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2022년 3월호
저의 몸과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고백이어서 저는 다 한 번밖에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들어주세요.
*
저는 1983년생입니다. 그런 탓에 이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물론 1959년생인 저의 어머니보다야 훨씬 나은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작금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조리한 억압과 불평등에 짓눌려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평생에 걸쳐 마른 몸으로 살았지만, 저의 몸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 역시 몸 때문에 트라우마랄까, 피해의식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다.
재미있게 읽었다. 끝까지 읽었다. 읽기 싫을 걸 참고 읽지 않고 읽고 싶어서 읽었다.
「몸과 여자들」
여자들 얘기인데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세상을 향한 반박, 좋은 절규.
이렇게 끝난다.
언니가 보낸 카드도 있었습니다. 펼쳐보니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 환상의 조합. 우리는 몸과 정신 양쪽 다에게 기쁨을 줄 의무가 있어. 너의 말과 달리 우리에겐 그런 의무가 있어.
(……)
어쩌면 끝없이 혼란스러워질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반박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연결되어야 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의무가 끝나면, 삶도 함께 끝나는 걸까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시원치 않게 작동되는 환풍기 아래에서 천천히 말라갈 것이기에, 이제 저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파삭 하고 무너진 뒤에 다시 태어나게 될지도 모르고요. 그럴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제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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