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남수인 옮김, 세계사 1995
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표지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장편소설'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서도 이내 그걸 잊고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이 회상록을 썼다는 착각 속에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하드리아누스(76~138, 재위 117~138)는 뛰어난 정치가이면서 전술에 능한 장군이었고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을 연구한 학자였다. 로마제국의 오현재(五賢帝) 중 세 번째로, 트라야누스의 정복 정책에 종지부를 찍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이 소설은 '방황하는 어린 영혼' '변화 변모 변신' '평정된 세상' '황금시대' '위대한 기강' '인내'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장감으로 이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 것은, 병마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일생, 모든 것을 다 이룬 한 출중한 인간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바친 인생 여정을 회상하고 마침내 찾아온 병마를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그 자신의 회상으로써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말(馬)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 희생이다. 야생동물은 적수에 불과하나, 말은 친구였기에 말이다. (...) 그 어느 인간이 나에게 그와 같은 절대복종을 바친 적이 있던가?
그는 햄과 향신료를 적절히 배합하여 꿩파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음악가나 화가의 솜씨와 같은 정교함으로 이루어졌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사랑의 대상들은 나한테서 버림받기보다는 오히려 그들 쪽에서 나를 떠나간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와 내 손으로 미음을 준비하여 따뜻하게 몇 모금 마셨다. 남들이 생각하듯 시종들을 못 믿어서가 전혀 아니고 그렇게 하여 나 자신에게 혼자되는 사치를 수여하기 때문이다. 나는 침상에 드러누웠다. 잠은, 건강이, 젊음이, 근력이 이미 내게서 멀디먼 만큼이나 아주 멀리 있는 듯했다.
하드리아누스는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후임을 정한다. 그는 한 세대는 지나치게 짧다는 생각으로 양자와 손자(17세, 후일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두 사람의 입양을 동시에 결정하고 그들에게 개인 교수들로부터 받는 이론 교육에 더하여 인생을 가르치고 진정한 군주로서의 자질을 계발하고자 한다.
마지막 장(章)은 친구 아리아누스의 보고(편지)와 그 친구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다.
폐하께 이러한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은 (......) 아킬레우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용기와, 영혼의 힘과, 육체의 능란함과 결합되어 있는 정신의 지식 그리고 그의 젊은 친구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을 때, 삶을 경시하고 죽음을 바라기까지 했던 그의 절망이 그에게서 가장 위대해 보입니다.
아리아누스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자서전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들임을, 무덤에는 기록하지 않을 것들임을 안다. 그는 또한 시간의 흐름이 불행에다 현기증을 하나 더 보태줄 뿐임을 안다. 그가 볼 때, 내 인생의 그 사건은 어떤 의미를 띠며, 한 편의 시에서처럼 조직되고 있으니, 유일무이한 애정은, 연기나 먼지를 털어버리듯 회한, 초조, 서글픈 기벽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고통은 정수되고 절망은 순수해진다. 아리아누스는 나에게 영웅들과 친구들이 있는 지고의 천상을 열어주고 있다. 그는 내게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다 판단한다. 빌라의 연못 중앙에 있는 비밀방은 그다지 내면적인 은둔지가 아니어서, 나는 그곳에서 이 늙은 몸뚱이를 끌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고통에 차 있다. 나의 과거는 물론, 나로 하여금 현재의 슬픔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를 여기저기 제안한다. 다뉴브 강가의 눈벌판, 니코미디아의 정원, 꽃핀 사프란의 수확으로 노란 클라우디오폴리스, 아데네의 어느 길, 연꽃이 늪에서 넘실거리는 어느 오아시스, 오스로에스 진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별빛으로 본 시리아의 사막을. 그러나 무척이나 소중한 이 장소들은 어떤 오류나, 오산, 나만이 알고 있는 어떤 실패의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행복으로 가는 나의 길은 이집트로, 바이아의 한 침실로, 아니면 팔레스타인으로만 통하는 듯했다.
그의 의사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의사로서의 명예를 내세우며 거부했다. 나는 고집했다. 나는 요구했다. 나는 그에게 동정심을 일으키려고 혹은 그를 타락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는 아마 내가 애원을 한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 져서, 그는 마침내 독약을 가져오겠노라 약속을 했다.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밤늦게, 나는 경악했다. 실험실에서 죽어 있는 그를 막 발견했다고, 두 손에 유리 약병을 들고 있었다고 보고가 왔던 것이다. 어떤 타협도 모르는 이 순수한 마음은 나한테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고도 그의 선서에 충실한 채 남는 이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회상은 이렇게 진행되고, 슬픔과 그로 인한 마음의 물결은 간단없이 출렁인다.
나는 27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을 어쩔 수가 없어서 언젠가 다시 읽기로 하고 그때는 제대로 된 독후감을 써보기로 했다.
그 독후감은 내가 현제(賢帝)를 본받고자 하는 건 '전혀' '정말' 아니다. 그의 찬란했던 생애와 그 인물의 슬픔이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어도 좋은 것이라면 나도 그 기억의 실마리를 잡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이고 그것으로 하찮은 나의 슬픔은 나 자신에게만이라도 괜찮은 슬픔이라는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이다.
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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