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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우르스 비트머(소설) 《어머니의 연인》

by 답설재 2023. 3. 10.

우르스 비트머 《어머니의 연인》

이노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9

 

 

 

 

 

 

오늘 내 어머니의 연인이 죽었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아주 건강했다. 그는 입식 보면대 위로 몸을 굽히면서 「모차르트 교향곡 G단조」의 악보를 넘기다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손에는 찢긴 악보 조각이 들려 있었다. 느린 악장이 시작되는 부분의 호른 연주부였다. 언젠가 그는 내 어머니에게 이 「교향곡 G단조」가 이제까지 작곡된 음악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말했었다.─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듯이 느는 언제나 악보를 읽곤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정열에 관한, 고집스러운 정열에 관한 이야기. 그 앞에 바치는 레퀴엠. 힘겹게 살아갔던 어느 인생 앞에 바치는 절'(157)이다.

어떤 여인이었을까?

 

어머니는 평생 그를 사랑했다. 그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고, 다른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열정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녀 또한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호숫가에 혼자 서 있을 때면 "에트빈!" 하고 속삭였다. 사방에서 오리들이 꽥꽥거리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의 몸을 그늘 아래 감추고 햇빛 속에서 빛나는 맞은편 호숫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에트빈!" 하고 불렀다. 그 지휘자의 이름이 에트빈이었다.(8)

 

실연의 상처와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여인

아버지로부터 애인으로 이어지는 억압의 고리 속에서도 반향 없는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응답 없는 사랑에 미쳐 침실에 '에트빈 제단'을 마련해 놓고 그의 집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한,

말라비틀어진 삶 속에서 모든 종류의 죽음을 섭렵하고 아들을 데리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중얼거린,

정신병원에서 전기쇼크 치료를 받고 내면이 불타버려 껍데기만 남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불쌍한,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 여인

그녀의 바보 같은 사랑 무지막지한 정열

 

1987년 2월 17일 어머니는 당시 거주하고 있던 양로원에서 잠자리를 정리하고 은그릇과 촛대를 반듯하게 놓은 후 종이 위에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 계속해서 살아가며 많이들 웃기를. 클라라." 이때 그녀의 글씨체는 고동스러워하는 새들의 가파른 날갯짓 같았다. 어머니는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7층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햇빛이 비치고 있는 건너편 호숫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에트빈" 하고 불렀다. 그러고는 뛰어내렸다. 그때 그녀는 "에트빈" 하고 소리를 잘렀다. 그랬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