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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3

저 강아지의 영혼, 나의 영혼 저 강아지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싶어 합니다. 주인은 저쪽 길을 그냥 걸어내려가고 싶었습니다. 주인이 가자고, 그냥 가자고 줄을 당기면 강아지는 이쪽을 바라보다가 주인을 바라보다가 번갈아 그렇게 하면서 버텼습니다. 강아지는 말없이 주장했고 주인은 "가자" "가자"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다투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보자 싶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더니 주인이 강아지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쪽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자초지종 다 살펴보고 이쯤 와서 생각하니까 '이런!' 어떤 여자였는지 살펴보질 못했습니다. 아니, 이건 말이 되질 않고 아마도 예쁜 여자 같았습니다.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 강아지보다는 자기주장.. 2021. 6. 5.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대체로 멍한 상태로 지내지만 그렇지 않을 땐 또 일쑤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아주 잠깐. "…(전략)… 닭은 더 심하죠. 달걀을 낳는 닭은 소의 홀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레그혼이라는 품종이 압도적이죠. 레그혼 품종 1만 마리 기본 암탉이 단 3세대 만에 양계장 닭 25억 마리의 조상이 되고 여기서 1년에 7천억 개의 달걀이 나와요. 70억 인구 한 사람당 100개씩 돌아가니까 전 세계의 수요를 충촉하고도 남죠. 이 닭들은 그저 알을 낳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서 병이 들어도 알을 계속 낳죠. 정상적인 닭은 알을 낳고 휴식을 취하는데 이런 고성능 닭은 쓰러져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알만 낳죠. 이런 식으로 돈을 짜내려는 방향으로 육종이니 품종개량이 계속되니까 유전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또 약을.. 2021. 6. 3.
쓸쓸한 곳 (1) 쓸쓸한 곳, 좋은 곳 2021. 5. 28.
"안녕!" "응, 오케이~" 저 녀석은 올봄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저 아래 동네에서 혼자 등교합니다. "안녕!" "안녕!" 사뭇 간단한 인사를 나누다가 한 마디 보태보았습니다. "잘 다녀와!" 뭐라고 웅얼거리는데 그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인사를 바꿔보았습니다. "조심히 다녀와!" "응! 오케이~" '응'이라고? 그 참... 이상하다... 내 인상이 고약할 텐데 감히 '응'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안녕!" "응, 안녕!" "조심해!" "오케이~" 저 아이와 나 사이에는 구체적인 계약 같은 것이 없어서 서로 간에 의무나 권한 따위도 없습니다. 관계래야 혹 만나게 될 때 내가 녀석을 괴롭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데 인사하는 게 괴롭히는 일일 수도 있을지 몇 번 생각해봤고 저만큼 걸어가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 2021. 5. 19.
"나는 이미 유령입니다" # 1 지금은 아파트 앞 미장원(헤어샵?)을 기웃거리다가 손님이 없구나 싶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슬쩍 들어가지만 전에는 굳이 이발소(말하자면 남성용 '헤어샵')를 찾았고 그것도 현직에 있을 때처럼 꼭 주말을 이용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리 없어서 연중 '주말'인데도 그딴 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듯 굳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차를 가지고 멀리 이웃 동네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가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퇴임한 지 네댓 해가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나절이었습니다. 이미 두어 명이 소파에서 주말판 신문을 보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머리를 깎고 있는 중년은 분명 K 교사였습니다. 들어서면서 거울 속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하마터면 인사를 할 뻔했습니다. 하마터면? 그 순간! .. 2021. 5. 14.
인간 엄장의 길 이 글을 필사하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극락에 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요! 나는 일쑤 내 거처로 들어온 개미 두어 마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끝으로 눌러 죽입니다. 그것들에게 영혼이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질 않네요. 그럼 내 영혼도 없음을 확신하고 끝나는 날 저녁 누가 내려다보고 있어도 좋고 사라져도 좋다고 하면 사라지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작업을? 온갖 상념을 불러오는 이런 이야기가 좋았을 뿐입니다. 엄장과 광덕,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면 나는 서방 극락 세계로 간 광덕이 아니라 광덕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엄장입니다. 나는 인간 엄장을 생각하며 이 글을 필사했습니다. 인간의 길은 끝이 없음을 확인하며 가는 봄날 밤입니다. 광덕이 서방 극락으로 가다 문무왕 때 사문 광덕廣德과 .. 2021. 5. 10.
