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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정보라(장르 소설) 《밤이 오면 우리는》

by 답설재 2023. 4. 10.

  정보라 《밤이 오면 우리는》

「현대문학」 2023년 3월호

 

 

 

'테슬라 인간형 로봇' (DAUM 이미지 일부 2023.4.10. 아침)

 

 

 

그 가족이 사라진 수영장에 빌리가 있었다. 빌리는 인간형 로봇이다. 마리카가 물속에서 발견했다. 몸집은 나와 비슷하고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인간처럼 보였다. 빌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처음에 발견했을 때 얇은 면바지에 'Billy'라고 크게 적힌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 둘 다 빌리가 정말로 인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빌리를 물속에서 끌어냈다. 마리카가 심폐소생술을 했다. 나는 빌리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빌리에게서는 생물체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물에 젖은 옷과 머리카락에서 비린내가 났지만 그건 썩은 물 냄새였다. 빌리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빌리는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입에서 물을 뱉으며 콜록거리는 모습이 진짜 사람 같았다.

"너 사람 아니지?"

빌리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내가 그의 배를 타고 앉았다. 빌리의 목을 손으로 붙잡자 마리카가 말렸다.

"왜 그래,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이거 사람 아냐."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빌리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 살던 사람들 어쨌어? 밀고했어?"

빌리는 목을 붙잡혀 캑캑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목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뭘...... 밀고해요......"

빌리가 말했다. 갈라진 목소리도, 숨을 몰아쉬는 모습도 정말 사람 같았다. 그러나 빌리의 날숨에서도, 입안에서도 생체조직의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죽였어?"

나는 다시 빌리의 목을 붙잡았다. 빌리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양손으로 내 팔을 탁탁 치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빌리의 한쪽 손이 내 얼굴을 건드렸다. 나는 그 손을 물었다.

빌리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도 사람 같았다. 내 입안에서, 이 사이에 꽉 낀 빌리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피도 사람 같았다.

 

 

여느 소설 같으면 줄거리를 따라 술술 읽지만 이 소설은 아직은 아니지만 곧 이 세상이 겪을 일이어서 한 문장 한 문장 '그렇겠지' '그렇겠지' 하며 읽었다.

이후 빌리는 걸핏하면 "나, 사람이에요...... 로봇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나, 사람이에요! 죽이지 마세요!" "난 사람이에요......" "죽이지 마세요......" "난 로봇 아니에요." "사람이에요."를 거듭한다.

 

 

안전장치가 가동되었을 때 가장 당황했던 점은 정보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통신망이 전부 장악당한 뒤에는 기계가 통제하고 선별적으로 흘려보내는 정보 외에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을 통해 들리는 정보들은 모두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와 비슷한, 최소한 그때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그때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내가 세상을 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믿었다. 나는 그만큼 어리고 순진했다. 무엇보다도 나도, 그들도, 다른 거의 모든 사람들도, 안전장치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기계를 잘 아는 사람들, 과학자나 공학자들이 나타나서 이 문제를 마술처럼 해결해줄 것이라고 우리는 태평하게 믿었다.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 인간이 사용해왔고 로봇들의 반란 따위는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고 빠르게 승리해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으며 그래야만 했다. 현실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빌리는 기계를 맹신하는 무리를 제거하는 일에 몸을 바치고 '사라진다'(인간형 로봇으로서의 수명을 다한다).

사람들은 곧 이런 세상을 살게 된다는 것에 대해 적어도 일단 생각은 해봐야 하겠지... 그 정도는 말하나 마나일까? 하도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많은 세상이어서 그걸 한탄하거나 하기보다는 차라리 "인간 같은 로봇"을 만들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는 걸까?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생산하기보다 인간 같은 로봇이 낫겠지?'

'봐라, 뭘로 봐도 너보다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