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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발표, 기어드는 목소리

by 답설재 2009. 6. 17.

□ 현상

 

가끔 수업을 관찰할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실의 특징을 말하라면 이런 것 아닐까요? 교사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과제에 대한 교사의 일방적인 독촉 “빨리빨리!”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교사와 학생간의 1:1 단답형 질문과 대답, “크게 대답해라!” 아이들은, 두어 명을 빼고는 쉬는 시간의 그 엄청난 소란에 비해 거의 시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게다가 질문은 교사의 권한이고, 그건 수업을 진행하는 절차상의 불문율이며, 학생은 대답하는 쪽이어야 정상이므로 간혹 어느 학생이 질문을 했다면(거의 그럴 리가 없지만), 그건 자칫하면 수업의 진행을 방해하는 일이 되기가 쉽고…….

아이들은 왜 질문을 하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의 질문은 수업안 작성의 고려사항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무슨 권한으로 모든 질문을 우리가 만드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서 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질문하고 학생들은 대답하는 교실이면 그 교실이 바로 지식주입식 수업을 하는 교실입니다. 지식주입식 교실은 교사의 질문에 한 명씩 정답을 말해야 하는 교실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당연히 정답 아니면 오답을 하게 됩니다. 정답을 말했다 하더라도 일단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사의 평가를 기다리게 됩니다. “잘 발표했어요!”(서로 안심!)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면, 대답하는 쪽은 성인이라도 일단 주눅이 들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공손하게 가능하면 튀지 않게 대답할 것은 당연합니다. 아이들도 그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목소리가 크지만 일단 공부시간만 되면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질문은 ‘백발백중’ 교사가 하는 것이므로 아이들은 질문할 생각 같은 건 꿈에도 없고, 적극적인 아이라 해도 교사가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피동적인 태도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게 된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이야기를 좀 해도 좋은 시간에는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이야기하게 되므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의 통제가 있을 때 이외에는 소란한 교실, 교사가 질문하면 일제히 답하거나 한 학생씩 대답하는 교실, 그러므로 교사는 수업의 진행상 학생들의 그 대답을 들어주어야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꼭 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혹 들어준다면 그건 ‘에티켓’일 뿐인 교실, 그러므로 학생들 간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심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분단학습을 하면 토론이 일어난다고 할지 모르지만 대체로 허위입니다. 거의 뻔한 답을 리더가 말하고 나면 필요도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주어진 몇 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뉴질랜드 Wakaalanga Primary school의 수업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이고, 전 학년 모든 학생이 함께 하교합니다. 등교시간은 우리처럼 8시 40분이고, 9시까지는 자유시간이므로 학생들은 농구, 럭비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활동합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정숙하게 앉아 책을 읽는다는 점입니다. 수업 중에도 교사의 허락 없이는 절대 옆 친구와 말을 하지 않았으며, 간혹 정말 필요한 순간 말을 할 때에는 모기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점입니다. …(중략)… 한국의 교육이 뉴질랜드의 교육수준에 비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뉴질랜드의 초등교육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현실은 아직도 많이 수정되고 발전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3주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한 초등학교 교육을 살펴보고 온 어느 교사의 네이버 블로그(선댄스의 하루)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왜 교실에서 떠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을까요? 그러면서도 발표를 하게 되면 왜 목소리가 기어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을까요?

 

□ 해석

 

토의․토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1) 교사와 학생의 언어 상호작용은, 교사의 발문과 학생의 응답 형태에서 학생과 학생간의 자연스러운 토의나 대화 형태로 옮겨가도록 지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용적 분위기에서 학습에 관한 한 무엇이든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모호성의 용인), 적절한 시기에 발문하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주어 사고가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자유로운 분위기 조성). 또 항상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발문의 표현은 간단명료하게, 정확하게, 적절한 속도로, 재미있게, 체계적․단계적으로, 불필요한 반복이 없게 해나가야 합니다.

