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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친구16

"IT TOOK ME 90 YEARS TO LOOK THIS GOOD" 내 친구 김 교수가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요." '여기'란 우리 동네이기도 하고 그 카페이기도 합니다. 그는 메뉴판 들여다보는 시간의 그 여유를 좋아합니다. 매번 30분은 들여다보지만 그래봤자 뻔합니다. 살펴보고 망설이고 해 봤자 결국 스파게티나 리소토 한 가지, 피자 한 가지를 시키게 되고 우리는 그것도 다 먹지 못합니다. 그는 다만 미리 콜라를 마시며 그렇게 망설이고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즐길 뿐입니다. 지난 1월의 어느 일요일에 만났을 때는 그럴 줄 알고 내가 콜라 한 병을 미리 주문해 주었는데 얼음을 채운 그걸 마시며 이번에도 30분 이상 메뉴판을 이쪽으로 넘기고 저쪽으로 넘기고 하더니 난데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스테이크 시킬까요?" "그 비싼 걸 뭐 하려고.. 2024. 2. 13.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주는 집 아내와 함께 식품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자그마한 그 냉면집이 눈에 띄어서 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저 가게 김 교수가 혼자 드나들던 집이야." "나도 가봤어. 그저 그래." "김 교수는 맛있다던데? 몇 번이나 얘기했어.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준다면서." "친구들하고 가봤는데, 별로던데..." "냉면이나 불고기나 평생 안 먹어도 섭섭해하지 않을 사람이니 어느 가게엘 가면 맛있다고 할까?" "......"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겠지?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탈이다. 아이들과 시험문제 풀이를 할 때처럼 매사에 정곡을 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죽을 때는 이 성질머리를 고쳐서 갖고 갈 수 있을까? 별수 없이 그냥 갖고 가겠지? "그 버릇 개 주나?"라는 속담도 있으니까. 인간은 고쳐서 쓸.. 2024. 2. 3.
돈 : 내 친구 김교수의 경우 10월 25일 수요일에 그 카페에서 만났을 때 김 교수는 뜻밖의 주문을 했다. "우리 스테이크 시킵시다." "비싼 걸 뭐 하려고요." "제가 살게요....." 김 교수는 미국에서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의 연금이 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좀 써도 된다는 것이다. 손바닥 1/3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가 나온 걸 본 순간 '이게 5만 원짜리라고? 이걸 먹고 때가 되겠나' 싶었다. 먹고 나니까 보기와 달랐다. 김 교수는 반밖에 먹지 못해서 남긴 걸 보니까 좀 아까웠다. 식사를 마쳤을 때, 11월에 만나면 당연히 내가 사야 하고 나도 굳이 스테이크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요즘도 댁에서 치킨, 떡볶이 같은 것도 배달시켜 먹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럼요! 치킨, 떡볶이는 늘 최고죠!" "그럼 다음에는 제가 그걸 .. 2023. 11. 30.
돈 : 나의 친구 J의 경우 내 친구 J는 저세상으로 간지 한참되었다. 평생 돈도 못 벌어본 채 한 많은 생을 비감하게 마감했다. 서울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올라왔다. 작심하고 푸줏간을 운영했다. '되겠지' '되겠지' 했겠지만 점점 더 되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였는지 그의 푸줏간을 찾는 발길은 아주 드물게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도 부인의 행색만은 남루하지 않게 해 주었고, 밖으로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는 날엔 단정한 모습으로 나왔고, 점잖은 용어로 조용조용 얘기했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어도(가령 어떤 교사가 학생을 두들겨 팼거나 아이에게 두들겨 맞아서 신문에 난 날 모임이 있으면 그들은 다짜고짜 내게 덤벼들었다. "야, 임마! 교육부 놈들 다 뭐하냐.. 2023. 11. 19.
명탐정은 좋겠다 우리 동네 중심지로 내려갈 때 바라보는 광고문입니다. 저쪽 길 차단벽에 붙은 "명탐정 사무소", 그 벽에 붙어 서서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17년 수사 경력, 표창 등 32회 수상, 7회 연속 으뜸 형사 출신의 '명탐정'... 그때마다 고등학교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뭘 하는지, 지금도 서울 사는지, 건강한지... 이홍식. 우리는 상주고등학교 12회 졸업생입니다. 26, 7년 전 초겨울 저녁, 서울 어느 경찰서에 근무한다는 그를 딱 한 번 동기회에서 만났는데 내가 미쳤지, 이후 차일피일하다가 그만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읍내에서 싸전을 했습니다. 가끔 뵈면 홍식이 친구라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 나에게도 가르쳐주었고(심장병으로 들통이 날 때까지 47년을 피웠네요), 무슨 .. 2023. 8. 28.
