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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라스티냐크, 끝까지 갈게! 몰락한 고리오라도 괜찮아..."

by 답설재 2021. 5. 6.

문득 돌아보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야기한 라스티냐크가 생각납니다.

이게 누구지 싶어서 고골리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라스티냐크처럼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골리 영감?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 알베르 까뮈로부터 *

 

분명, 사람들이 유럽의 대도시 속으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저 타인들 한가운데에서의 고독이다. 최소한, 인생에 어떤 목적을 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교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버릴 수 있다. 호텔 방과 일르 생 루이의 오래된 돌들 사이를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정신들이 누그러졌는가! 거기서 고독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그런 도시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야 할 이유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혼자인 동시에 혼자가 아니었다. 수세기의 역사와 아름다움, 과거의 숱한 삶의 열렬한 증언이, 세느강을 따라 그들과 함께 가면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전통과 정복에 대하여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말벗을 청하도록 다그친 것은 바로 그들의 젊음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가 오고 어느 기간이 오면, 그것도 그들에게 달갑지 않게 된다. 「우리 둘뿐이다!」 파리의 거대한 진부함과 마주하여, 라스티냐크는 외친다. 둘, 그렇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많은 것이다.

 

사막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그래서 사막은 시(詩)로 가득 채워져 왔던 것이다. 세계의 모든 슬픔들에 대해, 사막은 신성한 장소이다.

 

 

# 그래서 발자크로부터 **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는 성공을 꿈꾸며 프랑스 최고의 도시 파리에 상경한다. 늙으신 어머니의 걱정으로 팬 이마 주름을 등지고, 누이들의 저금통을 털어 멋진 양복과 젊음으로 자신을 무장하고서 파리 시민 귀족들 흉내를 냈다. 하지만 라스티냐크는 파리의 실체를 몰랐다. 도시를 관통하는 것은 애욕과 배신. 라스티냐크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누이를 배신하고, 사랑을 불신하고, 늙은 동료의 죽음을 지키는 관조자로 타락하고 만다. 그렇게 파리의 삶을 배우고, 파리 시민이 되어 간다.

 

발자크(1799~1850)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사실 라스티냐크의 상경과 성숙을 다룬 입신출세의 드라마다. 그러나 작가는 라스티냐크와 정반대의 운명을 갖고 있는 ‘불쌍한 영감탱이’ 고리오를 작품의 얼굴로 내세웠다. 라스티냐크가 속악한 사교계의 게임 법칙에 서서히 길들어갈 동안, 같은 하숙집 사람 고리오의 운명은 점점 하강 곡선을 긋는다. 라스티냐크가 부유하고 멋진 사교계의 여성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갈 동안, 고리오는 점점 더 궁핍한 처소로 자신의 짐을 옮긴다.

 

 

▲ 조각가 로댕의 발자크 동상. 프랑스 파리의 로댕 조각공원에 세워져 있다. 릴케는 ‘당당하고 활개 걸음을 걷는 인물, 외투가 떨어지는 바람에 중량을 모두 잃어버린 모습’ 이라고 묘사했다.

 

 

● 누가 고리오 영감에게 돌을 던지는가?

 

왜 라스티냐크가 아니라 고리오가 소설의 제목으로 선택되었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파티 장면, 부정한 방법으로 동시에 한 자매를 사랑하는 청년, 남편 몰래 정부를 두는 여인들, 최하층의 사람부터 최상층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지각색의 사건사고, 무엇보다 근대화되고 있는 파리의 세밀한 풍경들.

하지만 발자크에게는 작품을 생기롭게 만드는 이 모든 요소들보다 고리오의 운명이 중요했다.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이 늙은 남자. 발자크는 바로 이 고리오 영감과 함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이?

 

● 프랑스 혁명 이후의 가족 드라마

 

‘고리오 영감’은 고리오 영감의 3층 하숙집 생활로부터 시작해서 1821년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출세를 뒤따르려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고리오도 혁명의 수혜를 받았다. 1789년 대혁명 때 희생된 주인의 사업체를 우연찮게 인수하면서 국수공장 노동자에서 신흥 부르주아로 변신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첫 패배를 한 1813년에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으로 들어와서, 나폴레옹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해인 1815년에 그 하숙집의 가장 남루한 3층으로 이사를 하며, 나폴레옹이 죽는 1821년에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난다. 발자크는 나폴레옹식 벼락 출세의 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나폴레옹 세대의 몰락을 이야기의 기본 축으로 설정했다.

고리오와 그의 두 딸은 나폴레옹 실각 후 왕정복고 시대 프랑스 사회의 세 계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리오의 막강한 금력은 두 딸의 신분을 바꿔 놓았다. 무척 아름다웠던 큰딸 아나스타지는 대귀족과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둘째 델핀은 언니보다 예쁘지 못해서 많은 지참금을 갖고 자본 부르주아인 은행가와 결혼한다. 고리오는 이 두 딸의 드레스와 값나가는 보석을 대주느라 장례 치를 돈조차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죽는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의 돈을 갖고 경쟁하느라, 딸들은 한 응접실에서 차도 마시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딸들보다 신분이 낮았던 고리오는 더럽다는 이유로 낮에는 딸들을 방문할 수조차 없었다. 이들을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자크는 딸들에게 동전 한 푼까지 털리고 마는 고리오의 몰락을 보여줌으로써 프랑스 사회의 부권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평등한 계층 간 연대의 꿈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 현장을 드러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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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까뮈, '미노토르―오랑에서의 체류―삐에르 갈린도를 위하여'(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교양신서 13, 1993, 203) 중에서.

** 서울신문 2010년 7월 19일 21면, [고전 톡톡 다시 읽기] <25> 발자크 ‘고리오 영감’ (오선민 수유+너머 구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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