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 Pornografia》
임미경 옮김, 민음사 2010
나치 지배하의 폴란드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포르노 범죄 이야기다.
지식인 비톨드가 그리 친밀하지는 않은 지인 프레데릭을 데리고 시골 마을 친구 히폴리트를 찾아간다.
비톨드와 프레데릭은 히폴리트의 아름다운 딸 헤니아(16세)가 변호사 알베르트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히폴리트의 마름의 아들 카롤(16세)과 엮이기를 갈망한다. 어린 그들이 아름답게 뒤엉키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연극을 꾸미기도 한다.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으로 설정되는 상상은 비톨드와 프레드릭의 음흉한 상상력(색정적 성격, 그 관능, 육욕의 열기...)을 자극하고 고조시켜 나간다.
헤니아와 카롤의 비밀스러운 에로티시즘을 실현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음모와 유혹은, 마침내 변호사 알베르트로 하여금 항독 운동가 시에미안을 살해하게 하고, 헤니아와 카롤이 알베르트를 죽이는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비톨드가 이렇게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278)
이 집안에 있는 성인 남자 다섯 명이 떠올랐다. 히폴리트, 시에미안, 알베르트, 프레드릭, 그리고 나...... 혐오감이 밀려왔다. 동물 세계에서 그 어떤 것의 모습도 이렇게 추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난잡함, 추잡함에 있어서는 개도, 말도 이만큼 따라올 수 없었다. 아! 아! 서른이 넘으면 인간들은 흉하게 시들어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들, 젊은이들로부터 나온다. 한 사람의 성숙한 남자인 나는 내 동료인 성숙한 남자들 옆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숙과 미성숙을 나눠놓은 가름대 건너편 쪽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역겨워했으면 뭘 하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는 프레드릭의 음흉한 짓에 협조했다.
이 에로티시즘, 포르노그라피아의 출발은 열여섯 살의 젊음과 아름다움일까, 그 젊음을 바라보는 난잡하고 추잡한 성인들의 눈일까?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305)
여기서는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형식을 부과하는 경우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태이다. 하지만 연장자가 연하의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니,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여기서는 패륜과 수치가 배어 나온다. 그리고 사방에 깔려 있을 함정들이란! 그렇지만 젊음이란 생물학적으로 우월하고 육체적으로 더 아름다운 까닭에, 이미 죽음의 냄새를 맡은 성년들을 쉽사리 매혹하고 정복할 수 있다.
눈이 말리지 않았다면 한꺼번에 끝까지 읽을 뻔했다.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르스 비트머(소설) 《어머니의 연인》 (0) | 2023.03.10 |
---|---|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 마명보살 《불소행찬》 (0) | 2023.03.07 |
안규철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0) | 2023.03.01 |
아리랑 전문가 : 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0) | 2023.02.26 |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0) | 202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