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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응원

by 답설재 2021. 4. 28.

 

 

 

'임시보관함'에 이 메일을 넣어둔 것이 어언 10여 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2010.11.6).

세월은 흘러갑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서 가고 오던 그때가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좋았습니다.

 

 

선생님, 지금 현재 우리 학교에 평가단이 와서 심층취재를 하고 있어요. 좀 전까지 교사 면담 호출 때문에 대기 중이다가 이제야 다른 파트로 넘어간 것 같아서 한숨 돌리고 메일 씁니다. 평가일자 잡히고, 학교가 마치 감옥처럼 사람 숨통을 죄고, 괴롭히고… 슬펐어요. 하지만 그것도 오늘, 이제 한 시간쯤만 참으면 땡~~이예요.

 

근근이 이렇게 살아가는 저도 있지만, 명절 앞두고 수술하셨다는 선생님의 문자 받고는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었어요. 마음이 아파서인지, 슬퍼서인지, 놀라서인지, 심란해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슴을 쓸며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쉽게 메일 쓸 수가 없었나 봐요.

 

아마 누구보다 선생님 자신이 가장 슬프고 가장 놀라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난번 메일 쓸 때도 그랬잖아요. 만약 선생님 가까이 있었다면, 제가 많이 위로해드리고 한 번 안아드리고 싶다구요.

괜찮으신지 여쭙는 것은 어떨까요?

여쭙지 말까요?

궁금해하지 말까요?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으로부터 괴롭도록 듣고 대답하시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저라도 조용히 있어야 할까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테니 이젠 놀란 가슴 좀 쓸어내리시고, 뭘 먹고 싶을까 애써 생각해보시고 찾아드시기도 하고, 괜찮다 괜찮다 주문 외우며 마인드 컨트롤하시고 계시겠죠? 설마 의기소침해 계신 것은 아니겠죠?

이제 평상시와 같은 컨디션으로 회복되신 거겠죠. 그렇게 믿을게요.

 

며칠 전, 동생네 부부가 와서 저와 포도주 한 잔씩 하면서 지나간 명절 얘기 등등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에 한 번 갔으면 하고 말하더군요. 볼 일 있냐고 했더니, 어린 조카들을 키자니아(직업 체험하는 무슨 장소)에 보내고 싶어서래요. 그때, 문득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나도 꼭 서울 가 봐야 하는데 라고 중얼거렸었죠. 가지도 못 할 거면서……

 

그날, 남동생은 명절 때, 친정에도 못 오고 시댁에서 다섯 시누이 뒤치다꺼리하느라 연휴 다 보낸 저를 힐난하더구먼요. 전들 안 오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참 남자 형제는 결혼하고 나서는 도저히 이야기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되었어요. 왜 저보고 당당하게 떳떳하게 자형한테 요구하지 않느냐며, 돈도 벌어 주고, 아이들도 키우는데 왜 기죽어 사냐면서 아랫사람 나무라듯이 막 나무라데요. 저는 아이 아빠가 저를 먼저 챙겨주기를 바라면서 말 앞세우지 않고 기다렸더니 연휴가 다 간 것이고, 기왕 지나버린 것을 따따부따 따지면 집안 시끄러우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지만 제 속도 사실 많이 상한데, 동생 말처럼 명절 때마다 친정 가는 걸로 싸움을 해야 옳게 사는 것인지 그것도 의문이 들더군요.

 

선생님, 누가 누구를 보고 너는 잘 산다, 못 산다 함부로 평가해서 말할 수 있을까요? 당최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이 그게 쉬운 일인가요?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겁나는 일 아닌가요? 아마 제 동생은 자기 누이를 위한답시고 그런 모양인데, 문득 삶이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거늘, 거기다가 남의 삶까지 기웃거리면서 말 보태는 것은 십중팔구 잘못하는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습니다.

 

선생님을 가슴에 보석처럼 박아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저 혼자 간직하고서는 이처럼 삶이 힘들고 억울할 때 내면으로 살짝 들어가 선생님께 기대고 위로받고 힘을 얻고 하는데……

편찮으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제 마음이 많이 아파요. 선생님이 제게 보석이듯이 저는 선생님께 보석이 못되는가요? 선생님 컨디션이 나쁠 때, 저는 도무지 한 점 위로도 되어 드리지 못하나요?

바보 같고 무능한 ○○이 같으니라구…… 에잇~~~

 

선생님, 며칠 전에는 팔공산 근처 불로동에서 소국 화분을 세 개 사 왔어요. 아직 망울만 맺혀 있고, 피지도 않았지만 가을 장만을 해 두었으니 얼마나 풍성한지요. 아름다운 가을이 왔잖아요. 선선하고 하늘 푸르고, 센티멘탈해지고, 선생님을 생각하며 박재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외우게 되는 가을……

 

좋은 것만 생각하세요. 밀쳐 두었던 시집을 꺼내 읽었더니 구절이 쏙쏙 가슴에 들어오더군요. 토지 10권을 넘어가고 있는데, 책 읽으면서 많이 위로받아요.

 

Captain, Oh~ my Captain! 제발 부디 힘내시고 용기 내시고 벌떡 일어서셔서 저를 불러 주세요.

사랑하는 선생님을 멀리에서나마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