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난감했던 낭독회(「엉망진창 학예회」)

by 답설재 2023. 5. 15.

 

 

지난해 가을, 세 명의 작가가 이 동네 앞 카페로 찾아왔다.

인사만 나누고 아직 차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중 선임인 작가가 가방에서 설설 내 책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을 꺼내더니 다짜고짜 맨 처음의 글 「엉망진창 학예회」를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걸 어떻게 하지?'

"아, 시방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쑥스러워요!"

그런다고 그러냐면서(쑥스럽냐면서) 몰랐다면서 미안하다면서 그만둘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읽다가 중단하고 좋은 책을 냈다면서 뭐라고 한 마디 덕담을 하겠지, 가볍게 생각하자 싶었다.

좌우간 그 순간이, 그 난처한 시간이 얼른 그리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난처한 경우가 있나 싶어도 참으며 생각했다.

'잠시만 중단해 달라고 해서 이러지 말고 차나 시키자고 해볼까?'

 

나로서는 내가 쓴 글이니까 새겨듣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 지켜보고 앉아 있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기도 하고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어쩔 수가 없다든 듯 두어 번 고개를 돌려서 좀 웃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만두면 피차 좋을 일인데 그러면서도 계속 읽어나갔다.

'아니, 이분이 정말 어디까지 읽을 작정이지?'

 

 

 

엉망진창 학예회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에서는 어제 오후 ‘미래관’에서 ‘제2회 양지 꿈나무들의 작은 축제’를 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볼 때는 이 축제가 대단할 줄 알았습니다. 〈신명 나는 사물놀이〉〈야, 우리 엄마다!〉〈노래극〉〈새론네와 여럿이〉〈고양이들의 음악 여행〉〈회장네와 총무네〉〈핸드벨〉〈검정 고무신〈손짓 사랑〉〈탈춤놀이〉〈동시 감상〉〈가족이 함께해요〉〈천사들의 합창〉〈리듬 합주〉. 그러나 실제로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습인지 공연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첫 프로그램 〈신명 나는 사물놀이〉는 한참을 쿵쾅거리기만 해서 아직 연습 중인가 했는데 그 쿵쾅거림에도 순서와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 끝나는가 하면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자꾸만 이어졌습니다. 그 무대 위에는 지루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그만해요!"

이상도 하지, 그 소리를 듣고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원장인 저 혼자서 미소를 지었고, 선생님은 그 쿵쾅거림을 듣지 않으려고 귀마개를 꽂았는지 아예 그 외침도 못 들은 척 그 쿵쾅거림이 더욱더 이어지도록 지휘했습니다. 내친김에 다 말하겠습니다. 그걸 지휘한다고 선생님은 정신없이, 그야말로 혼이 나가서 팔을 휘둘러댔고, 엄마들은 연신 "와우~ 와우~" 하거나 "앙코르! 앙코르!" 외쳐댔습니다. 그걸 다 녹화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어떤 아빠는 누구에겐가 전화하면서 디카 건전지가 다 되었다고 외쳤는데 그 외침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소리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야기극인지 노래극인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이크 두 대는 멋으로 세워두어서 있으나마나였고, 도무지 스토리조차 짐작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율동은 다를까?' 기대했는데 웬걸 그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그저 '즉석 흉내내기'였고, 그조차 어떤 놈은 그냥 신나는 대로 그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다가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하필 제 눈앞에 와서 디카를 휘둘러대던 어떤 엄마는 큰 소리로 외쳐댔습니다.

"아이고 귀여워라!" "아이고 귀여워라!"…….

어떤 프로그램은 '내가 아무리 분별없이 감상한다 해도 저건 분명 아직 준비다, 준비 시간이 너무 길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프로그램에서는 볼 일이 없는, 그 프로그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두 아이가 함께 올라가서 서성거렸기에 제가 연습으로 본 것이지 벌써 공연이 한참 진행된 뒤였습니다.

 

 

'선임'은 여기까지 읽었는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가령 "아니, 진짜 쑥스럽게 왜 이러세요?") 다음 사람이 바로 이어 읽기 시작했다.

'이런…….'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었다.

'이렇게 하기로 짜고 왔구나!'

'내가 얼마나 곤혹스러워하는지, 어떤 태도로 곤혹스러워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나?'…….

