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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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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 선중이 Ⅱ 1학년 운동회를 하는 중에 5반의 G라는 아이와 몇 마디 얘기를 했습니다. 머리에 상처가 나서 거즈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일렀습니다. “몇 바늘 꿰맸대요.” 침대에 부딪쳐서 그렇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그 애는 지난해에는 병설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유치원 수료 기념사진 한 장을 찍는데 하도 움직여서 아주 오래 걸렸어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의 자세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다른 모든 아이들이 자세를 잘 잡으면 그 아이도 제대로 할 것이라는 게 그때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병설유치원 원장이 그런 재미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런 일을 할 때 오래 걸리게 합니다. 그냥 찍어도 좋을 텐데 온갖 간섭을 합니다. 올해도 .. 2009. 9. 14.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9. 9. 11)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4년 2월, 교육부에서 교원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지 5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 8월 10일, 그동안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이 시책에 줄곧 반대해오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격적 수용으로 교원평가 문제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정부시안 및 부적격 교원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48개 시범학교를 지정했고, 2008년 12월에는 의원입법안이 발의되었으며, 금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시범학교를 1570개교로 확대했다. 또 금년 4월에는 교원단체의 주장을 반영하여 인사연계 조항을 삭제한 추진방안이 발표됐고 이 방안에 따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여 현재 계류 .. 2009. 9. 11.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 왜 사람들은 평범하게 따듯할 수가 없을까? 스스로 좀 놀랍다. 때 지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몸서리치고 그 빛이 스러질 때까지 되새기던 습성을 떠올리면, 이렇게 머리가 멍하기만 한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줄거리나 멋있는 대사를 열거하고 찬탄을 되뇔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냥 어떤 이미지들만 가득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국가대표'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평범한 부당함과 무관심한 평가가 언짢으면서도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어버리는 장면들에서 생각 없이 크게 웃었다. 참 슬프고 속상한 이야기인데도 어쩌면 저런 대사와 표정과 행동을 쏟아내는지…… 비극이나 희극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도통한’ 말이 영락없었다. 혹 우리의 일상도 희한한 렌즈로 클로즈업하면 저렇게 대수롭지 않고 희극적인 것.. 2009. 9. 10.
이병초 「봄밤」 봄 밤 이 병 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싱겁고 개구지던 고향 형님들 옛 .. 2009. 9. 8.
강기원 「장미의 나날」 장미의 나날 강 기 원 그 동네에선 우리 집 장미가 제일 붉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장미가 있었지만 유독 장미집이라 부르곤 했는데요 식구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든 밤 아버진 휘늘어진 넝쿨 밑동에 아무도 모르는 거름을 붓곤 했는데요 나 홀로 깨어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는데요 비밀스런 겹겹의 꽃잎은 뭉게뭉게 자꾸 피어나고 장미가 붉어지는 만큼 나와 동생은 자꾸 핼쑥해져갔는데요 그러고 보니 엄마의 낯빛도 갱지처럼…… 이상한 건 향기였지요 수백 수천 송이가 울컥거리며 피워내는 피비린내 마당을 넘어 집 안까지 기어든 넝쿨은 소파를 뚫고 곰팡이로 얼룩진 벽을 타고 생쥐가 들락거리던 아궁이 속에서도 붉게 검붉게 소문 같은 혓바닥을 내밀기 시작했는데요 그 무렵 우린 아버지의 주문 따위 필요 없이 스스로.. 2009. 9. 7.
유치환 「古代龍市圖」 시인은 왜 시를 쓸까요. 대체로 “쓰지 않고는 공허하여 살 수가 없다.”지만, 그럼 우리는 왜 시를 찾는 것일까요. 좀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아, 정말 그래!’ 싶은 한 편의 시를 발견하는 순간 때문에 시를 찾아 읽는 것 아닐까요? 시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돈도 내지 않고 그 시인의 정신세계, 정서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의 희열을 위해 시를 읽습니다. 더구나 그 순간의 놀라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 놀라움으로 나의 갈 길을 다시 설정하여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정서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그 전환점이 그리워서 시를 읽습니다. ‘詩’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입니다. 古代龍市圖 아득한 옛날 三神山 山麓 萬里ㅅ벌에는 한 해에 한 번 나라의 龍市가 섰었나니. 이 날이면 안.. 2009. 9. 5.
‘IT 코리아’와 우리 교육의 미래(斷想) 정부에서는 지난 2일,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3년까지 정부와 민간을 합쳐 무려 189조원(정부 14조1000억원, 민간 175조1988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계획이 워낙 방대하여 ‘IT KOREA 재도약’을 위한 웅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 2009. 9. 4.
『사무라이』 니토베 이나조 《사무라이》 양경미․권만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4 신문 1면 하단에 「○○당 집단 퇴장 … 정기국회 문 열자 파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무래도 부정적 혹은 비관적 제목이지만 '우리의 국회의원들'이니까 사실은 다 잘해보려고 그러는 걸로 기대해야 할.. 2009. 9. 2.
이병률 「장도열차」 장도열차 이병률 (1967~ )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이 가을, 열차를 타고 갈 데가 있나? 어느 역의 플랫폼으로 잠깐 나와 줄 사람이 있나? 그 역에서 좀 만나자고 편지를 띄울 사람이 있나? 지난여름, KTX도 다니지 않고 공항도 없는, 겨우 무궁화호가 쉬고 또 쉬며 네 시간을 가서 도착하는, 그리웠던 그곳에 다녀왔다. 철로 주변 풍경도 옛날 같지 않았고 연락할 아무도 없었다. 그리웠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 어디에서 가혹한 그리움으로 각각 이.. 2009. 9. 1.
나탈리 앤지어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햇살과나무꾼옮김, 해나무, 2003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도하는데, 이는 여성은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거나 좀 먹긴 해도 좋아하진 않을 걸로 여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시절에 즐겨 쓰던 속담 형식이라 해둡시다. '놈'들만 나오는 속담이니까요. 사전에서 '고기'를 찾아보면 이 속담이 나오고 ‘무슨 일이든지 늘 하던 사람이 더 잘한다는 말’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하기야 준비한 사람, 연습한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 건) '진짜로'(과학적으로도) 그렇답니다. 나는 한때 삼겹살을 2인분이나 먹었습니다. 아내의.. 2009. 8. 31.
학교교육과정 평가도구의 타당화 방안 연구의 현장적합성 어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학교 교육과정 평가도구의 타당화 및 평가 실행 체제 구안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학교 교육과정 평가의 방향과 과제’에 대한 기조강연에 이어 ‘학교 교육과정 평가 도구의 타당화 방안 연구’(주제 1), ‘학교 교육과정 평가 실행 체제 구안’(주제 2)에 대한 주제 발표와 각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원고로 주제 1에 대한 토론을 했습니다. 학교교육과정 평가도구의 타당화 방안 연구의 현장적합성 1. 이 연구의 성격에 대하여 연구자는 제6차 교육과정 이후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하게 한 방침이 추구하는 ‘교육과정 의사결정 분권화’와 제7차 교육과정에서 강조했던 ‘학교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학교교육과정의 .. 2009. 8. 29.
가을 엽서 Ⅶ 란아, 괜찮아. 다 괜찮아. 아니라면, 괜찮아질거야. 그래서 세월이 가는거야. 그렇지 않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2009.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