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 왜 사람들은 평범하게 따듯할 수가 없을까?

by 답설재 2009. 9. 10.

                                                                           

 

 

스스로 좀 놀랍다. 때 지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몸서리치고 그 빛이 스러질 때까지 되새기던 습성을 떠올리면, 이렇게 머리가 멍하기만 한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줄거리나 멋있는 대사를 열거하고 찬탄을 되뇔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냥 어떤 이미지들만 가득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국가대표'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평범한 부당함과 무관심한 평가가 언짢으면서도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어버리는 장면들에서 생각 없이 크게 웃었다. 참 슬프고 속상한 이야기인데도 어쩌면 저런 대사와 표정과 행동을 쏟아내는지…… 비극이나 희극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도통한’ 말이 영락없었다. 혹 우리의 일상도 희한한 렌즈로 클로즈업하면 저렇게 대수롭지 않고 희극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 때문이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동료교사가 그들 중 한 명의 선수가 우리 학교 '스키꿈나무'인 아이를 직접 지도해 준 일이 있다고 해서 더욱 그랬다.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그래도 행복한 결말에 안도하면서 어디어디에 있다는 그들의 소식을 웹서핑해 보았다.

 

4명의 선수와 1명의 후보 선수는, 버려져서 입양된 한국인 고아, 약물중독으로 선수생활을 접은 전직 스키선수, 조선족 처녀와 사랑을 쌓아가며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역시 전직 스키선수, 할머니와 모자라는 동생을 위해 군대를 가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스키점프에 매진하는 군 기피자까지, 모두 '별볼일없는' 사람들-영화에서의 표현대로라면 '쓰레기'-이 우여곡절 끝에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따는 인간승리를 이룬다. 당연히 실존인물들은 다르다. 어렵고 고독한 상황에서 그들의 길을 걸어온,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같을 뿐이다.

 

우여곡절은, 국가대표임에도 비인기 종목으로 훈련비나 비행기표, 해외 체류 비용을 전혀 지원받을 수 없는 '방치'와,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전혀 지원되지 않는 상황을 포함하여야 하고, 그들이 스키점프 종목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하여 경기를 치렀다는 사실과, 더 극적(劇的)인 우리나라에는 근 10년 동안 스키점프를 지원한 경쟁자가 없어 계속 그 5명이 국가대표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경이로운 기록도 포함하여 설명해야 그들의 인간승리를 조금은 공들여 설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해피엔딩과는 상관없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영화가 나온 후 인터뷰한 상황은, 경비 충당을 위한 생활전선에서 실망스럽게도 그들은 여전히 어렵단다. 우리나라 체육행정의 지원체제를 알지 못하므로 무슨 구체적인 원망을 쏟아낼 수는 없지만, 영화가 7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조금은 다르더라도 그들은 실존인물이니 곧 어떤 식으로든 나아질 것이라는 위로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우리는 왜 평범한 따뜻함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남성그룹 투피엠(2PM)의 리더 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시애틀행 비행기를 타는 동안 공항을 메운 팬들의 흥분, 서글픈 어눌함과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껴안고 "맞아 죽을 것 같았다"고 폭로하는 어른 같지 않아 보이는 유진박, 누구나 어려움은 있지만 잘해나가고 있다고 평가-무분별하고 다소 무관심한 평가-를 받고 있었던 고 최진실의 빈소에서 탈진하고 통곡하는 동료 연예인들…… 그들의 영상은, 결과가 다르다는 차이가 있음에도 영화 ‘국가대표’ 속 주인공들의 영상과 비슷한 색깔이었다. 그들 주변에는,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데도, 그토록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는데도 왜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부당하고 부조리하기만한 것이었을까? 주변 사람들의 때늦은 반응은, 모두 지나가고 난 다음의 공분과 안타까움이고 절절한 후회와 회한의 속쓰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스한 피와 살을 가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다는 이웃들은, 왜 '재범'이나 국민배우 최진실, 음악신동 유진박……들을, 눈물과 통한의 회오리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공정한 것처럼, 편견을 가지지 않은 열린 사람인 것처럼 살아가면서도 사실은 그들을 괴롭히는 '무심한' 삶이 아닌, 그냥 평범하지만 따스한 이웃들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들은 항상 우리에게서 멀리 있었다. 사실은, 고독하고 상처받은 '국가대표선수들'은 오늘도 나랑 같이 밥도 먹고 버스도 타고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마주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이 교실에 앉아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공부도 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평범하지 않고 조금 다를 것인데, 때로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평범하지 않기도 할 것인데, 왜 우리는 그들에게 '범상한' 따스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죽음을 보고, 혹은 돌이킬 수 없이 절망한 모습을 보여야만 넘치는 감동과 사랑을 쏟아내게 되는 것일까? 마치 폭력처럼, 폭풍처럼…….
작은 다짐 하나, 내 곁에 있는 이웃들에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좀 더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5학년 안현석 선생님께서 오늘 오전에 보여준 글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본 영화가 아니었구나!' 싶습니까? 아이들에게처럼 어제 오후 동호인 연수를 내보내면서 낸 '숙제'였습니다.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회의가 있으니까 감상문을 보여달라고 한 거지요.

 

지난 9월 1일, 이명원 교감께서 승진해 오셨을 때 전 교원이 참여한 취임식을 해드렸는데, 그날 여섯 명의 젊은 남녀 선생님들이 플루트를 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들은 좀 잘난 체하면서 두 곡을 들려주었는데, 위는 흰색 옷, 아래는 검정 옷을 갖추어 입어서 폼은 흡사 어제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 유럽 어느 나라 연주자들 같았지만,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실력은 '별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두 곡을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월사금(月謝金)’을 내어 한 달에 딱 한 번 동호인 연수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교장인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모처럼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촬영 : 이은수 선생님이 저쪽에서 플루트 분다고 대신 나영채 선생님

 

 

지난해에는 그래도 학교에서 꽤나 되는 동호인 연수 보조를 해주었지만, 올해는 그 보조를 확 줄였습니다. 교육청 감사에서 너무 많이 준다는 지적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 때문입니다.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더러 있습니다.

 

비밀이지만, 안현석 선생님은 참 고운 선생님이고 무척 좋은 여성입니다. 숙제를 썩 잘 해서 동호인 연수비를 쬐끔만 줄 수 있는 이 나라의 한 교장인 것이 참 치사하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