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는 지난 2일,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3년까지 정부와 민간을 합쳐 무려 189조원(정부 14조1000억원, 민간 175조1988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계획이 워낙 방대하여 ‘IT KOREA 재도약’을 위한 웅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보고한 ‘IT 코리아 미래전략’의 내용이며, 5대 핵심전략은 ▲ 주요 제조업과 IT의 융합(기존 산업에 IT 기술을 융합한 10대 전략산업 육성) ▲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글로벌 수준 소프트웨어기업 육성) ▲ 주력 IT 제품 세계 1위 경쟁력 유지(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전화 세계 1위 유지․달성) ▲ 방송통신(와이브로․인터넷(IP) TV․3D TV 시장 조기 활성화) ▲ 인터넷(초(超)광대역 네트워크 구축) 등입니다. 이 보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IT의 힘”이라고 했으며, “IT는 자체뿐만 아니라 융합을 통해 힘을 발휘한다.”고도 했답니다. 더구나 IT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7%,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추산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그 비중이 가장 큰 나라라니 이 계획이 공허한 청사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신문은「미리 보는 ‘IT 코리아’」라는 관련 기획기사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2013년, 이미래씨는 주말에 TV 리모컨을 돌려 3차원 축구 중계방송을 본다. 볼을 잡은 선수가 바로 옆에서 뛰는 듯하더니, 슈팅을 한 공이 이씨에게 정면으로 날아온다. 이씨는 마치 진짜 공이 날아온 듯 급하게 몸을 숙였다. …(후략)….”(조선일보, 2009. 9. 3. A3).
IT 융합기술을 통한 10대 육성산업이 뭔가 싶어 그 신문의 도해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 자동차 : 자동 안전주차 기능, 졸음운전 감지 장치
․ 조 선 : 디지털 선박 건조, 무선 통신망을 통한 디지털 선박 제어
․ 의 료 : 초고속 통신망 등을 통한 원격 진료, 전자파 진단기 등 첨단 의료기기
․ 섬 유 : 자외선 차단과 온도․습도 조절 센서, 건강 정보 파악 센서
․ 기 계 : 센서를 통한 원격 기계 제어 시스템, 자동 오차 감지․교정 시스템
․ 항 공 : 위성․관성 항법 장치, 조종사 훈련 시뮬레이션
․ 건 설 : 지능형 에너지 관리, 친환경 그린 건설
․ 국 방 : 군사작전 수행 로봇, 가상현실 모의훈련
․ 에너지 : 태양광 전지 생산, 전기자동차, 전기절약 자동화 시스템
․ 로 봇 : 청소, 방범, 헬스케어 로봇
이게 끝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육’ 관련 내용은 없습니다. IT 관련 업무는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있으니까 교육이 소홀하게 취급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요 제조업과 IT 기술을 융합한다는 것이고 교육이야 당연히 제조업 따위는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5대 핵심전략에 포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교육은 또한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교육기본법) 하는 서비스업이어서 거기에 포함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 기사를 샅샅이 훑어보았더니 이런 구절은 보입니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장학생’을 선발,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고~” “방송․통신 융합의 결정판인 인터넷TV(IPTV)를 2010년까지 전국의 모든 교실에 설치, 질 좋은 교육프로그램으로 사교육비를 절감할 방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휘’하는 공문을 기다려 ‘소프트웨어 장학생’이나 선발해주고, 내년에 인터넷TV(IPTV)가 보급되면 앉아서 그걸 받기나 할까요? 그렇게 하기로 할까요?
우리 교육에 컴퓨터 혹은 인터넷이 체계적 혹은 본격적으로 도입된 계기는 1995년 5월 31일,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의「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新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방안은 12개 과제를 담았는데, 그 중 세 번째가 ‘열린교육사회, 평생학습사회 기반 구축’이었고, 그 과제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습니다. 지금 보면 참 촌스러운 파일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니까-우리 교육계의 변화가 그만큼 빠르다는 걸 실감할 수 있으니까-한번 보십시오(당시의 보도자료 Ⅰ: 14~15).
□ ‘국가 멀티미디어 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하여 평생교육사회의 인프라(infra)를 구축함
◦ 성격 : 정부출연연구기관
◦ 기능
- 각종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 개발․지원
- 전자형태의 학습자료 공모, 구입 및 공개
- 지물류 학습자료의 전자화 및 DB화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 역할
- 교육․훈련을 위한 국내외 정보자료의 소재파악 및 제공
- 원격교육 훈련사업의 지원
- 멀티미디어 관련 교사 연수
‘현대판 8만대장경 편찬사업’에 버금가는 大役事로 현존하는 모든『아날로그』형태의 학습자료를『디지탈』자료로 변환하여 모든 학습자의 요구에 부응 |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 사례
․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CD-ROM Information System
․ UC Berkeley's Digital Library Project
․ The Stanford Digital Library Project
․ Alexandria Digital Library
(미 의회 도서관의 Digital Library 추진)
다시 봐도 촌스러운 파일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게 본격적인 출발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좀 더 이야기하면, 이 정책은 그렇게 추진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도 신년사 중 “세계에서 컴퓨터를 제일 잘 쓰는 국민”이라는 내용에 따라 재량활동시간에 정규과정으로까지 다루게 되었으므로 그 신년사는 그야말로 의미 깊은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역대 장관 중 e-learning에 가장 깊은 집념을 가진 분은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었습니다.
