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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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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보기 : 이서수(중편소설) 《몸과 우리들》

by 답설재 2023. 3. 21.

이서수 《몸과 우리들》

현대문학 2023년 3월호

 

 

 

 

 

 

※ 일부 발췌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상태로 당신과 자는 기분.

잠시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 기관들 가운데 제가 이름 붙인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한 채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멋대로 이름 짓기 놀이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저의 입술은 캐러멜입니다. 제 가슴은 솜사탕입니다. 저의 질은 와플입니다. 어떻습니까. 디저트로 이름 붙인 신체 기관이 먹음직스럽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상당히 퇴행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먹다니요. 신체 기관은 먹고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다시 이름을 붙여봅시다.

저의 입술은 지평선입니다. 제 가슴은 구름입니다. 저의 질은 일몰입니다. 어떻습니까. 먹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고 감탄하는 것으로 이름을 바꾸니 다정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드는지요.

자, 다시 이름을 붙여봅시다.

저의 입술은 질투입니다. 제 가슴은 애환입니다. 저의 질은 보람입니다. 이건 어떤지요. 질투하고 애환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존재이니 조금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지요. 계속해봅시다. 멈추지 말고 해봅시다.  저의 입술은 당신입니다. 제 가슴은 그들입니다. 저의 질은 '나'들입니다. 저의 입술은 어머니입니다. 제 가슴은 할머니입니다. 저의 질은 먼 훗날 태어날 딸입니다. 저의 입술은 첫사랑입니다. 제 가슴은 중학교 동창입니다. 저의 질은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커다란 안개꽃을 든 탑승자입니다. 저의 입술은 회색 연기입니다. 제 가슴은 얼어붙은 호숫가입니다. 저의 질은 도끼입니다.

어떤 이름이든 지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몸'이라는 단어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어떤 이름이든 좋습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연습했으니 규범과 상식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발목, 차라리 발목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발목이 하나 있습니다. 한 쌍이 아니라 하나의 발목입니다. 제 눈앞에 있는 그가 다른 하나의 발목입니다. 그는 안개꽃을 내려놓고 저를 바라봅니다. 그와 저는 둘 다 발목이기 때문에 천으로 형체를 가려야 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중엔 집요하게 삼키듯 응시합니다. 그가 저를 당기고 동시에 제가 그를 당기면서 우리는 한 쌍의 발목이 됩니다. 발목들이 엉키고, 발목들이 서로를 더듬고, 발복들이 신음을 흘립니다. 발목들이 교만한 춤을 추고, 발목들이 오만한 미소를 흘립니다. 지평선과 구름과 일몰이 우리 주위에 두둥실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

언덕, 이번엔 언덕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언덕이 있습니다. 가운데가 도독하게 부풀어 오른 언덕은 지금 누군가와 섹스하는 중입니다. 언덕이 움직일 때마다 그 위에 심긴 나무며 잡초가 한쪽으로 기울고, 다시 반대편으로 눕듯이 기울다 강한 비바람을 맞고 심하게 흔들립니다. 쓰러져 누웠다가 서서히 일어서고, 햇빛을 받아 쨍하게 푸르러지다가 샛노랗게 말라갑니다. 섹스하는 언덕 위엔 햇살과 빗물이 동시에 내리쬐고 흘러내립니다.

이제 다시 제 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가슴은 여성인가요, 언덕인가요. 이 둔부는 남성인가요, 촛농인가요. 이 질은 여성인가요, 노을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이름이 뒤죽박죽되어버려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섹스를 합니다.

저는 그런 상태로 섹스합니다.

(......)

모든 것이 명확한 이름을 갖고 부분별로 나뉘어 있고, 무엇과 무엇이 합으로 향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으며, 마침내 해야 하는 행위를 하고 방출해야 하는 소리를 낸다면 인간은 마치 음향 기기 같지 않습니까? 네모나고 각진 스피커가 양쪽에 달리고 각 부품이 정밀하게 맞물려 있는 음향 기기 말입니다.

인간은 음향 기기보다 훨씬 상상력이 풍부하고 경험도 많고 감정도 다채로운 법인데, 왜 기계 부품처럼 우리의 몸을 구역별로 나누어 이름 붙이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하려 노력하는 것일까요.

저는 누락된 이름과 지워진 결합을 자주 떠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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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1983년 서울 출생. 단국대 법학과 졸업. 2014년 『동아일보』 등단. 중편소설 『몸과 여자들』.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헬프 미 시스터』. 〈황산벌청년문학상〉〈이효석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