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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Ⅱ

by 답설재 2009. 9. 14.

 

무얼 할 때만 거기에 빠져 의젓한 아이

 

 

 

1학년 운동회를 하는 중에 5반의 G라는 아이와 몇 마디 얘기를 했습니다. 머리에 상처가 나서 거즈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일렀습니다. “몇 바늘 꿰맸대요.” 침대에 부딪쳐서 그렇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그 애는 지난해에는 병설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유치원 수료 기념사진 한 장을 찍는데 하도 움직여서 아주 오래 걸렸어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의 자세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다른 모든 아이들이 자세를 잘 잡으면 그 아이도 제대로 할 것이라는 게 그때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병설유치원 원장이 그런 재미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런 일을 할 때 오래 걸리게 합니다. 그냥 찍어도 좋을 텐데 온갖 간섭을 합니다.

 

올해도 어쩌다가 교실에 가보면 그 애는 공부시간에도 앞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습니다. 볼일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 애 머리를 살펴보면서 제 외손자 생각이 났습니다. 제 외손자는 2학년인데, 2학기에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녀석을 만나고 왔습니다. 일찍 갔는데도 그새를 못 참고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우리가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곧 돌아왔습니다. 제 아비 말에 따르면 너무 빨리 달린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속도감에서 스릴을 느끼게 된 모양이니 '더' '더' 빨리 달려서 시속 100㎞로 달리더라도 부디 앞을 잘 보고 판단도 잘하고 순발력도 잘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녀석은 2학기 부반장이 된 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제 어미가 왜 그러느냐, 한 표 차이로 반장이 되지 않아서 그러느냐,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않았다는데, 이유가 있지 싶어 전화로 무슨 부담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매일 청소도 다 하고, 급식 차도 밀고 오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눈물을 흘릴 만도 할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는 않을 거라면서 친구들이 청소를 잘 하는지 살펴보고 도와주는 일, 급식 차를 잘 몰고 다니는지 살펴보고 도와주는 일 등을 하면서 대표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할 일이고, 친구들은 네가 그런 일을 잘 할 거라고 여겨서 네게 투표를 한 거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반장이 된 다음 주 어느 날, 계단에서 굴러 발에 깁스를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온갖 것 다한다"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 녀석은 그 외에도 제 어미 속 썩이는 일을 더러 하는데, 그놈에게도 자존심이 있을 것이므로 다 밝히지는 못하겠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놈이 다친 것도 물론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일어 선생을 하다가 그놈 때문에 집에 들어앉은 제 어미가 놀랐을 일, 속상해 할 일 같은 걸 생각하면 그것 또한 기막히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봤더니 살짝 다쳤는지 깁스는 이미 풀었고, 아직 좀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대화를 듣고 제 어미가 그랬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다고 하더니?” 그렇겠지요. 어미 앞에선 아프지 않지만 제 외조부 앞에선 다시 아픈 거지요.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놈이 잘못하는 걸 보면 그놈의 부모는 심증은 가지만 난처하다는 듯 아무 말 않지만, 제 아내는 당장 당연하다는 듯 저를 닮아서 그렇다고 확증적으로 선언합니다(사실은 제 책임은 1/4인데도). 그럴 때 저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놈과 제가 살아가면서 거론되어야 할 일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럴 때마다 일일이 나서서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다”느니 어떠니 언급하는 데도 한계가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한 많은’(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인간은 눈 닦고 봐도 그놈밖에는 없기 때문에(외손자를 좋아하느니 방앗공이를 좋아하라는 말은 요즘도 하고 있으니 그것도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그놈에게서 그런 특별대우를 받는 저로서는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손자 선중이 Ⅰ : <내가 본 세상> 2009. 2. 6.

 

 

      

2005년 겨울의 곤충전 관람 : 하늘소 싸움에 빠졌던 날. 모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어서 흐릿하다. 옆의 여자애와 방한복을 입은 남자는 누군지 모른다

 

 

 

2006년 가을, 구리 한강변 코스모스 축제 때고추잠자리를 찾아다니기

 

 

웅변, 웅변이라기보다 글 외워서 암송하기

 

책읽기 : 어떤 일이 있어도 집중하기 때문에 조용하고 안심할 수 있는 두어 시간

 

"여기 좀 봐!"

 

유치원 땐 태권도를 조금만 했고, 요즘은 합기도를 배운다는데 계속할지는 의문

 

 

2007년 여름, 평내동 아파트 뜰에서 곤충, 개미 찾기

 

아기 씨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해도 단 30분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컴퓨터 게임. 그다음에 안경쓰기 시작

 

"어이, 안경! 여기 좀 봐!"

 

그냥 원고만 외운 구연동화 '입이 큰 개구리'

 

제 집에 비해 "여기(외갓집)는 천국"이라면서, 제 외조모와 고스톱으로 동전따먹기 (외조모 방한복을 걸치고 있고, 이쪽으로 판돈인 동전이 흩어져 있다 :2009년 1월 겨울방학

 

핸드폰에 쓰이는 이어폰 만지기 : 한시도 그냥은 앉아 있지 않기 : 200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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