교육과 IT의 융합은,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되어나갈까요? ‘소프트웨어 장학생’을 선발하고, 2010년에 인터넷TV(IPTV)가 보급되면 그만일까요? 잠잠해질까요? 그걸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냥 오래 전에 본 책을 인용합니다.
먼저『미래생활사전Dictionary of the Future 2001』입니다(페이스 팝콘․애덤 한프트 지음, 인트랜스번역원 옮김, 을유문화사, 2003). 이 책에는 ‘새로 나올 교육용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215~216).
Counter Schooling 역학교 수업 : 경쟁적인 교육환경과 공교육의 실패가 동기가 되어 역학교 수업 운동이 전개될 것이다. 업체들은 방학 동안 보충학습 및 심화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즉 학교의 방학기간에 맞춰 ‘역으로 계획된’ 보충교육 서비스를 판매할 것이다.
Madmissons 미친 입학 : 아이들을 유명 사립학교나 대학, 로스쿨(대학원 법학 과정), 메디컬스쿨(대학원 의대 과정) 혹은 --부유한 도시인들이 알고 있듯 가장 지독한 경우인 --예비 유치원 과정에 보내려는 경쟁적인 과열 형태를 말한다. 더 이상 하나의 정상적인 입학 과정이 아니라 미친 입학 과정이다. …(중략)… 게다가 이 경쟁은 2~3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후략)…
Seminar Royalties 세미나 로열티 : 인터넷과 교육 간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지고 광대역 통신망과 동영상 스트리밍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주요 대학들은, 예컨대 예일대학 해롤드 블룸(Harold Bloom) 교수의 셰익스피어 세미나처럼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교수의 세미나를 웹 캐스팅할 것이다. …(후략)…
‘에이, 시시해! 꼭 같은 현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이미 나타난 현상들이잖아.’ 그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결은 무시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는 바다로 우리를 몰고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에도 인용한 적이 있지만 데이비드 갤런터(예일대학 컴퓨터학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앞으로 50년The Next 50 Years』생각의나무, 2002, 330~331).
“책 구매자들은 서점 대신 아마존을 택한다. 편리함, 선택, 가격 같은 유형의 이익이 항상 무형의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대학이 자기만족에 빠져 있다면, 이런 법칙에 사로잡힐 것이고 그 결과에 겁에 질릴 것이다. 온라인 교육은 이미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온라인에서 모든 과목을 들을 수 있고 온라인 교육의 질이 매년 개선된다면, 대학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대학은 무형의 것을 파는 사업이다. 대학은 교수와 더 중요하게는 동료학생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게 해주고 교정 자체를 제공함으로써, 무형의 교정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세계 대학의 95%는 50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최고의 학교들은 명목을 유지할 것이다. 그들은 직장과 돈으로 해석될 명성, 즉 유형의 것을 팔기 때문이다. …(중략)… 물론 초등학교도 사라질 것이다.”
참 썰렁하고 쓸쓸한 언급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어쩔 수 없고 다만 ‘교육은 복잡한 것이니까’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는 미련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미래생활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용어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Teacher History 교사 경력 : 교사의 책임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에 교사들은 더욱 강도 높은 검증 과정을 피해 갈 수 없다. 머지않아 인터넷상에서 교사의 교수법 포트폴리오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또한 해당 교사의 학생들이 표준화 시험에서 어떤 성적을 올렸는지, 학부모들의 의견은 어떤지, 어떤 숙제를 내주고 평가기준은 무엇인지 등등을 인터넷에서 다 찾아볼 수 있다. 학급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진정한 척도로서 그 교사의 학생들이 다음 학년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볼 수도 있다. 교원노동조합은 이에 반대할 것이지만 결국은 대중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다.
Wired Failure 실패한 유선 교육 : 대다수 미국 교실에서 학습에 인터넷을 이용할 때-이를 웨뷰케이션(webucation, 웹과 교육의 합성어)이라 한다-의외의 결과가 발생하여 학교는 더 큰 문제점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아동들은 점점 독립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되고, 패턴을 찾아내는 연관성 사고를 하지 못하여, 추상적인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빈 가방 증후군(Empty Luggage Syndrome)’이라고도 불리며, 교실 내의 컴퓨터가 언뜻 상당히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각 교실에 설치된 TV 수상기가 교육개혁에 대한 해답으로 여겨졌던 1950년대와는 달리 유선 환경을 갖춘 교실에 대한 반발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상한다. 그리하여 컴퓨터 사용법보다는 아동과 교사의 상호작용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컴퓨터 사용법보다는 아동과 교사의 상호작용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다만, 진정으로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와 노력, 정성을 기울여 나간다면……. 아이들을 ‘사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