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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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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에 연재 중인 이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4월호(연재 제4회)에는 지난 번에 소개한 부분에 나오는 그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라는, 역자가 임의로 붙인 작은 제목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은 그 중의 일부입니다. 어머니는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읽는 낭독자는 못 되었지만, 무엇인가 진정한 감정의 어조가 느껴진다 싶은 작품의 경우에는, 그 해석이 경건하고 소박하며 그 목소리가 아름답고 부드럽다는 점에서 역시 훌륭한 낭독자였다. 실생활에 있어서도,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술작품이 아니고 사람인 경우, 그가 전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라면, 당신의 목소리나 태도나 말투에서 그.. 2009. 3. 31.
봄 편지(Ⅱ) 가벼웠고, 들떴기 때문일까요, 봄이 왔다고? 눈이 내립니다. 우산을 받치고 오는 아이들이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저들은 영원히 예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천사백 명이 제 손자․손녀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나의 자산이고 내 나름대로는 지난했던 삶에 대한 보상이고 위로일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이런 나를 알고 있을까요? 저 아이들이 떠들었다고 선생님께 혼이 나는 것조차 나는 싫습니다. 운동장 건너편 나뭇가지에도 눈이 붙어 벚꽃이 만발한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잠깐은 벚꽃이 핀 줄 알았습니다. 그저께는 강릉 초당동에 있는 강원도교육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에서 눈 내린 겨울 산을 그린 산수화 속의 그 늠름한 산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봄인 줄 알았더니…….’ 진달래 대신 눈 쌓인 산의 모습을.. 2009. 3. 26.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프랑수아즈가 내게 와서 쪽지는 곧 전달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인생 수업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스완 역시 그러한 헛기쁨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어떤 무도회나 특별한 야회나 혹은 연극의 개막공연 같은 데 참석하기 위하여 들어가 있는 저택이나 극장 바깥에서 우리가 그 여인과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절망적인 기분으로 엿보며 배회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을 이제 곧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녀의 친구나 친지가 그 사정을 알아차리고 친절을 베푸는 가운데 맛보게 해주는 헛기쁨을 말한다. 그 사람은 우리를 알아보고 허물없이 다가와서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하여 이쪽에서 그의 .. 2009. 3. 21.
어느 독자 Ⅱ - 지금 교실에 계신 선생님께 - 시업식입니다. 아울러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운동장에는 작은 떨림이 있습니다. 짐짓 무표정하게 새로 만난 아이들 곁을 지나쳤습니다.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 또래 평균치보다 약간 작은 녀석이 아예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못들은 체하고 지나칩니다. '만만치 않은데. 저 아이와는 올 일 년 특별한 만남이 되겠는 걸.' 아이들은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인사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담임이 된 저를 탐색하느라 흘끔거리는데 시간을 소비합니다(누가 이렇게 쳐다봐 주겠습니까). 더러는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애써 무관해하는 것 같은 표정도 엿보입니다(이미 정해진 담임,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4학년쯤 되면 알 법도 하겠지요). 추운데.. 2009. 3. 19.
봄 편지(Ⅰ)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봄의 어느 아침, 꽃들을 가득 달고 벚나무가 서 있다. 그 하얀 꽃들은 그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침묵의 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그 꽃들은 침묵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래서 하얀빛이 되었다. 새들이 그 나무에서 노래했다. 마치 침묵이 그 마지막 남은 소리들을 흔들어 떨쳐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 침묵의 음(音)들을 쪼아 올리는 것이 새들의 노래인 것 같았다. 나무의 푸른빛 또한 돌연히 나타난다. 한 나무가 다른 한 나무 곁에 푸른빛으로 서 있는 모습은 그 푸른빛이 침묵하면서 한 나무에게서 다른 한 나무에게로 옮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대화할 때 .. 2009. 3. 18.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20090317)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논술 중심으로 가르쳐야 할지, 면접 중심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다”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제대로 치러낼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객관적 기준도 없이 선발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승복할지 모르겠다”……. 시험점수가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 잠재력 등을 평가해 신입생을 뽑겠다는 ‘입학사정관 선발’에 대해 학생․학부모, 교사들의 관심과 의구심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입학전형에 관한 한 교사와 학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한 초라한 입장이 돼버렸다. 당연히 대학들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키는 대로 해왔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도화선은 서남표 KAIST 총장이 “私교육은 死교육” “고교 성적은 아예 안 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잇단 발언으.. 2009. 3. 17.
