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범우사 1996
김병하 씨는 내리 30여 곡을 불렀는데, 산속에 묻혀 사는 설움, 세상을 등진 한, 정선 고을의 아름다움, 어린 남편에 대한 불만, 산골로 시집보낸 부모와 중신애비에 대한 원망, 사는 일의 덧없음, 남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 부정하고도 은밀한 사랑 등 노래의 내용은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207)
그는 시계수리 기술과 치과 기술도 가지고 있어서 한때 성남·춘천 등지에서 월급 생활도 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그의 몸에 붙어 다니던 정선 아라리는 그를 편안한 월급 생활 속에 놓아두지 않았다. 정선 아리리를 마음껏 부르지 못하는 삶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209)
세상은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라리'의 전문가 김병하에 대한 기록이다. 경의와 찬사이다.
정선 아라리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울어
강초일일(江草日日)에 환수생(喚愁生) 하니
강물만 푸르러도 고향 생각나네
무협(巫峽)이 냉냉(冷冷)하여 비세정(非世情) 하니
인생차세(人生此世)에 무엇을 하나
강산고택(江山古宅)에 공문조(公文藻)하거든
운우황대(雲雨荒臺)에 기몽사(畿夢思)라던가
야월삼경에 저 두견아 촉국흥망(蜀國興亡)이
어제와 오늘에 아니거든 어찌하여 저다지 슬피 우나
금준미주는 천인의 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낙시에 민루낙이요
가성고처는 원성고라
아침저녁 돌아가는 구름은 산 끝에서 자는데
예와 이제 흐르는 물은 돌부리에서만 운다
석세베 곤방 치마를 입었을 망정
네까짓 하이칼라는 눈밑으로 돈다
금도 싫고 은도 싫고 문전옥답 내 다 싫어
만주벌판 신경(新京) 뜰을 우리 조선 주게
대관령 국사 성황님 절이나 믿고 사시지
정선읍내야 우리들은야 나라님 믿고 삽시다
앞남산의 저 두견새는
고국을 못 가서 불여귀를 부른다
三十六年間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
乙酉年 八月十五日에 만발하였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셋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이로 뭉친다
이북산 붉은 꽃은 낙화만 되어라
우리 조선 무궁화 갱소생했다
앞남산의 호랑나비는 왕거미줄이 원수요
시방시체 청년들은 삼팔선이 원수라
공동묘지의 쇠스랑 귀신이 무얼 먹고 사느냐
이북의 김일성이는 왜 안 잡아 가나
국태민안 시화년풍은 우리 땅에 왔건만
불공대천지 원수는 공산당이로다
세상천지에 만물지법은 다 잘 마련했건만
존비귀천은 왜 마련했나
조선팔도의 만물지법은 다 잘 마련했건만
청춘과부 수절법은야 누가 마련했나
동지섣달 문풍지는 닐리리만 부는데
정선읍내 병사(兵事)가 가리는 청년들만 찾네
한 짝 다리를 덜렁 들어서 부산 연락선에 얹고서
고향 산천은 되돌아보니 눈물이 뱅뱅 돈다
만첩산중에 호랑나비는 말거무줄이 원수요
지금 시대 청년들은 삼팔선이 원수다
년일경에 피는 감자꽃도 삼재팔난을 적는데
우리 젊은 몸 멀로 생겨 만고풍상 다 적나
앞남산의 뻐꾸기는 초성도 좋다
세 살 때 듣던 목소리 변치도 않았네
이웃집은 다문다문 산은야 울울이 창창하니
산수 좋고 인심 좋아서 무릉도원일세
만첩산중에 들새들은 숲에서나 우는데
달이야 밝거들랑 배 띄워 놓고서 놉시다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서 산만 충충하네
일 강릉 이 춘천 삼 원주라 하여도
놀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은 동면화암(東面畵巖)이로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 같은 정선읍내 십 년간들 어이 가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나 여기 왔나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
정선 같은 놀기 좋은 곳 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나물바구니 둘러메고 동산 나물을 가니
동삼(冬三)에 쌓였던 마음이 다 풀리는구나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동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이 솟았네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잖나
비끝에 돋는 달은 유정도나 하구나
이 철인지 저 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얼었다 살짝 녹으니 봄철이로구나
앞남산 적설이 다 진토록 봄소식을 몰랐더니
비봉산(飛鳳山)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저 건너 저 산이 계룡산이 아니냐
오동지 섣달에도 진달래가 핀다
정선 사십리 발구럭 십리에 삼산(三山) 한 치인데
의병 난리가 났을 때도 피난지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앞남산 청송아리가 변하면 변했지
