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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로런스 블록 엮음(단편소설) 《빛 혹은 그림자》

by 답설재 2023. 3. 16.

로런스 블록 엮음 《빛 혹은 그림자》(단편소설집)

이진 옮김, 문학동네 2017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 중 딱 한 편만 지루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가 소개된 글을 읽었다.(《현대문학》2023년 1월호, 394~403 문소영 '에드워드 호포의 고독한 도시 그림에서 소설가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호퍼 그림의 텅 빈 건축 공간과 거기에 빛이 만든 도형과 상념에 잠긴 인물들은 한데 어울려 복합적인 관념과 정서,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창출해낸다.

 

그에 대해 평론가 롤프 G. 레너는 이렇게 말했다. "얼핏 리얼리즘에 충실한 듯한 호퍼의 회화는 (......)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복제하는 대신 빈 공간을 창조한다. 호퍼 작품의 심연은 서술 텍스트가 갑자기 끊길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이럴 때 비평가와 관람객들은 그 공백을 메우고자 노력한다." 즉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호퍼 그림에 나타나는 장소들은 멈추어 상념에 젖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안착과 안식보다 다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여행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공간이다. 그 여행은 현실에서의 공간적 이동인 동시에 상징적으로 삶의 시간적 여정이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 하는 여행이다. 그렇기에 여행이 끝나지 않는 동안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도 끝이 없다.

 

 

이 책은 열일곱 명의 소설가가 각자 호퍼의 그림 한 작품씩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단편소설집이다.

진부한 소설들이라는 서평을 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또 읽는다' 싶으면 진부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진부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쓴 이 소설들이 심각하고 특별해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고 책을 읽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

 

특이한 것은 그림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쓸쓸했다.

혼자 있는 여인도 그렇지만 남자와 함께 있는데도 그렇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그림도 쓸쓸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호퍼의 그 그림에 맞춰 살아가려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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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매일경제 2023.4.19)

“티켓 10만장 벌써 매진”...드디어 한국 상륙한 거장의 손길, 그리고 숨결

https://v.daum.net/v/2023041915480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