The Harvard Crimson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 The Harvard Crimson 엮음/민선식 옮김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를까?』 조선일보사/2003 'Application Essay'(입학 지원 에세이)라는 단어를 찾아오는 분이 많습니다. 이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이 참 단순한 책입니다. ‘편집자의 말’ ‘역자의 말’이 각각 두 페이지, 제125기 하버드 크림즌 대표(매튜 W. 그러네이드)와 제126기 대표(조슈아 H. 사이먼)의 ‘책을 내면서’가 두 페이지씩이고, 본문은 입학 지원 에세이와 그 에세이들에 대한 코멘트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50 Successful Harvard Application Essays』라고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밑줄을 쳐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 A.. 2009. 3. 16.
우리 아파트 홍중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내애가 제 친구와 헤어지면서 고래고래 떠드는 소리가 지하 2층까지 내려옵니다. 5학년짜리 홍중입니다. 우리 동(棟)에는 그 애 말고는 그럴 애가 없으니까요. 언젠가 “할아버지, 오늘은 더 멋지게 보이세요.” 해서 저를 우쭐하게 했던 그 아입니다.1) 로비 층에서 홍중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인사에 이어 숨가쁘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저 8월에 미국 간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응? 뭐라고? 미국이라니! 얼마 동안?” 빅뉴스를 들은 척해주었습니다. “3주간요.” 그러더니 벌써 섭섭해진다는 표정으로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를 못 뵐 것 같아요.” (별 걱정이야, 내 참...) “그렇겠네? 누구하고 가?” “영어학원 원장님요(그 애는 내가.. 2009. 3. 15.
미셸 투르니에의 『푸른 독서 노트』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푸른 독서 노트』 이상해 옮김, 현대문학, 2008. 미셸 투르니에 1924년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느와 독일 튀빙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문학 번역가, 라디오 방송국 직원, 출판사 문학부장직을 거치며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1967년 첫 번째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출간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수상했고 1970년 『마왕』으로 콩쿠르상을 받았다. 1972년에는 콩쿠르상을 심사하는 아카데미 콩쿠르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흡혈귀의 비상』 『외면일기』 등의 산문집, 사진집인 『뒷모습』 등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차례 1.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2. 위대한 작가이자 뛰어난 지리학자, 쥘 베른 3. 이상한 나라를.. 2009. 3. 12.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최승자 옮김, 까치 1999 소개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껴두었던, 정말 좋은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대부분 거짓말인 ‘강추(强推)’니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이니 그따위 말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한꺼번에 읽어도 좋지만 조금씩 읽어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책날개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가 보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논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직접 읽어주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막스 피카르트는 고뇌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고뇌의 특징은 그것이 무서울 만큼 엄밀하다는 데에 있습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백을 해야 할까? 막스 피카르트의『침묵의 세계』를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내가 당황했다는 것을. 책을 펼치기만 하면 그 어디에서나 우리는 피카르트가 침묵에 대.. 2009. 3. 3.
국가 학업성취도평가를 위한 전제 (20090303) 국가 학업성취도평가를 위한 전제 「임실 성적조작 전원 직위해제」‘전북도교육청은 임실 성적조작 관련자를 전원 직위해제하는 한편 교장 임명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위해제 대상자는 성적을 원천 조작한 임실교육청의 결제라인에 있던 김 모 학무과장, 임실교육청의 수정보고를 묵살한 도교육청의 성 모 장학사와 상급자인 남 모 장학관, 김 모 초등교육과장 등 4명이다. 도교육청은 또 이들 중 3월1일자로 교장에 임명된 임실교육청 김 학무과장, 도교육청의 성 장학사, 초등교육과 김 과장 등 3명의 교장 임명을 취소해줄 것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했다.’ 최근 어느 신문에 보도된 기사의 일부이다. 결국 이렇게까지 되고서야 국가 학업성취도평가를 둘러싼 언론의 관심은 고개를 숙이게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더 들여다봐.. 2009. 3. 3.
다시 먼 나라로 떠난 딸을 그리워함 조용하면 생각납니다. 그럴 때는 이곳이 적막해집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럴 때는 괜찮습니다. 생각나게 하는 건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가령, 영국이라는 나라가 그곳에 있을 서쪽하늘은, 언제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4일, ‘한국의집’에서 혼례를 치른 딸이 또 이 나라를 떠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 두 달 간 하루하루는 참 잘 갔는데 한 달,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어서 아득해졌습니다. 옛적에 있었던 일 같습니다. 우리 학교 H선생님은 제 글 「먼 나라로 살러가는 딸과 작별하고」(2007.12.18)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D시의 후배 K교장은 그의 아들이 혼례식에 대신 참석했는데 신랑은 옥스퍼드 출신, 신부는 캠브리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기가 죽었더라고 했습니다. .. 2009.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