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기쁨

by 답설재 2023. 4. 24.

DAUM에서 가져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미지 일부(2023.4.4.22:00)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작품이다.

그런 문호도 인간이니까 그를 싫어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

그중 프리드리히 니콜라이(계몽주의자)는 괴테의 작품을 패러디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1775)을 썼고,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그 작가를 '엉덩이 시령사(視靈師)'로 등장시켜 풍자했다.

 

엉덩이 시령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다.

노학자 파우스트가 마녀의 부엌에서 영약을 마시고 20대의 청년이 되어 순진무구한 처녀 그레트헨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은 데다가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까지 죽게 한 죄책감에 빠지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발푸르기스의 밤의 환락경으로 이끌어 파우스트는 또다시 도덕적 마비에 빠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 엉덩이 시령사가 등장한다.

 

 

아름다운 마녀    이미 낙원의 시절부터

                              당신들은 사과를 무척 탐냈죠.

                              내 정원에도 그런 게 열려 있으니

                              너무 기뻐 가슴이 울렁이네요.

메피스토펠레스 (늙은 마녀와 함께)

                              언젠가 나는 황당한 꿈을 꾸었지.

                              그때 한 그루 갈라진 나무를 보았네.

                              그건 ××* 하나를 갖고 있었지.

                              ××**는 했지만, 내 맘에 들었네.

늙은 마녀             말발굽을 가진 기사님,

                               진심으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그 ××이 싫지 않으시다면

                               알맞은 ××***를 준비하세요.

엉덩이 시령사**** 이 저주받을 놈들아! 이게 무슨 수작들이냐?

                               도깨비가 온전한 두 다리로 설 수 없음은

                               오랜 옛날부터 증명된 일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 인간처럼 춤을 추려하다니!

아름다운 마녀     (춤을 추면서) 저 사람은 도대체 우리 무도회에서 무얼 하자는 거죠?

 

 

 

..............................................................

* '구멍'의 복자(覆字).

** '크기'의 복자.

*** '마개'의 복자.

**** Proktophantasmist. 엉덩이로 정령을 보는 사람. 여기서는 계몽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콜라이 Friedrich Nicolai(1733-1811)를 풍자하고 있다. 그는 괴테의 작품을 패러디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썼고, 괴테와 실러를 자주 공격했다.

 

☞ 민음사 《파우스트 1》(정서웅 옮김 2009 1판 41쇄, 221쪽)에서 각주 번호는 * 모양으로 바꾸어 옮겨씀.

 

 

소설 《파우스트》의 주(註)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책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고? 이 책 내게도 있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프리드리히 니콜라이의 그 책은 당시에는 잘 알려졌지만 지금은 잊혀버린 작품이고(아, 세월의 덧없음이여!) 내가 가진 책은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쓴 책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을 번역하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었다.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를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으로 바꾼 것은 아무래도 좀 못마땅했다. 더구나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프리드리히 니콜라이가 패러디한 작품의 이름이었다니......

 

인터넷에서 내가 가진 책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검색해 봤더니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보여주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철학의 위안》으로 바꾼 것이라면 본래의 제목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에도 가까운 것이니 그게 처음 번역본의 제목보다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