나는 허당이겠지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사는가?' 생각합니다. 현직에 있을 땐 건방진 생각일지언정 신념, 자부심, 의무감, 책무성... 같은 단어를 곧잘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힘차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에 이른 것인데 이제 내가 지금 왜 사는가 싶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내게 일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내 지식은 쓰레기가 된 것입니다. 그 '일' 말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가만있어 보세요... 운전을 해서 시장을 봐 올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요. 잔소리를 하는 쪽도 그렇고 듣는 쪽도 그렇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당장 그 방법을 따를 것입니다. 그 외에는? 쑥스럽긴 하지만 청소가 있습니다. 내가 청소를 할 줄 안다고 하면 아.. 2021. 5. 8.
"라스티냐크, 끝까지 갈게! 몰락한 고리오라도 괜찮아..." 문득 돌아보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야기한 라스티냐크가 생각납니다. 이게 누구지 싶어서 고골리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라스티냐크처럼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골리 영감?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 알베르 까뮈로부터 * 분명, 사람들이 유럽의 대도시 속으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저 타인들 한가운데에서의 고독이다. 최소한, 인생에 어떤 목적을 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교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버릴 수 있다. 호텔 방과 일르 생 루이의 오래된 돌들 사이를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정신들이 누그러졌는가! 거기서 고독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그.. 2021. 5. 6.
뉴실버세대의 모습 10년 전, 2011년 2월 어느 날 스크랩한 자료입니다.* 10년 전이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퇴임 2년째였지만 그때만 해도 좋았습니다. 실버세대인 걸 실감하고 뉴실버세대의 모습을 신기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모습을 뉴실버세대의 아홉 가지 모습에 따라 체크해 보았습니다. 만족할 만한 항목은 잘해야 두어 가지? 나머지도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대부분 한참 미흡하거나 한두 가지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꼭 그런 실버세대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10년이 지났으니까 지금의 뉴(新) 실버세대는 또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생각하는 바가 있으므로 내가 직접 지금의 실버상(像)을 그려볼 수는 있지만 그 견해를 저렇게 일반화하려면 관련 조사를 바탕으로 깊은 사유가 있어야 .. 2021. 5. 5.
응원 '임시보관함'에 이 메일을 넣어둔 것이 어언 10여 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2010.11.6). 세월은 흘러갑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서 가고 오던 그때가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좋았습니다. 선생님, 지금 현재 우리 학교에 평가단이 와서 심층취재를 하고 있어요. 좀 전까지 교사 면담 호출 때문에 대기 중이다가 이제야 다른 파트로 넘어간 것 같아서 한숨 돌리고 메일 씁니다. 평가일자 잡히고, 학교가 마치 감옥처럼 사람 숨통을 죄고, 괴롭히고… 슬펐어요. 하지만 그것도 오늘, 이제 한 시간쯤만 참으면 땡~~이예요. 근근이 이렇게 살아가는 저도 있지만, 명절 앞두고 수술하셨다는 선생님의 문자 받고는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었어요. 마음이 아파서인지, 슬퍼서인지, 놀라서인지, 심란해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2021. 4. 28.
내가 설마 학대받으며 살겠나? 청년이 노인을 쳐다본다고 두들겨 패주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버르장머리를 좀 고쳐놓으려고 그랬을까요? 아니면 꼴도 보기 싫었거나 냄새가 심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빤히 쳐다봤거나..... 감히...... 이런 일을 조사하면 그 사람 본래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더라, 어떻고 하게 됩니다. 지금 세상에 마음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나도 사실은 온전치 못합니다. 길을 가득 메우고 걸어오는 젊은것들을 보고 저런 것들에게는 호통을 치거나 실컷 좀 두들겨 패주었으면 싶은데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싶어서 그 넓은 길 놔두고 얼른 갓길로 비켜섭니다. 그렇게 하면서 호통을 치거나 두들겨패주고 싶다는 맘을 먹은 것이나 그렇게 횡대로 걸어오는 걸 보며 옛날 고을 사또나 암행어서 행차를 본 것처럼 얼른.. 2021. 4. 26.
"믿었던 내 USB가 망가졌어요!" 이런 세상에!...... USB 단자(端子) 부분이 자라목이 되어 빠져나오질 않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USB라는 걸 믿었다기보다는 의심 같은 건 아예 염두에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작정 거리로 나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나가봤자 누가 쳐다보기나 하겠습니까? "내 USB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저 노인 미쳤나 봐') 그렇다면 어디 연락(신고)할 만한 데가 있습니까? 119나 경찰서는 아니겠지요?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소비자보호센터?...... 아니죠? 나는 정말, 정말 심각하지만,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혈압이 올라서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그런 기관들이 내 USB나 고쳐주려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송곳.. 2021.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