 

 

모자(母子)가 차례로 낭송하기로 한 동시 감상 프로그램에서는, 엄마는 칼릴 지브란의 시를 멋있게 낭독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를 따라 단상에 올라간 '볼일 없는' (아직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 둘째 아들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자꾸 "아! 아!" 했고, 그 엄마의 큰아들 승룡이는 선생님과 엄마가 번갈아 격려했지만, 동시를 낭독할 마음이 아예 없어서 뒷머리만 긁적거리다가 내려왔습니다. 엄마가 승룡이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주는 게 마땅하다 싶어서 지켜봤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데리고 내려왔고, 사회를 맡다가 지휘를 하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선생님께서

"승룡이는 연습할 때는 참 잘했다"고 소개해주었습니다. 하기야 E. 데 아미치스가 지은 《쿠오레(사랑의 학교)》를 읽어보면 엔리코네 초등학교 학예회에는 시장님까지 참석했는데도 한 아이가 무대에서 내려오다가 나뒹굴었고, 얼굴이 벌게져서 허둥댄 아이도 있었으니 까짓게 뭐 대수겠습니까? 시장님이나 교육장님이 참석하지도 않은 우리 유치원 자체 학예회였으니까요. 승룡이는 앞으로 그 일을 두고두고 기억할 테니까 그것만 해도 소득일 것입니다.

마지막 프로그램 합주조차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처음 연주해도 그보다는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학교 J 선생님의 아들은 하품만 하다가 마칠 때 인사는 공손히 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며 '그래도 저걸 보여주겠다고 여러 날 연습은 했겠지. 옷이 아깝고 소품 비용이 아깝다' 싶었는데, 제 옆에 있던 한 엄마는 연신 "원장님! 원장님!" 불러대며 "저것 좀 보세요!" "저것 좀 보세요!"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하더니 그 합주가 끝나자 다 예정해 놓았던 것처럼 "앙코르! 앙코르!" 외쳤습니다. 진행하는 선생님도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마이크에 대고 얘기했습니다.

"아이들의 합주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나 참…….'

제대로 된 것도 더러 있긴 했습니다. 가령 핸드벨을 울리는 아이들 같으면 제때 흔들려고 아주 기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만은 제대로 되었다는 얘기이지 결코 아름다운 연주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음향 효과도 괜찮았습니다. 행복하게도 기계는 끝까지 고장이 나지 않았고, CD만큼은 긁힌 부분이 없는지 정상적인 음악을 재생해 주었습니다. 옷도 예뻤고 소품도 좋았기 때문에 나중에 사진을 보면 뭔가 근사한 발표회를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여기까지 읽었고, 이번에는 세 번째 작가 차례였다.

나는 이제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반을 넘겼으니 그 상태에서 중단해 봤자 무슨 수가 날 것도 아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중계방송이나 녹화방송을 하겠다고 찾아오지 않은 일입니다. 구경꾼이 학부모를 제외하면 원장인 저하고 여중생 두 명이었던 것도 다행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 두 여중생은 몇 번 내 눈치를 보더니 일찌감치 살금살금 빠져나가서 결국 저 혼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제가 왜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지, 그 공연이 제가 자리를 지켜야 할 만큼 값진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제 오후에는 거기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프로그램이 그렇게 계속 이어지면 저는 밤새도록이라도 자리를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리를 지킨 저만 "엉망이었다!"는 소문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일도 없고, 우리 유치원 학예회가 그렇게 진행된 것을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저 그 아이들의 가슴속에 그야말로 영원히! '꿈을 담은 작은 축제'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럴 때 사립유치원이나 다른 유치원 원장들은 어떤 표정일까요? 저는 요즘 몸이나 마음이나 무거운 상태인데, 어제 오후 그 시간에는 그냥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름지기 학예회는, 더구나 유치원 학예회는 엉망인 게 옳다, 이게 정상이다 싶었습니다.

주제넘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나는 본래 이 아이들 곁에서 살아가야 즐거워지는 체질이야.'

'우리는 최소한 어른 중심 발표회를 하진 않아. 우리는 아이들이 즐거우면 다 그만인 사람들이야.'

어둑한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처럼 라디오나 음악을 듣지 않고 휘파람을 불어보았습니다.

참, 내년도 우리 유치원 신입생 모집에 신청자가 넘쳤답니다. 아무래도 썩 괜찮은 유치원이라는 소문이 퍼진 모양입니다. 이런 소문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여러 명을 떨어뜨리게 되었다고 해서 가슴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그 가슴이 좀 아픈 듯했습니다. 떨어뜨리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모양으로 가르치는데도 뭐가 좋다고 ‘정원을 초과한 신청’이란 이변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2008. 12. 20.)

 

 

그렇게 낭독을 마친 세 작가는 나에게 감상을 묻지는 않아서 그건 다행이었다. 하기야 내가 쓴 글인데 나에게 감상을 말하라고 할 수도 없을 일이었다.

그들은 웃지도 않았고, 내 표정을 살피지도 않았다.

'문인들은 본래 다 이렇게 하는가?'

그들은 그냥 천연덕스럽게 차를 시켜 오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했다.

나는 '살다 보니까 참 별 일 다 겪는구나' 싶었다. 이런 낭독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책이 더 잘 팔리거나 내가 글을 더 잘 쓸 것도 아닌데도 고맙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