『상실 수업』⑵ 편지쓰기(발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김소향 옮김, 인빅투스, 2014 때로는 과거를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 그것을 정화하려고 한다. 우리의 실수가 밖으로 퍼져나가기를 원치 않으며 특히 누군가를 잃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작업을 거치다 보면 그 사람의 전부 그리고 장단점, 밝고 어두운 면 모두 포함한 그대로의 모습을 애도할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150) 슬픔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은 오직 표현할 때만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사랑한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실천하기 편하며, 단어를 밖으로 꺼내어 언제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의사소통을 상실해버린 고인이 된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써야 하며 심지어 왜 편지를 써야 하는가? 기억나는 만큼 멀리 과거.. 2022. 2. 10.
내 친구 준○이 산책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내 친구 준○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맨바닥에 앉아서 노는 애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옷이 더러워질까 봐, 그로 인해 일어날 성가신 일들을 피하고 싶어서, 병균이 침입할까 봐,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할까 봐, 이젠 그렇게 할 나이가 아니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좋구나!' 하게 되고 순간 그 아이 옷을 세탁할 아이 어머니 생각도 합니다. 일전에는 내가 살던 아파트 12층에 사는 여자애가 저렇게 놀고 있는 걸 봤습니다. 걔네는 아이가 걔 혼자입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걔네 엄마 아빠는 걔를 끔찍하게 여깁니다. 십여 년 전 갓난애 시절부터 쭉 지켜봐서.. 2020. 8. 27.
친구 걱정 1 '저 친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이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진짜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일전에 '저 친구'의 친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2 피자는 내가 두 조각, 내 친구가 다섯 조각을 먹어서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내 친구는 피자가 있는 식사를 좋아합니다. 파스타와 샐러드는 내가 더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먹으며 말을 하고 이젠 깔끔하지 못한 면이 있어서 아무래도 비위생적인 장면도 연출하곤 합니다. 내 친구는 만나자는 약속도 좋아하지만, 그만 일어서자는 제안도 좋아합니다. 얼른 '저 친구'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거의 매일 나들이를 했지만, 책을 읽으며 '저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 되었다고.. 2019. 4. 11.
"그럼, 내가 곁에 있을게요" 이 선한 표정의 개는 월간 "BEFRIENDERS INTERNATIONAL" 2018년 2월호 표지에 실린 치료견입니다. "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요" 밑줄 친 부분을 옮겼습니다. *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치매에 걸린 노인, 죽음을 앞둔 사람들,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 * 학교나 병원, 양로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중환자들이 머무는 집중치료실까지…… * 움직일 수 없는 아동 환자들의 재활이나 자폐 아동 치료에도……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성인에게도…… *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이겨내고 오히려 사람의 상처를 보듬다가 이 세상을 떠난 '치로리'도 그런 치료견이었다. * 말을 잃었던 할머니의 말문을 틔워주고 걷지 않으려는 할아버지가 스스로 걷는 연습을 시.. 2018. 2. 4.
내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입니다. 내 친구는 내가 이 보드라운 친구를 만져보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보드라운 자신을 만져보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쪽은 내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쪽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내가 읽은 개에 관한 책에는 이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내 친구는 요즘 책을 읽으며 이 친구와 소일하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 친구는 내 친구에게 복종하는 친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복종시키고 복종하는 건 역겹습니다. 그런 장면은 기가 막힙니다. 2018. 1. 30.
약속 약 속 노란 차 옆, 다정한 남녀를 피해 걸어가고 있는 저 구부정한 늙은이가 내 친구입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오는 중입니다. 돈도 제법 많고 명예도 자랑할 만하지만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고 그보다 더 명예로운 사람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표를 내진 않습니다. 그.. 2017. 10. 21.
弔辭 "종민아" 종민아. 오전에 내 아들이 내 핸드폰에 문자로 "최종민 선생님 돌아가셨습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9호실. 16일 발인"이라 찍어 보냈구나. 어떻게 알았냐니까 페이스북에 났더라고 했다. 그럼 네가 죽었단 말 아니냐? 이게 무슨 짓거리냐? 일 년 전 뇌에 혹이 생겨 수술 후에 너는 분명 경과가 좋다고 했지 않았나? 구례 국악 행사에도 다녀올 거라 하기에 올라오는 길에 안동 들러 쉬어 가라 했는데 그 후에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 후 1년 여를 네 전화는 먹통이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기에 수신확인을 했더니 열어보지도 않았더구나. 우석이, 오춘이, 보영에게 전화로 네 근황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더구나. 언제 시간 나면 경기도 너네 집으로 찾아가든가 실종신고라도 내야겠다는 .. 2015. 10. 16.