교실에서의 언어 상호작용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러한 언어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교실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본래 토의는 의사를 교환하며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토의학습은 의사교환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을 모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초적 능력을 길러주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토의학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교사와 학생이 상호 이해적 분위기,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화와 토의에 필요한 기초적 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또 적절한 주제를 선정하고, 교사는 효율적 발문을 활용하여 중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토의 내용에 적합한 학습유형을 적용해야 합니다. 교사는 토의학습과 관련된 기능을 단계적으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 기능이란 이런 것들입니다.

◦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말하기

◦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 장소와 시기에 알맞게 말하기

◦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대화하기

◦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결과에 승복하기

◦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기

◦ 구체적 사실을 들어서 말하기

◦ 자기주장을 말하되 억압하거나 군림하지 않기

◦ 토의의 핵심 파악하기

◦ 논리적으로 말하기

◦ 다른 사람의 관점과 감정 배려하기 등

가령, 사회과라면 다음과 같은 주제에 의해 토의학습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개념의 의미를 분석적으로 논의하는 주제 : 역할, 자연환경 등

• 원리, 법칙을 발견하고 사실을 증명하는 주제 :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

• 새로운 생각(아이디어 제시)을 많이 해낼 수 있는 주제 :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 가치판단에 관한 주제 : 자녀 수 결정 등

• 현대사회의 문제 및 논쟁점에 관한 주제 : 인구집중에 의한 도시문제, 환경오염 등

•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주제 :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 등

토의의 유형은 ‘닫힌 토의’와 ‘열린 토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핵심입니다.

‘닫힌 토의’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 전개됩니다. 교사가 학생간의 대화를 중재하는 시간은 짧고, 교사 대 학생간의 대화가 잦습니다. 주어진 사례나 자료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이 지식을 적용하며 입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교사가 잘못된 것을 교정해줍니다. 이러한 토의는 교사가 사전에 계획한 대로 전개되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직접적인 경험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토의는 통제되었거나 반통제적인 분위기에서 전개됩니다. 대화․토의 내용도 비교적 추상적이며, 정보교환, 단순한 번역, 해석, 추론, 입장선택 등의 활동이 전개됩니다.

‘열린 토의’는 학생이 주도하는 토의가 이루어지는 자유토의 방식입니다. 교사가 상호 교환적 역할을 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며 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자발적․적극적 참여가 이루어지고, 보고 듣고 읽고 체험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입장을 선택하고 정당화하며, 보다 많은 논의 끝에 결정하거나 아이디어를 생각해냅니다. 학생들의 감정이 개입되어 활발한 토의가 전개되며, 교사의 사전계획대로 토의를 전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 제안

 

‘열린’ 토의학습이 이루어지는 교실을 창출해내기 위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지금부터는 선생님께서 “23+17은 얼마일까요?” 같은, “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실뿌리로만 이루어진 식물의 이름을 아는 대로 말해볼까요?” 같은, 정답과 오답이 있는 문제의 답을 묻는 발문은 일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생각되겠지만 실제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발문에 생각보다 깊은 관습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발문을 하자는 것입니까. 정답(오답)이 없는 발문만 하자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어느 날 아이들에게 ‘선포’의 형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음 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장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끼어들 틈도 없이 학생들 간에 활발한 토의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어? 이것 봐라! 틀리고 맞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면 좋아! 나도 내 생각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 사실 그동안 교실에서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

우리가 교육 선진국의 교육을 따라잡는 지름길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처럼 ○×나 ①②③④⑤ 중에서 고르기, 기껏해야 단답형인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그들의 교육방법이니까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의견을 들어보고 토의해봐야 창의력이 생기고, 사고력이 신장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까요.

“그럼, 정답을 말해야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그건 대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그런 공부도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공부는 수많은 공부할 거리 중에서 매우 단조롭고 단순하고 유치한 경우에 해당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각 학생이 자신의 답을 체크하게 할 수도 있고, 옆의 학생과 비밀리에 상호 체크하게 할 수도 있고, 웬만하면 선생님과 그 학생만 알고 넘어가는 방법을 써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정답이냐 오답이냐를 따져야 할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1) 김만곤 외,『사회과 교육의 실제』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2, 110, 153~154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