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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창밖의 풍경

by 답설재 2010. 4. 16.

젊었을 땐 창밖의 풍경도 내다보지 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지낸 그 오랜 세월에는 18층 창 너머로 인왕산의 사계(四季)와 인파, 자동차 물결, 전광판들, 시위대의 모습 같은 것들을 자주 내려다보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찾아간 곳이 2004년 9월 1일의 용인 수지의 성복초등학교였습니다.

그 학교 1층의 교장실에서는 송화가루가 날아들고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그 앞의 나지막한 동산을 내다보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면 귀뚜라미가 울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몇 명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공부하느라고 여념이 없는 시간에 교장실의 열려진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면서 "오빠! 뭐 해요?"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까페를 만들고 그 이름을 '○○○ 교장을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으로 짓겠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다 지나가고나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헤어질 때는 미련을 두지 말고 작별 인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학교 교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3대 교장이 근무하고 있고, 2대인 저는 학교 홈페이지의 어디를 봐도 이름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2007년 9월 1일부터 지난 2월말까지는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의 남양주양지초등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1층에 마련된 화려한 교장실을 교감실 및 회의실로 바꾸고, 2층의 일반교실 한 칸을 교장실로 정해서 지냈습니다.

교사(校舍)가 서향이어서 봄부터 가을까지의 오후에는 늘 덥고, 가을부터 봄까지의 오전에는 늘 추웠습니다. 그러니까 1년이라는 세월이 덥기 아니면 춥기여서 걸핏하면 감기가 걸리는 저는, 그 속에서 교장을 하고 앉아 있으려고 '판피린'이라는 간편한 감기약을 아예 몇 박스씩 사다 놓고 하루에 몇 병씩 마셔댔습니다.

 

 

                        

 

 

 

 

 

 

그 교장실에서는 운동장과 마을을 내다보며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협심증 진단을 받게 되어 난생 처음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관상동맥인가 뭔가를 뚫었다는데 몸을 자르기 전 1주일간 아스피린을 먹어서 피를 많이 쏟았고, 지금도 오르막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우니 일종의 불구가 된 셈입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날에도 그 창가에서 운동장을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담배를 피우며 잘 지낸 수많은 세월을 생생하게 되돌아보며 눈물겨워했습니다. 가령, 젊은날의 제 아내는 골목 구멍가게에서 제가 피울 담배를 외상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눈물겨움은 사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문득 문득 모든 일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더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살아 있는 것이 짐이 되어 스스로 싫어지면,

그만 가보는 것이 아무래도 더 낫겠다고 여겨지면, 그걸 눈치채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구구팔팔!" 같은 걸 외치지 말고 다시 담배부터 피우면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어하며 살아가는,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며 살아온 것이 저의 유일한 재산(?)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따져보면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한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담배조차 다른 사람이 끊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 풍경을 내다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가끔 저 창가에 비둘기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창가가 넓어서 비둘기가 머물다 가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비둘기가 환경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저는 끝까지 비둘기네 편입니다. 아니, 전에는 굳이 비둘기편도 아니고 인간들의 편도 아니었으나, 최근에 비둘기편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언제는 평화의 상징이니 뭐니 해대다가 하루아침에 해로운 새라고 윽박지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는 인간들은 뭐가 그리 깨끗하답니까?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간사하고 그렇게 잘 변하는 걸 저 비둘기가 얼마나 속상해하겠습니까?

 

 

 

                               

지난 3월 어느 날, 폭설이 내린 날 오후

 

 

 

 

저 거리를 내다보며 생각합니다.

날마다 생각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러니까 그 생각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깊어지는 생각을 따라가는 일은 어렵고 피곤합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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