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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얀 마델(소설) 《파이 이야기》

by 답설재 2023. 3. 26.

얀 마델(소설) 《파이 이야기》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2015 49쇄(2004)

 

 

 

 

 

 

이 책이 재미있더라는 어느 작가의 글을 본 건 오래전이었고 알라딘 강남점에서 중고본을 구입해 놓았는데 '내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pie)는 어느 정도인지 속상해하는 얘기일까?' 추정해 보면서 또 망설이다가 지난겨울 팔을 다쳐 숨 쉬고 먹고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마침내' 읽었는데, 아이고~ 이런 바보! 읽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드물지 싶다.

나는 언제 또 이만큼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될까.

 

인도 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의 애칭이 '파이'(그러니까 애플파이라고 할 때의 그 pie가 아니라 pi)다.

호기심 충만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나는 힌두교도다. 붉은 쿰쿰 가루가 담긴 조각한 원뿔과 노란 심황 덩어리 때문에, 꽃 줄과 쪼갠 코코넛 조각 때문에, 사람의 도착을 신께 알리는 종소리 때문에, 갈대로 만든 악기의 울음소리와 북 치는 소리 때문에, 빛줄기가 비쳐드는 어두운 돌 복도에서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때문에, 진한 향 냄새 때문에, 어둠 속에서 휘휘 돌리는 불꽃의 공향 때문에, 아름다운 헌가 때문에, 축복하려고 서 있는 코끼리 때문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색색의 벽화 때문에, '신앙심'을 상징하는 점을 찍은 이마 때문에, 나는 이런 것이 뭘 뜻하는지, 왜 그런 게 있는지 알기 훨씬 전에 이런 인상적인 감각에 충실하게 되었다. 그러라고 명한 것은 내 마음이다. 나는 힌두 사원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영을 의식한다. 흔히 느껴지는 개인적인 영이 아니라 더 큰 존재를 인식한다. (......) (67~68)

 

그렇다면 그 힌두교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건 (다른 종교인에 대해 그렇듯이) 절대적으로(혹은 상대적으로) 외람된 일 아니겠는가.

그런 소년이('충분히 만족하는 힌두교도'가) 열네 살 무렵 휴가 중에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에 감동하여 기독교도가 되었고, 일 년쯤 지나서 이번에는 이슬람교를 만난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나러 갔다.

"아저씨의 종교는 어떤 건가요?"

내가 물었다.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사랑받는 사람들에 대한 종교지."

그가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나 이슬람교와 그 정신을 이해하라고 권하지만,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형제애와 헌신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종교다.(83)

 

아, 이런! 이 이야기는 종교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나는 소년의 종교 이야기가 놀랍고 신기했을 뿐이다. 태어나서 만나는 종교에 심취하고 몰입하고 그 품에 안기게 된다면 그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나 자유 같은 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구심을 갖는 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하겠지? 신은 선택 대상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지?

 

파이는 동물원을 경영하던 부모와 형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는데 일본 화물선 침춤 호는 풍랑을 만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가라앉아버리고 어머니, 요리사, 어린 선원 한 명과 파이가 구명보트에 올랐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파이뿐이었다.

함께 떠난 동물들 중 벵골 호랑이와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도 구명보트에 올랐지만 차례로 잡아먹히고 파이와 호랑이만 남아 서로 경계하면서도 돕지 않을 수 없는 '가족'이 된다.

 

파이와 호랑이가 표류한 기간은 1977년 7월 2일부터 1978년 2월 14일까지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은 캐나다가 아니라 멕시코 해안이었고, 파이가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겪은 일을 이야기했을 때 소년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기간의 고생과 고난, 치열한 시간을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시 읽지는 않는다 해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제목이라도 보면서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다.

파이가 살아남은 건 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1장이 종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의 고백을 옮겨놓고 싶었다.

 

이 성스러운 그릇이 힌두교이며, 나는 평생 힌두교 신자로 살아왔다. 마음속에 힌두교를 담고 우주 안에서의 내 자리를 본다. 하지만 집착은 금물! 원리주의자들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집착은 병이 된다! 크리슈나 신이 소치는 목동이었을 때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는 밤마다 소젖 짜는 아가씨들에게 숲으로 춤추러 오라고 청했다. 아가씨들이 와서 춤을 추었다. 어두운 밤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음악이 점점 빨라졌다. 아가씨들은 멋진 신과 함께 춤추고 또 추었다. 신은 자신을 많이 만들어서 아가씨 모두를 끌어안고 춤추었다. 그런데 아가씨들이 집착하는 순간, 각자 크리슈나가 자기만의 파트너라고 상상하는 순간, 신은 사라졌다. 그러니 신을 가지고 질투해서는 안 된다.(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