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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상)

by 답설재 2023. 5. 11.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이 소설을 읽으며 움베르토 에코에게는 박학다식이란 말이 무색하다는 걸 실감했다.

 

수련사 아드소가 사부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 '그 수도원'에 도착한 이래 이레간 벌어진 일 중 사흘간 벌어진 일을 적은 것이 이 책 상권이다. 수도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살인 사건의 전말을 수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장서관 출입만은 통제하는데, 살인 사건은 연이어 두 차례나 더 일어난다.

 

추리소설이니까 (하)권을 읽어야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건 독자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사실은 움베르토 에코가 중세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갈등과 역사를 소재로 종횡무진 자신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재담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쓴 소설이라고 확신했다.

 

때로는 악마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수탉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미덥지 못한 동물이다. 우리 교단에서는 날 새는데도 울지 않는 게으른 수탉을 믿지 않는다. 각설하고, 특히 겨울철에 해당하는 이야긴데, 조과 성무는 사방이 아직 칠흑 어둠이고 만물이 잠들어 있을 시각에 시작된다. 수도사라면 마땅히 어두울 때 일어나 어둠 속을 믿음으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례상 수도원에는 찰중(察衆) 수도사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이 잠자리에 들어도 이 찰중 수도사만은 잠들지 않은 채 밤을 밝히며 운율에 맞추어 《시편》을 낭송함으로써 시간을 재고, 수면 시간이 그만하면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면 신호로 대중을 기침시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날 새벽에 요사와 순례자 숙사 사이로 종을 울리고 다니는 수도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한 수도사가 독실 사이를 다니며 〈베네디카무스 도미노 Benedicamus Domino 주님을 찬양할지라〉를 외치고 다니면 그 소리를 들은 수도사들이 일제히 〈데오, 그라티아스 Deo, gratias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하면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었다.(170)

 

옮겨쓰고 나니까 오히려 싱겁다. 워낙 전편이 다 옮겨쓰고 싶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라면 어느 부분을 옮겨쓰라고 했을까?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는 〈이솔다〉이야기도 있다.

 

「(...) 시골에 무리 짓고 있는 문둥이들을 본 적이 있느냐?」

「네, 백여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그러진 얼굴, 썩어 가는 육신, 허옇게 바래어 가는 몸을 목발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눈두덩은 부어올라 있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더이다. 말하거나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새앙쥐처럼 오구구 모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은 외변(外邊)으로 밀려난 남들이다. 양떼는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은 양떼를 증오한다. 양떼는, 그 같은 무리는 이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네, 마르크 왕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왕은 아름다운 이솔다의 죄를 물어 화형대에 매달고자 하는데 문둥이들이 왕에게 주청하기를, 화형주 형벌은 너무 가벼운즉 그보다 무거운 형벌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솔다를 저희에게 넘겨주십시오. 어쩌면 이솔다는 저희 무리에 속하는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저희 아픔이 저희 욕망을 태우노니, 그 여자를 저희 문둥이들에게 넘겨주십시오. 문드러진 상처에 달라붙은 저희의 남루를 보십시오. 그 여자는 다람쥐 가죽에다 보석이 박힌 옷을 입고 폐하의 궁전에서 호사를 누리다 이제 폐하의 법정에서 문둥이를 구경하고 있으니, 저희 무리로 들어와 함께 기거하게 하시면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깨닫고 오히려 화형주 밑의 화목(火木)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이놈, 성 베네딕트 수도회 수련사가 못된 잡서를 뒤적거렸구나!」

사부님의 일갈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젊은 수련사에게 소설은 금서였다. 그런데도 우리 멜크 수도원의 젊은 수련사들 사이로는 그 책이 은밀하게 나돌았기 때문에 나도 어느날 밤 촛불 아래서 독파했던 것이었다. 사부님은 무안해하는 내가 불쌍했던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327)

 

이 부분도, 옮겨쓰고 보니까 이 소설에서 별 구실을 하지도 않는 부분을 골랐네?

정말('너~무') 흥미진진했다. (하)권에서는 또 어떤 파란만장이 펼쳐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