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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하)

by 답설재 2023. 5. 13.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이레간의 이야기 중 제4일부터 제7일까지의 이야기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어난 살인사건은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과정이었고 40년간 그 수도원을 지배해 온 늙은 장님 수도사 호르헤가 세상에 유일본으로 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에 맹독(猛毒)을 묻혀 놓은 결과였다.

윌리엄 수도사가 흉계를 밝히게 되자 호르헤는 그 책을 불태워버리려고 했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장서관이 불타게 되고 그 화재가 번져 수도원이 전소되고 만다.

 

윌리엄 수도사와 수련사 아드소 간의 대화.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서관이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가짜 그리스도 올 날이 임박했다. 이제는 학문이 가짜 그리스도를 저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오늘 우리는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라고 하시면

「호르헤 영감의 얼굴 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使者)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단자 중에서 성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

「'에어 무오츠 겔리쉐자메 디 라이터 아베베르펜, 조 에어 안 이르 우프케스티켄'(지붕에 올라가면 사다리는 치우는 법). … 어느 글인가는 잊었구나. 내가 이렇게 알고 있으니 이제 그 원고를 누가 찾아낸대도 내게는 소용이 없겠구나. 그래,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

그 순간 숙사의 지붕 일부가 내려앉으면서 엄청난 양의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경내를 떠돌아다니던 양과 염소 무리가 애처롭게 울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불목하니 하나가 부딪쳐 쓰러뜨릴 듯이 우리를 지나치면서 뭐라고 고함을 질렀다.

사부님이 탄식했다.

「이곳은 너무 시끄럽구나. '논 인 콤모티오네, 논 인 콤보티오네 도미누스' (이런 난장판에는, 이런 난장판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아 ; 구약성서 《열왕기상》의 다음 대목을 참조할 것. '… 그러나 야훼께서는 지진 한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19:11~12).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학』 제2권을 둘러싼 수도원에서의 암투가 이야기의 절정이었고, 이 소설은 결국 책에 관한 이야기다.

윌리엄 수도사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인식한 호르헤 노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윌리엄 형제, 그대는 사서로는 천부적인 재질이 있는 사람이군요. 그래, 다 알고 있었군요. 자… 그대 옆에는 의자가 있을 것이오. 앉아요. 여기 그대에게 주는 상이 있어요.」

 

움베르토 에코는 이 책의 서문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누항(陋巷)의 일상 잡사가 아닌, 책에 얽힌 이야기여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모방의 도사 아 켐피스(독일의 신학자 1380~1471, 「그리스도를 모방함에 대하여」라는 저서가 있다)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 한숨에 섞여 나올지도 모르겠다.

'인 옴니부스 레쿠이엠 쿠아에시비, 에트 누스쿠암 인베니 니시 인 앙굴로 쿰 리브로(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움베르토 에코는 박학다식이라는 말 정도로는 설명 불가능한 '거의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입담을 지닌 작가였다.

옮긴이(이윤기)도 그렇게 썼지만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007》제임스 본드 같았고, 살인사건의 배경을 이루는 종단 간의 다툼, 황제 루드비히와 교황 요한 22세 간의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한 대화는 그야말로 '흥미진진'의 '끝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