우리 둘이 들었던 정이야 변할 리 있나
앞남산 살구꽃은 필락말락하는데
우리 둘의 정이야 들락말락하네
이밥에 고기 반찬은 맛을 몰라서 못 먹나
사절치기 강낭이밥은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육칠월 감자싹도 삼재팔난을 적는데
대한 청년 남아도 만고 풍상을 다 적네
우릿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몸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신발 벗고 못 가실 데는 참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 갈 데는 술집 문전이라
갈 적에 보니는 젖 먹던 아이가
올 적에 보니는 술 장사를 하네
술집에 큰 애기를 정을 두니
냉수만 달라고 했는데 청주만 주네
왕모래 자락에 비 오나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 드나마나
개고장 가이 포롬포롬에 날 가자고 하더니
온 산천이 다 어우레져도야 종무소식이라
개고장 가에 고무 노리는 무슨 죄를 짓고서
다 큰 아이 손질에 칼침을 맞는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고 물을 건너면 또 사랑 있으리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고 강을 건너면 또 남자 있겠지
산지당 까마구는 까왁까왁 짖는데
낭군님 병세는 날로 깊어가네
앞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고요
우릿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오양목 중외 적삼은 첫물이 좋지
처녀 색시는 첫날밤이 좋더라
니 팔자나 내 팔자나 이불 담요 깔겠나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을 두자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그 자가
이마 눈썹 매라고 하니는 여덟 팔자로 매더라
네 발 색경에 가지네 종지깨는 내가 담당할꺼니
이마 눈썹 여드레 팔자를 잘 가꿔주게
사고지 못 할 것은 금정꾼 아저씨
노다지만 나오면 간 곳이 없네
금전을 따를라거던 제멋대로 가고요
사랑을 따를라거든 날만 따라오게
우리가 살면은 한오백 년 살겠나
한강수 깊은 물에 빠져만 죽자
둥굴레 팥떡에 수수 무설미 아무 별맛 없어도
떳떳하고 무른 재미로 한 그릇 잡숫고 가세요
칠팔월 굳은 감자는 배고픈 사람은 아는데
저기 가는 저 호레비는 과부 사정을 모르네
오뉴월 삼복지경이 고다지도 춥던가
대살 문고리 꼭 잡고 쥐고서 손발이 발발 떨리네
저게 가는 저 여자는 걸음에 걸이를 보아라
이삼사월이 지났는지 사쿠라꽃이 피었네
네가 죽든지 내가 살든지 무수네 야단이 났든지
새로 새로 두 눈 잠그네 생사람 죽네
저기 가는 저 처녀는 어떠네 정칠 놈 딸인가
여드네 팔자 한 걸음에 생사람 죽네
요놈에 총각아 내 손목을 놓아라
불 같은 이내야 손목이 다 잘 커진다
행주치마를 돌돌 말어서 옆옆이 찌고
총각 낭군 가자 할 적에 왜 못 갔나
내 왔다가 간 뒤에 동남풍이 불거든
내 왔다가 가느라고 한숨 쉰 줄 알어라
밥 한 그릇 둘이 먹으면 성 찰 리가 있나
임 하나를 두수이 본다면 맘 편할 리가 있나
칠팔월 감자싹도 삼재팔난을 적는데
대한에 청춘 남녀는 밤 봇짐만 싸네
낚싯대를 돌돌 끌고서 큰 강 가우로 갈 테니
나무 바구니 옆에 끼고서 내 뒤 밟어 오게
놀다가 죽어져도냐 원통타고 하는데
일하다가 죽어를 진다이면 할 말이 있나
요 놈어 총각아 내 치마꼬리 놓아라
당사실로 꼭꼭 박으니 콩 튀듯 한다
실중야 말죽에 댕겨서 줄 줄만 알었나
생사람 죽어지는 줄 니가 왜 모르나
앞남산 딱따구리는 참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뚤버전 구멍도 못하나
우리 딸 이름은 금산에 옥인데
동래 부산 김선달은 소첩이로다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들어라
임 호장네 맏며느리 데려고 성마령을 넘자
서울 종로 네거리 솥 떼우는 아저씨
우리 둘에 정 떨어진 것은 떼울 수 없나
명근당 줄이 늘어진 거보다는 서울 양반 같더니
말 한마디 시켜놓고 보니는 시골 양반이라
앞남산 지암절박에 곤 달걀을 붙이지
너희 같은 독한 여자에 말 붙이겠나
시냇물을 돌고 돌아도 한 바다로 가는데
이내 몸은 돌고 돌아서 여기로 왔네
영월 영천에 딸 놓지를 말어라
담배순 지다가 골머리 닳네
논두렁 밭두렁 피는 꽃으는 꽃은 일반이지
오다가다 만났던 임도야 임은 임이로다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잖나
비끝에 돋는 달은 유정도 하다
시냇물은 돌고 돌아서 한 바다로 가는데
그대 당신은 돌고 돌아서 여기에 왔네
마당 웃전에 수삼 대궁은 늙고 늙더라도
우리집에 서방님은 전혀 늙지 마세요
알썽달썽 잠모베개는 밤마다 비련만
정드시 네 기나긴 팔은 언제나 비나
왕모래자락에 비 오나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 자나마나
통치마 밑에다 소주병을 차고서
잔솔밭 한중허리로 임 찾어 가네
고기 잘 모는 납닥꼬내기는 납달돌 밑에 살고
처녀 잘 모르는 고내기는 내게도 있네
(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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