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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현대문학30

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 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현대문학》 2022년 3월호   저의 몸과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고백이어서 저는 다 한 번밖에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그러니 가만히 들어주세요. * 저는 1983년생입니다. 그런 탓에 이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물론 1959년생인 저의 어머니보다야 훨씬 나은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작금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조리한 억압과 불평등에 짓눌려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저는 평생에 걸쳐 마른 몸으로 살았지만, 저의 몸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 역시 몸 때문에 트라우마랄까, 피해의식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 2022. 6. 14.
김숨 『한 명』(抄) 김숨 『한 명』(抄) 『현대문학』 장편연재소설 소녀상(2012.9.26) 투명한 유리잔 속 우유를 그녀가 바라보기만 하자 옷수선가게 여자가 마시라고 재촉한다. "우유를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우유를 보면 남자 정액 생각이 나서³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 그녀는 그렇게 둘러댄다. 정액을 삼키라고 했지.³¹⁾ 나이가 지긋한 장교였다. 술에 잔뜩 취해 방으로 들어와서는 송진처럼 달라붙었다. 그녀가 발로 차면서 거부하자 군복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더니 다다미에 꽂았다. 다다미에는 단도로 찍은 칼자국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진 솔잎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소녀들은 일본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으로 아래를 쏘기도 했으니까. 권총 방아쇠를 당길 때 그들은 총구멍이 겨누는 곳.. 2016. 5. 7.
박형권 「털 난 꼬막」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 참 허 참…… 내가 퇴임을 했으니 ……' 하며 지내다가 『현대문학』 3월호를 보고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설명을 해보려고 덤벼들어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김사인 시인의 말에 따르면 대책이 서지 않는 시 한 편을 옮깁니다. 시인 자신이 화자(話者)인, 그 시인의 가계사(家系史)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그 중에서도 지금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치고 이 가계사의 주인공보다 나은, 이보다 화려한 세월을 보냈다고 큰소리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감상문 또한 한 편의 시와 같아서 시 아래에 그대로 옮깁니다. 「털 난 꼬막 Ⅱ」가 될 만한 감상문입니다. [박형권 시인의 시집 『우두커니』(2009, 실천문학)에서 김사인 시인이 뽑.. 2010. 4. 19.
김남호 「참 좋은 저녁이야」 『現代文學』 2010년 2월호 「누군가의 시 한 편」(제50회)에 소개된 김남호 시인의 詩(김남호 시인의 시집『링 위의 돼지』(2009, 천년의시작)에서 김사인 시인이 뽑은 시. 참 좋은 저녁이야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우리가 어렸을 적, 동네 큰제삿날 절편을 얻어먹던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도리'는 지키던 -그렇.. 2010. 4. 1.
세계화시대의 한국어 신문을 보면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하라는 요청이 강한 것으로 들립니다. 국제화시대여서 그 요청이 그럴듯하지만, 가령 국문학과 같으면 난처할 것입니다. 대학과는 별 관계가 없어서 깊이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난해의『현대문학』에는「세계화시대의 한국어와 한국문학」이란 주제로 연간 여러 가지 글이 연재되었고, 12월호에는「언어,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의지」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웬만한 책은 보관하지 않기로 했고, 그 글을 다 옮길 수도 없으므로 언제 봐도 그 글의 내용을 기억할 만큼, 충분히 옮겨두기로 했습니다. 언어,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의지1 실질가치 제로를 지향해야 할 교환도구는 반전의 마술을 연출한다. 일단 화폐가 그러하다. 잘 알려져 있듯 오래전에는 쌀, 소금, 옷감 등 사용가치를 지닌 것.. 2010. 1. 4.
천상병 「小陵調 -70년 추석에」 천상병(千祥炳, 1930. 1. 29 일본 효고현 ~ 1993. 4. 28)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고향으로 돌아간다는《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위키백과의「천상병」은 이렇게 시작된다. 더 자세한 부분을 보면 이런 해설도 나온다.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 2009.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