얼굴 가득 흐뭇함이 어려 있다는 것이다.

화가의 실력이 모자라서 표정을 잘못 그렸는가 생각해보아도 백설같이 흰 저 당나귀의 예리한 선묘線描 실력을 보면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 그림의 작자가 누구인가? 정확하고 섬세하여 꼼꼼하기로 말하면 둘째 가라고 해도 서러워할, 저 유명한 국보 〈자화상〉의 작가 공재 윤두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 그림은 사연이 담겨 있는 듯하니 먼저 작품 좌상 구석에 적힌 제시를 살펴보아야겠다.

 

 

오주석의 이 책에는 열한 가지 그림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오주석은 신이 나서 이 그림들을 설명해 놓았다.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김명국의 〈달마상〉(옛 그림의 색채)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 꿈길을 따라서, 안견의 〈몽유도원도〉(옛 그림의 원근법)

  4. 미완의 비장미, 윤두서의 〈자화상〉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옛 그림의 여백)

  6. 군자의 큰 기쁨,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7.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

  8. 누가 누가 이기나, 김시의 〈동자견려도〉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옛 그림 보는 법)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이인상의 〈설송도〉

11. 노시인의 초상화, 정선의 〈인왕제색도〉(옛 그림에 깃든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